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숨기고 싶은 과거,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
앨런 에스킨스 지음·강동혁 옮김·들녘·1만4000원

살다 보면 가슴에 묻어두는 것들이 생긴다. 큰 실수를 했거나 추태를 보인 일일 수도 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마 기억하기 싫은 유년의 경험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악행이나 치욕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건 간에 다시 마주하기 싫은 순간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영영 묻어두기만 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파내서 곰곰이 들여다봐야만 한다. 그것 역시 나라는 것을, 지금의 나를 만든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전진할 수 있다.

대학생 조 탤버트는 수업 과제를 하기 위해 요양원을 찾아간다. 한 인물을 인터뷰해서 전기문을 써야 한다. 영웅을 만나기를 원했지만 유일하게 인터뷰 할 수 있는 대상은 범죄자다. 30년 전에 이웃집 소녀를 강간 살해한 후 불을 지른 흉악범 칼 아이버슨. 징역을 살던 칼은 암 말기가 되어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칼의 말을 듣고, 과거의 사건 기록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칼에게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음에 묻어버린 것들이 있다.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변호사 출신인 앨런 에스킨스의 데뷔작이다. 형사사건으로만 20년 넘게 일했던 작가의 경험은 소설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지독한 악인이라고 선입견을 가졌던 인물의 진짜 얼굴이 서서히 드러나고, 흩어진 단서가 모아지면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과정이 데뷔작치고는 꽤나 노련하다. 반전에 반전을 덧붙이며 전개되는 구성도 좋지만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의 핵심은 조 탤버트의 성장에 있다.

조에게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다. 어머니는 알코올과 도박 중독자다. 동생 제러미는 자폐증이 있다. 어머니는 어떻게든 조에게 돈을 뜯어내려 한다. 그들에게서 벗어나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 조는 동생을 버려두고 대학으로 도망쳤다. 칼 아이버슨을 인터뷰하면서, 조는 그의 과거만이 아니라 자신의 과거도 돌아본다. 깊이 묻어두었던 실수도 다시 들여다보았다. 카지노에 간다며 무작정 조의 집에 떠맡겨진 제러미 덕분에, 옆집에 사는 여대생 라일리와도 친해졌다. 함께 칼의 사건을 재조사하면서 가까워지고, 알게 된다. 라일리에게도 깊숙하게 묻어둔 과거가 있다는 것을.

죽음을 앞둔 칼은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조는 칼을 대신하여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면서 깨닫게 된다. 묻어두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자신은 도망치고 있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다행히도 조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자립해야 했고, 거친 곳에서 몸을 쓰는 일도 했다.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다만 부족했던 것은 그를 이해하는 누군가였다. 아직 어른이 되기 전인 그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그를 감싸줄 수 있는 누군가.

북리뷰

<우리가 묻어버린 것들>은 통속적이고,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작품이다. 모험보다는 안전함을 택한, 장르적 요소를 잘 끼워 맞춘 스릴러. 하지만 조와 라일라, 칼의 캐릭터가 튼튼하게 구축되어 있기에 읽으면서 점점 궁금해진다.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가. 조와 라일리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갈 것인가. 상처가 많은 것도 때로 장점이 된다. 묻어둔 채 외면하지 않고, 제대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게 된다면.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