[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뤄양… 관림에 묻힌 명장 관우 ‘성인’이 되다

관우의 목이 묻힌 곳, 바로 뤄양의 관림(關林)이다. 중국 역사상 무덤에 ‘림(林)’이라는 용어가 적용된 사람은 공자와 관우 두 명뿐이다. 공자가 묻힌 공림(孔林)과 관우가 묻힌 관림의 ‘림’은 성인(聖人)의 무덤을 의미한다.

‘호사수구(狐死首丘)’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죽을 때면 자기가 태어나 자란 굴이 있는 언덕 쪽으로 머리를 둔다는 뜻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리키는 이 말은 수구초심(首丘初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300년 전, 굴원(屈原, 약 B.C. 340~B.C. 278)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수구초심을 토로했다.

눈길을 멀리 두고 사방을 두루 훑어보며,
언제이든 한 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네.
새는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여우도 죽을 때는 전에 살던 언덕으로 머리를 향한다네.
진실로 나의 죄가 아닌데 쫓겨났으니,
밤이나 낮이나 어찌 내 고향을 잊을 수 있으리.(<구장(九章)·애영>)

전국시대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진(秦)·초(楚)·제(齊)의 삼강체제에서 대세는 점점 진나라로 기울고 있었다. 당시 초나라 조정은 친제파와 친진파로 갈라졌다. 굴원은 제나라와 동맹해 진나라에 맞서길 주장한 친제파였다. 결국 그는 친진파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고 초나라의 수도 영도에서 추방된다. 이후 초나라는 진나라의 위협 앞에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다. 조국 초나라에 희망이 없음을 알게 된 굴원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바로 이날이 음력 5월 5일 단오, 중국인이 쭝쯔를 먹고 용선(龍船) 경기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굴원의 넋을 기리는 이날의 풍속은, 멱라수에 빠진 굴원의 시신이 행여 물고기밥이 될까 봐 강물에 음식을 던지고 서둘러 배를 띄웠던 데서 유래한 것이다.

관림 대문

머리는 뤄양에, 몸은 당양에, 혼은 고향에
굴원은 밤낮으로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고향 땅에 묻히지 못했다. 너무나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었으니, 그의 ‘수구초심’이 얼마나 간절했으랴. 이번에 소개할 주인공도 고향 땅에 묻히지 못한 사연을 갖고 있는, 위·촉·오 삼국시대의 인물이다. “머리는 뤄양을 베개 삼고, 몸은 당양(當陽)에 누워 있으며, 혼은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지는 그는 바로 촉나라 유비의 무장이었던 관우(關羽)다.

관우가 위나라 조조의 장수들을 잇달아 격파하고 “화하에 위세를 떨치던(威震華夏)”(<삼국지> ‘관우전’) 건안(建安) 24년(219), 조조는 오나라 손권을 끌어들인다. 조조는 자신과 협력해 관우를 치는 조건으로 손권에게 강남 땅을 떼어주겠노라고 했다. 일찍이 손권은 관우와 사돈을 맺으려다 치욕스럽게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조조의 제안을 받아들인 손권은 유비 측의 미방과 부사인을 몰래 회유해 투항하게 만든다. 그 두 사람은 평소에 자신을 깔보는 관우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터였다. 관우는 손권이 조조와 손잡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부인이 등을 돌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사면초가에 빠진 관우는 결국 패주하다가 손권에게 잡혀 죽는다. 이때가 건안 25년. 손권은 관우의 목을 뤄양에 있는 조조에게 바친다. 조조는 관우가 적이긴 하지만 본래 호감을 갖고 있던 터였다. 그는 침향목으로 관우의 몸통을 만들어 제후의 예를 갖추어서 장사 지낸다.

관제시죽 탁본

관우의 목이 묻힌 곳, 바로 뤄양의 관림(關林)이다. 중국 역사상 무덤에 ‘림(林)’이라는 용어가 적용된 사람은 공자와 관우 두 명뿐이다. 공자가 묻힌 공림(孔林)과 관우가 묻힌 관림, 그들의 역사적 비중이 무덤의 호칭에 반영된 것이리라. 일반 백성의 무덤은 ‘분(墳)’, 왕후장상의 무덤은 ‘총’, 제왕의 무덤은 ‘능’이라 한다. 공림과 관림의 ‘림’은 성인(聖人)의 무덤을 의미한다. 이제 관림의 남북 중심선을 따라서 가장 남쪽의 대문에서부터 의문·용도·배전·대전·이전·삼전, 그리고 마지막에 있는 관우의 무덤까지 쭉 따라가 보자.

