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진영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독자들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화제의 신간 <댓글부대> 소설 쓴 장강명 작가

[인터뷰]“진영논리에 빠진 한국사회 독자들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
<댓글부대>. 장강명 작가의 신간이다. 책은 댓글조작팀 멤버가 ‘SNS 스타기자’에게 제보하는 내용의 녹취록과 댓글팀 멤버의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한 내용이 교차편집돼 있는 형식이다.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책에 언급된 “저항도 연대도 빠르고 쿨하게”라는 기사 때문이었다. 이철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댓글팀의 상선, 합포회의 핵심 인물은 그 기사에 언급된 커뮤니티 중 한 곳을 골라 “이용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없애거나 현저히 약하게 해봐라”고 지시한다. 해킹이나 디도스처럼 하드웨어 공격으로 무력화시키는 것도 안 되고, 이를테면 의미 없는 글로 도배하는 방식이어서도 안 된다. “사이트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 목표다.

“사실과 상상 경계가 애매하단 지적은 찬사”
책에 언급된 기사가 왠지 낯설지 않았다. 장 작가는 책의 뒷부분에 참고한 글을 인용해 놓았다. 위의 “저항도~” 기사의 출전은 ‘온라인 커뮤니티 저항의 본거지’라는 2009년 6월 30일자 <위클리경향>(현 <주간경향>) 기사였다. 당시 이 기사를 쓴 사람은 기자였다. 엄밀히 말해, 장 작가의 신간이 다루고 있는 내용은 당시 기사의 주장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그리고 그건 기사 이후 실제 기사에서 인용한 한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사건’과 유사했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다 상상해낸 것”이라고 장 작가는 밝혔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아는 사람만 아는 진짜 이야기와 유사한 대목이 많다. 마지막 책장을 덮은 독자들이 떠올릴 만한 의문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이 온라인 공작팀, ‘팀알렙’은 실존 조직이었을까. 정말 그런 댓글공작 때문에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보성향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하나씩 황폐화된 것이었을까. 독자들의 반응과 별도로 그렇다면 소설에서 결국 기만당하는 임상진 기자도 모델이 있는 걸까.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댓글부대>를 쓴 장강명 작가. / 이상훈 선임기자

지난주말, 개인 페이스북에 간략한 소감을 올렸다. 장강명 작가가 장문의 답글을 달았다. “기자님, 안녕하세요? 제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중략) 소설에 나오는 사이트나 사건, 인물들에 모델이 있고 소설 속 묘사가 실제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체로 모델을 짚을 수 있는 정도인 게 사실입니다. 제가 이 원고를 쓸 때에는 그 모델이 된 당사자들이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문제보다는 ‘독자들이 보기에 그럴싸하게 읽혀야 한다’는 압박감과 ‘소설이니까 어느 정도 용서되겠지’ 하는 마음이 앞섰던 것도 맞습니다. 다만 변명을 드리면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비판의 목표로 삼고 기분을 상하게 하기보다는, 읽는 독자 전체를 조금씩 불편하게 만들자는 자세는 있었습니다.(후략)”

독자 전체를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것은 무슨 말일까. 장 작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까닭이다. 우선 “현실에서 벌어진 사건과 상상으로 채워넣은 부분의 경계가 애매하다”는 지적에 대한 장 작가의 답이다.

“독자들이 그렇게 봤다면 저에게는 찬사입니다. 소설가는 당연히 소설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제대로 된 소설가라면 아름다운 문장으로 사로잡겠죠. 하지만 저의 작가적 역량에 대해서는 제가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그나마 제가 가진 게 있다면 취재력일 텐데, 그런 현실감을 주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 호주 이민을 다룬 <한국이 싫어서>에 대한 반응도 비슷했어요. ‘누가 진짜로 이민 간 거 아니냐’는 것 같은 질문이에요. 동시에 나오는 것이 ‘게시물 짜깁기한 거 아니냐’, 다시 말해 ‘현실감은 있는데 잘 취재해서 조립한 거 아니냐’는 지적인데 그것은 제가 감수해야겠죠.”

“누구 편인지 끝까지 확인하고 싶어해”
장 작가의 전직은 기자다. 2002년 사회부에서 시작해서 산업부, 정치부를 두루두루 거치며 기자생활했다. 11년차 기자였을 당시 그가 낸 <표백>이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회사도 때려치웠다. 전업작가 선언이다. “…마흔이 넘어 갑자기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모두 말렸습니다. 계속 겁에 질린 상태에서 소설을 썼습니다. 상금이라는 비상보급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싸워서 글과 돈을 열심히 벌어보겠습니다. 쓰고 싶은 소설을 다 써서 더 이상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장 작가는 올해 여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소설로 문학동네 작가상을 받았다. 책에 실린 수상소감이다. 그는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겠다”고 위 수상소감에 덧붙였다. 올해 그는 한꺼번에 상복이 터졌다. 한국의 오덕문화를 다룬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 문학상을,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스스로 “천운(天運)의 사나이”라고 불렀다. “사실 여태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이 그 상금 덕분이었거든요. 아마 내년이나 후년까지 그걸 까먹으면서 버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이제 앞으로 쓸 소설들은 공모전에 내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쓰는 소설들이 아무래도 대중을 겨냥하는 소설들이고, 이제는 정말로 인세로 먹고 살아야 할 텐데 지금까지는 운이었습니다.”

