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넘어진 사람에게 “괜찮니?”라고 위로의 말을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채근하지 말고 그만큼 안 흔들려도 저마다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아프니까 청춘’이라 말만 하지 말고 넘어지면 “괜찮니?” 묻고 다시 일어서도록 기다려주고, 지지하고, 손을 잡아주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오랜만에 힘차게 넘어졌다. 어느 행사에 참석했다가 발 아래 턱에 걸려 순식간에 땅과 격하게 포옹하게 됐다. 지인들은 놀랐으나 나는 창피했다. ‘꽈당’은 잠깐이었지만 부끄러움과 근육통을 동반한 후유증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 제목을 차용하자면 나의 ‘취미는 꽈당’이다. 어떤 날에는 하루에 세 번 넘어졌고, 슬리퍼나 운동화를 신고도 넘어졌고, 버스에서 데굴데굴 굴러 동전 받는 통에 헤딩한 적도 있다. 넘어져서 생긴 금전적 손실(이어폰, 휴대폰, 응급약값, 병원비 등)도 상당했다. 땅이 나만 튕겨내는 것도 아닐 텐데 나는 자꾸 넘어졌다. 이런 나를 두고 지인은 ‘지구 중력 적응에 실패한 사람’이라고 놀렸다.

자주 넘어지면 그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덜 아플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넘어졌을 때의 아픔을 알기에 넘어지는 게 더 두려워 한 걸음 떼기도 무서울 때가 많다. “또 넘어졌어? 너는 왜 그렇게 자주 넘어지니?”라는 말을 자주 들으면 내성이 생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서운함과 부끄러움은 매번 갱신된다. 누군들 넘어지고 싶어 넘어졌겠나. 나도 지구 중력에 적응하고 싶다고!

사람이 넘어졌다 일어나기까지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근육과 탄력일까, 그 상황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순발력일까? 아니면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라는 위로일까? 넘어지고 상처받은 사람을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 우리는 너무 당연하게 넘어진 개인의 탓, 일어서야 하는 당사자의 책임을 말하지만 그것이 정말 ‘당연’한 것일까?

최근 성남시는 ‘청년 배당(Youth Divi dend)’ 제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기본소득’ 개념을 도입해 청년들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도록 차별 없이 일정 금액의 개인 소득을 보장하고,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성남시뿐 아니라 서울시도 ‘청년 보장(Youth Guarantee)’이라는 제도를 검토 중이라 한다.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프랑스나 독일 등 이미 여러 나라에서 시행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지난 대선 때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공약을 내세웠으니 그 대상이 ‘청년’이어서 안 될 이유는 없다. 투자나 낭비 개념으로서의 접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이며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 대한 ‘상상’이 차곡차곡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상상으로서의 제도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현되고 지속 가능하도록 토대를 마련해야겠지만 나는 그 제도를 넘어진 사람에게,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괜찮니?”라고 건네는 안부와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안부는 분명 넘어진 누군가가 다시 일어설 근력과 용기를 줄 것이다.

작가 손홍규는 그의 책에서 젊은 날 넘어졌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식당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괜찮니? 그 순간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이들이 바로 그처럼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척 아팠으리라. (중략)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그이들이 가르쳐주었다.”(손홍규, <다정한 편견> 71쪽)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사람들은 흔들리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얕고도 허술한 구조에 노출돼 있다. 어른이 되기는커녕 어른이 되기도 전에 뿌리째 뽑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천 번을 흔들려봤자 천한 번, 천두 번 지속적으로 흔들리고 넘어질 수 있는 사람으로 위태롭게 살아갈 뿐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채근하지 말고 그만큼 안 흔들려도 저마다 행복할 수 있는 사회, ‘아프니까 청춘’이라 말만 하지 말고 넘어지면 “괜찮니?” 묻고 다시 일어서도록 기다려주고, 지지하고, 손을 잡아주는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노동조합이 쇠파이프를 휘두르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됐다”는 발언을 했단다. 어떤 이들에게는 ‘3만 달러’와 ‘경제성장’이 필요하겠지만 우리에게는 ‘기본소득’과 ‘이타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오수경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