관림의 대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은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명나라 때의 돌사자 한 쌍이다. 대문의 양쪽 담장에는 충(忠)·의(義)·인(仁)·용(勇)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관우의 충성·의로움·어짊·용맹을 칭송하는 것이다. 대문에 박힌 황금빛 정(釘)의 개수가 81개인 것도 눈여겨보시길. 81개는 제왕의 예제에만 사용되는 것이다.

대문 다음의 문인 의문(儀門) 앞에 놓인 커다란 철사자 역시 명나라 때의 것이다. 의문에 걸린 ‘위양육합(威揚六合)’이라는 편액의 글씨는 서태후의 친필이다. 육합이란 동·서·남·북·상·하를 가리킨다. 위양육합은 관우의 위세가 천하에 드날린다는 의미다. 의문의 양쪽 벽도 허투루 지나칠 게 아니다. 동쪽 벽에는 송나라 장수 악비(岳飛)가 그린 ‘관성제군상(關聖帝君像)’이 새겨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관우가 그렸다는 ‘관제시죽(關帝詩竹)’이 새겨져 있다. 특히 관제시죽도는 댓잎으로 글자를 표현한 것도 신기하거니와 관우의 성정을 엿볼 수 있는 시의 내용으로도 유명하다. 대나무의 오른쪽 위부터 찬찬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불사동군의(不謝東君意), 단청독립명(丹靑獨立名), 막혐고엽담(莫嫌孤葉淡), 종구부조령(終久不凋零).”

동군의 호의에 감사하지 않으니,
선명한 빛깔로 홀로 이름을 세우리.
외로운 잎 초라하다고 하지 말지니,
끝내 시들어 떨어지지 않으리.

동군은 봄의 신이다. 대나무의 푸름은 계절에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동군에게 감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또한 대나무는 화려한 꽃을 피우지는 않지만, 그 잎은 푸르러 시들지 않는다. 여기서 동군은 조조를 빗댄 것이고, 대나무는 관우 자신을 빗댄 것이다. 관우가 유비의 생사를 모른 채 잠시 조조에게 있을 때 조조는 관우를 후대했다. 하지만 유비의 행방을 알게 된 관우는 즉시 유비를 찾아간다. 조조로부터 받을 수 있는 온갖 부귀영화를 뒤로 하고 유비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킨 것이다. 이 시는 관우가 조조를 떠나면서 남긴 것이라고 한다.

대전의 관성제군상

관우의 성정을 엿볼수 있는 ‘관제시죽’
의문을 지나면 돌사자가 조각된 기둥이 좌우로 늘어선 용도(甬道)가 펼쳐진다. 기둥마다 그것을 만드는 자금을 댄 사람의 이름이나 상호(商號)가 새겨져 있고, 기둥 사방에는 동전이 새겨져 있다. 사방에서 돈을 벌게 해달라는 의미다. 여기서 우리는 재신(財神)으로 받들어진 관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용도를 지나면 배전(拜殿)이 나오고 그 뒤로 대전이 나온다. 배전의 서쪽 벽 앞에는 높이가 3.5m나 되는 커다란 칼이 세워져 있다. 관우의 ‘청룡언월도’를 재현해 놓은 것이다. 사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청룡언월도 뒤쪽의 벽에 새겨진 석각의 내용이다. 광서(光緖) 27년(1901), 서태후와 광서제는 베이징을 침략한 팔국 연합군을 피해 시안으로 가던 길에 관림에 들렀다가 자금을 대고 관림을 보수하게 했다고 한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관우와 같은 충성스런 명장이 그리워서였을까?

대전의 문에 걸린 ‘기장숭고(氣壯嵩高)’라는 편액 역시 서태후의 친필이니 눈여겨보시길. 대전 가운데에 놓인 6m 높이의 관우의 좌상은 용포를 걸치고 면류관을 쓴 모습이다. 이는 도교의 신으로 신격화된 관성제군(관제)을 형상화한 것이다. 관성제군상 오른쪽에 놓인 깃발에는 “삼계복마대제신위원진천존관성제군(三界伏魔大帝神威遠鎭天尊關聖帝君)”이라고 적혀 있다. 이는 만력(萬曆) 33년(1605)에 명 신종(神宗)이 관우에게 내린 봉호다. 대전 벽화에는 관제가 신선들을 이끌고 요마를 제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생전에 천하무적이었던 관우이니, 사후에도 이런 형태로 신격화된 것이리라.

