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인간이 저지른 욕심의 대가

괴수전
미야베 미유키 지음·이규원 옮김 북스피어·1만5800원

거대한 몸집의 괴수가 나타나 도시를 쑥밭으로 만든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사건이지만, 영화에서는 킹콩과 고질라 등 수많은 괴수들이 등장했다. 곤충이나 동물이 잘못된 실험으로 거대해진 경우도 있었다. 인기도 많았다. 일본에서 고질라, 가메라, 모스라 등은 한때 아이들의 영웅이 되기도 했다. <화차>와 <이름 없는 독>의 미야베 미유키도 괴수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괴수들과 싸우는 울트라맨 시리즈를 좋아했고, 1960년대의 히트 영화인 <대마신>의 분위기를 살리고 싶어 <괴수전>을 썼다. 하나 더 있다. 봉준호의 <괴물>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는 것.

에도 시대, 동북부 시골 마을에 괴수가 나타난다. 괴물이라고 해도 좋다. 갑자기 무언가 산에서 내려와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잡아먹는다. 어떻게 생각하면, 신령이나 귀신을 믿을 때였으니 괴수가 나타나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기이한 사태를 만나면 누구나 의심하게 된다. 대체 왜, 어떻게 나타난 것일까. 그 시절에도 괴수는 비일상적이고 초자연적인 존재였다.

<괴수전>의 배경은 복잡하다. 전국시대가 끝난 후 하나의 번이 두 개로 쪼개졌고, 10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들 사이에는 원한과 분노가 들끓고 있다. 쉽게 버리지도, 잊어버리지도 못한다. ‘인간이 욕심을 위해 만들었다가 내다버린 것. 내다버린 채 망각했던 그것이 깨어나 지금 분노를 펄펄 끓이고 있다.’ 괴수의 힘은 막강하다. 거대한 두꺼비나 뱀 같기도 한데 카멜레온처럼 색깔도 자유자재로 바꾼다. 온몸은 두꺼운 비늘로 덮여 있고, 입에서는 염산 같은 액을 내뿜는다. 칼이나 창으로 뚫을 수도 없고, 불로 태우는 것도 불가능하다. 용맹한 무사들이 아무리 덤벼도 도저히 난공불락이다. 괴수는 그래야 한다. 미미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괴수는 악일까, 선일까. 고질라는 파괴의 신으로 등장했다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지구를 지키는 영웅으로 나오기도 한다. 괴수는 선도 악도 아니다. 그저 눈앞에 있는 것을 부수고, 공격하는 것들을 파괴할 뿐. 그런 점에서 고질라는 일종의 자연재해다. 인간이 만든 핵폭탄의 여파로 깨어난, 자연의 분노와 복수. 여기에 <괴수전>은 인간의 악의를 추가한다. ‘이것은 뭔가의 화신이다. 부정이나 재앙, 혹은 악의가 덩어리를 이룬 것이다.’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자신은 옳다고 생각하며 만들어낸 재앙. 인간은 분명 어리석은 존재다.

북리뷰

<괴수전>은 미야베 미유키가 2011년의 동북 대지진을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다. ‘모두가 이런 일을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냐. 좋다고 생각하고 벌이는 짓이야.’ 인간은 보다 편안한 삶을 위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때로 아니 자주 타인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언젠가는 대가를 치를 것이다. 하지만 <괴수전>에서조차 모든 악행이 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내일이 오리라 믿을 뿐, 지금은 아니다. <괴수전>을 보면서 괴수를 물리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사람들의 스펙터클을 보는 것은 매혹적이지만, 결론은 씁쓸하다. 현실은 괴수가 없어도, 그 이상으로 가혹하니까.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