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1930년대를 풍미한 ‘뉴딜’을 다시 생각한다

뉴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전체주의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계층갈등이 심각해서 사회주의가 성행했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중산층이 두꺼워서 계층갈등이 적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말할 때 흔히 ‘뉴딜’을 거론하곤 한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 이전을 뉴딜이라고 주장했고,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뉴딜이라고 둘러댔다. 거슬러 올라가면 박정희 정권은 다목적 댐 건설을 뉴딜에 비견해서 말하곤 했다. 뉴딜은 1929년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내놓았던 정책인데, 뉴딜 덕분에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당시 시대상 반영하는 대형건축물 붐
하지만 뉴딜에 힘입어 미국이 대공황에서 탈출했다는 주장은 신화에 불과하다. 뉴딜이 미국에만 있었던 정책도 아니었다.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켜서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은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 정부가 먼저 시도했다. 1920년대에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불황을 겪은 독일과 이탈리아는 대규모 토목공사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쉬벨부시는 이 책에서 미국의 뉴딜 정책은 당시에 독일과 이탈리아가 시행한 전체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인 정책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닮았다고 지적한다. 강력한 지도자, 국가와 국민을 강조하는 이념, 경제·사회 문제에 대한 국가의 과다한 개입, 정부가 앞장서서 정책을 홍보하는 행태 등에서 루스벨트의 뉴딜은 일종의 전체주의였다는 것이다.

저자는 1930년대에 성행했던 복고풍 대형건축물 붐으로부터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면서 책을 시작한다. 베를린의 인민전당, 모스크바의 소비에트궁전, 파리 근교의 샤요궁전이 그 때에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워싱턴에도 페더럴 트라이앵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제퍼슨 기념관 등 석조건물이 들어섰다. 경제위기에 시달린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접고 국가가 더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는데, 신고전주의 석조건물은 이 같은 국가의 권위를 상징했다.

볼프강 쉬벨부시, 세 개의 뉴딜 (2006년, 메트로폴리탄 북스, 242쪽) Wolfgang Schivelbusch, Three New Deals (2006, Metropolitan Books)

1933년 초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할 때 이탈리아에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가 11년째 집권 중이었고, 독일에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이 집권에 성공한 후였다. 서유럽에선 파시즘을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할 수 있는 체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미국에도 시장자본주의를 뉴딜이란 국가주도 정책으로 교체하려는 정권이 들어선 것이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몰락하면 민주주의도 함께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거기에 대한 답을 국가로부터 찾으려 했다.

일찍이 전체주의 체제를 수용한 이탈리아와 독일은 대외적으로 스페인 내란에 개입해서 파시즘을 스페인에 수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국가 총동원 체제를 이용해서 제로 실업률을 달성하는 데도 성공했다. 루스벨트 행정부의 뉴딜주의자들은 파시즘과 공산체제가 효율성 측면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국가산업부흥법(NIRA) 등 뉴딜 입법을 통해 생산과 가격을 통제하는 등 민간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유럽과 달리 미국에선 이런 정책이 실업률을 감소시키지 못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불황에서 벗어났는데도 미국은 여전히 공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루스벨트의 뉴딜은 실패에 봉착한 셈이었다. 뉴딜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유럽의 국가사회주의와 동일시되는 데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들도 자신들의 정책을 홍보하는 데는 열심이었으니 그것도 파시즘을 닮았다.

뉴딜주의자들은 자연보호단(The Civilian Conservation Corp)이란 준군사조직을 만들어서 실업자들을 공공토목사업으로 내몰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애팔라치아 지역에 댐을 세우기 위해 테네시계곡공사(TVA)를 발족시켰다. TVA는 댐을 여러 개 건설해서 거기서 생산된 전기를 낙후된 지역에 공급했는데, 루스벨트 행정부는 이 사업을 뉴딜의 상징으로 홍보했다.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직접 국민에게 설명했다. 당시 전 세계에 보급된 2000만대 라디오 중 1600만대가 미국에 있었으니 미국은 가히 라디오 왕국이라고 할 만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를 적절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카리스마도 지킬 수 있었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은 6개월마다 면허를 갱신하도록 되어 있어서 방송국은 정부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라디오는 사실상 정부의 홍보 매체였다.

TVA 법에 서명하는 루스밸트.

루스벨트가 댐을 건설했다면 히틀러는 아우토반(고속도로)을 건설했다. 히틀러는 아우토반 기공식에서 손수 첫 삽을 떴으며, 완공된 구간에선 군사 퍼레이드를 연상시키는 개통식을 직접 주관했다. 미국과 달리 독일은 라디오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서 히틀러는 군중집회에서의 연설로 국민을 설득하고 선동했다. 히틀러는 나치스 문장과 각종 상징물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미국에서 뉴딜 입법의 상징인 국가산업부흥법을 집행하는 국가부흥청(NRA)은 ‘블루 이글’ 표시를 뉴딜 정책의 상징으로 이용했다. 국가부흥청은 정부 정책에 부응하는 기업체에는 ‘블루 이글’ 마크를 부여했고, 그러하지 않은 기업은 적대적으로 대했다.

아우토반 착공식에서 첫 삽을 뜨는 히틀러.

21세기 더이상 답이 될 수 없는 뉴딜
무슨 일을 해도 실업률이 줄어들지 않자 뉴딜주의자들은 보다 과격한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은 웨스트버지니아주 아서데일에 실업자들을 집단으로 수용할 새로운 타운을 세웠다. 집단농장을 건설해서 실업자들을 수용하려고 했으니 전체주의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무솔리니가 시행했던 집단이주 정책과 꼭 닮은 이 실험은 얼마 후 실패로 판정이 나고 말았다. 독일도 뮌헨 부근에 위치한 라멘돌프에 새로운 전원형 도시를 건설했으나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소련에선 스탈린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고, 그 일환으로 1927년에 드너퍼 강에 거대한 댐을 세워서 주변에 전기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1920년대의 번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미국인들은 소련에서의 이러한 성과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무솔리니가 로마 부근의 황량한 폰틴 습지를 개간해서 농경지로 만드는 공사를 밀고 나간 것도 스탈린의 발상과 비슷한 것이었다. 무솔리니는 마치 전쟁을 치르듯이 개간사업을 지휘했고, 농토로 바뀐 땅에 세워진 새 도시를 파시즘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뉴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독일이나 이탈리아처럼 전체주의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계층갈등이 심각해서 사회주의가 성행했던 유럽과 달리 미국은 중산층이 두꺼워서 계층갈등이 적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독일 및 이탈리아와 갈라놓았다. 종국적으로 미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국가사회주의는 패배했다.

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

우리도 1960~70년대에 미국,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가 1930년대에 겪었던 ‘뉴딜’을 경험했다. 소양강댐과 안동댐,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대규모 간척사업은 그 시대의 상징이었다. 시장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개발을 하기 위해 전체주의적인 뉴딜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뉴딜은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음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뉴딜이란 전체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통령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 한심하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