청룡언월도

대전을 지나면 이전(二殿)이다. 이전의 문에 걸린 ‘광소일월(光昭日月)’이라는 편액은 광서제가 쓴 것이다. 관우의 좌상 뒤로 주창과 관평이 서 있고, 앞에는 작은 두 사람이 서 있다. 그 두 사람은 각각 주판과 저울을 들고 있는데, 도교에서 재물을 가져다준다는 초재사자(招財使者)와 이시선관(利市仙官)이다. 이전은 ‘재신전(財神殿)’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재신으로서의 관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관우는 상인들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졌다. 장사에 필요한 의리와 신용, 그리고 불굴의 정신이 관우와 통하는 데가 있어서일 것이다. 관우가 산시(山西) 출신인 것 역시 그가 재신이 되는 데 크게 작용했다.

명·청 시기에는 상업의 발전과 더불어서 규모가 큰 상인 집단이 활약하게 되는데, 산시의 진상(晉商)은 활동범위가 넓기로 유명하다. 산시는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많아서 예로부터 밖으로 나가 장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진상은 중국 내 각지는 물론이고 북으로는 몽골과 모스크바, 남으로는 홍콩과 싱가포르까지 이르렀다. 각지에 퍼진 진상은 주요 활동지역에 길드나 동향회의 역할을 하는 회관을 세웠다. 진상의 산시(山西)회관과 산산(山陝)회관에서는 으레 관우의 신상을 모셨다. 관우가 전국적인 재신이 되는 데는 이들 진상의 역할이 컸다. 돈 잘 버는 이들이 모시는 신이니 다들 선뜻 따라 모셨던 것이다. 게다가 충의의 상징이니 명분상으로도 신으로 모시기에 금상첨화였을 터.

삼전(三殿)에서는 유교의 모범이 되는 관우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삼전은 춘추전(春秋殿)이라고도 하는데, 갑옷을 입은 채 <춘추>를 읽고 있는 관우의 상이 모셔져 있다. 관우는 늘 <춘추>를 읽었다고 한다. 대의명분에 입각해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바로 ‘춘추’의 정신 아닌가. 관림 대문에 적혀 있는 충·의·인·용의 화신인 관우와 <춘추>는 참으로 어울리는 조합이다.

관우 무덤 앞의 석패방

역대 황제들이 내린 봉호 석비에 새겨
삼전을 지나면 관우의 무덤이다. 무덤 앞 비정(碑亭) 안에는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관성대제림(忠義神武靈佑仁勇威顯關聖大帝林)’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있다. 청 강희제가 관우의 무덤을 ‘충의신무관성대제림’이라 했고, 건륭제가 ‘‘영우(靈佑)’라는 봉호를 더하고, 가경제가 ‘인용(仁勇)’이라는 봉호를 더하고, 도광제가 ‘위현(威顯)’이라는 봉호를 더했다. 그런데 관우의 무덤 앞에 세워진 석패방에는 ‘한수정후묘(漢壽亭侯墓)’라고 새겨져 있다. 한수정후는 관우 생전에 조조가 후한 헌제에게 청해 하사한 작위다. 후한 때의 한수정후와 청나라 때의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관성대제, 그 사이에는 관우의 지위와 영향력이 날로 더해진 오랜 세월이 존재한다. ‘한수정후묘’ 석패방 뒤로는 ‘중앙완재(中央宛在)’라고 새겨진 색패방이 있다. ‘중앙’은 머리, ‘완(宛)’은 여전하다는 뜻이니, 관우의 머리가 여전히 이곳에 있다는 의미다.

이유진의 중국 도읍지 기행

앞서 말했듯 관우의 머리는 뤄양을 베개 삼고, 몸은 당양에 누워 있으며, 혼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관우의 머리는 이곳 관림에 있고, 몸은 손권이 그를 장사지낸 당양 관릉(關陵)에 있다. 관우의 혼은 고향으로 돌아갔으리. 그의 고향인 산시 윈청(運城)에는 관우의 의관총인 관제묘(關帝廟)가 있다. 2008년에 윈청과 뤄양이 신청한 관우와 관련된 신앙·풍속인 ‘관공신속(關公信俗)’은 국가급 비(非)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 해마다 9월 29이면 ‘관림 국제조성대전(國際朝聖大典)’이 열려 해외 각지의 화교가 이곳을 찾아와 관우를 참배한다. 역사가 결코 과거 사실에 그치는 게 아니라 현재와 더불어 숨쉰다는 것을 관우의 경우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평가하고 현재화하는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권리이자 의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역사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연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