장강명 작가는 <주간경향>831호(2009년 6월 31일자) 커버스토리 기사 ‘온라인 커뮤니티 저항의 본거지’가 <댓글부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혔다.

첫 통화에서 장 작가는 “나는 보수우파인데 (진보성향 매체에서) 인터뷰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왜 스스로를 보수우파로 규정하는 것일까. 보수매체에서 밥벌이한 전직 때문에? 아니면 보수로 기울어 있는 한국 사회의 이념지형에서 ‘전략적 포지셔닝의 유리함’ 때문에?

“단도직입적으로 질문 받을 때까지 잘 몰랐는데, 이전에도 작품에 대해 인터뷰를 하시는 분들이 진보냐 보수냐 물었습니다. 스스로 보수라고 생각해서 ‘저는 우파인데요’라고 답을 했는데, 뜨악해 하는 반응이 있어서 솔직히 당황한 기억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결국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질문입니다. 누구나 다 성향을 따지면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는 것 아닐까요. 저는 그냥 비판적 개인인데, 사람들이 일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저 사람은 누구편이야, 우리 편이야 아니야’라는 질문입니다. <댓글부대>라는 책을 썼는데, ‘국정원을 까는 내용이야, 아니면 진보 까는 거야’가 궁금한 거죠. 누구 편이냐고 물었을 때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고 당신 편도 아니라고 대답을 하는 것인데, 사람들은 끝까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장강명씨의 신작소설 <댓글부대>‘은행나무’

“댓글부대 쓸 때 ‘혐오의 에너지’ 필요”
<댓글부대>가 지난 대선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을 모티브로 취했다는 것은 반쪽만 맞는 이야기다. <댓글부대>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2세대 댓글부대’의 등장. (원래 제주 평화문학상을 받을 때의 제목이 <2세대 댓글부대>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상황은 또 하나의 천운일지도 모른다. 마침 <경향신문>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공격하는 ‘강남구청 댓글부대’에 대한 폭로 보도가 나왔고, <경향신문>과 <주간경향>은 지난 대선국면에서 존재했던 또 하나의 댓글부대팀, ‘KTL글로벌기술정보사업’에 대한 추적보도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국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댓글부대 운영의 흑막이랄까 정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한국 인터넷 민주주의가 완전히 파산한 것이 일베 하나 때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사실 일베가 일베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이트의 일베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욕을 먹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일베를 그렇게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수십만명의 회원이 모여 있는데, 웬만한 중소도시 규모쯤 됩니다. 그 정도 규모면 범죄자도 한둘은 반드시 끼여 있게 마련입니다. 다른 커뮤니티 사이트도 마찬가지에요. 일베에 보면 ‘일베로’ 또는 ‘민주화’라고 사용자들끼리 점수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있는데, 그게 경쟁을 유도하는 시스템이고 막장을 부르는 시스템이에요.”

<댓글부대>를 쓰면서 힘들었던 것은 마치 배우가 자신의 배역에 몰입하듯 팀알렙 멤버에 자신을 이입하는 일이었다고 장 작가는 덧붙였다. “원래 매사 차분한 성격이라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걸 쓸 때는 ‘혐오의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글을 쓸 때 일부러 나인인치 네일스와 마릴린 맨슨 노래를 딱 세 곡만 휴대폰으로 반복해 들으면서 썼습니다. 히스 레저가 조커역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자살했는데, 그 심정을 알겠더라고요. 상을 받았을 때 상을 주면서 내용을 조금 순화하면 안 되겠냐고 주최 측에서 말하더군요. 저도 세어보지 않았는데 ‘씨발’이라는 말이 300번이나 들어 있었다고. 그런 몰입도 전업작가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앞서 장 작가가 기자의 페이스북에 댓글로 달았던 ‘읽는 독자 전체를 조금씩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는 말의 ‘진의’를 물어봤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어요.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진영논리가 다들 편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실패를 다른 어떤 나쁜 세력이 한국을 망쳤기 때문으로 돌립니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에요. 약간 솔깃한, 재미있는 이야기에다 조미료 같은 흥밋거리를 덧붙인 겁니다. ‘왜 내가 사는 것이 팍팍하냐, 저 빨갱이 놈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불편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은 그런 자기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댓글을 조작하는 사람들은 말로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본질은 추잡한 것이고, 그걸 애국이라고 포장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추악한 일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것은 얄팍한 정의감 때문이고.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이 없는 인간들이 서로 묘하게 쿵짝을 맞추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실패가 남 탓할 일이 아니라 자기 반성과 비판이 있어야 하는데,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그런 건강한 회의주의가 없는 것이 아니냐…. 제가 불편하게 만들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이렇게 위험한 사회에 도달해 있다는 겁니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현재 그는 남북관계가 지금보다 개선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연애 소설을 쓰고 있다. ‘필생의 대작’으로 써보고 싶은 것은 신문사를 배경으로 한 기자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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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자서전 대필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몇 군데에서 받았고, 올해는 대담집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꽤 유력매체에서 칼럼 연재 부탁도 받았고요. 사실 신문기자를 하면서 부업처럼 소설을 쓰는 게 싫어 그만둔 건데, 칼럼 같은 것을 쓰면서 바빠지게 되면 그 결심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수림문학상을 타기 전까지 솔직히 솔깃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는 소설로만 먹고 살기에는 약간 위태위태합니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상황이 좋으니 믿고 소설을 쓸 작정입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