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가짜와 진짜를 구분할 수 있을까

랫맨
미치오 슈스케 지음·오근영 옮김 피니스아프리카에·1만2800원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때로는 선입견이나 편견 때문에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히메카와 료의 누나는 23년 전 죽었다. 살해당했다고 생각한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는 이후에 죽었고, 어머니는 그를 외면했다. 누나는 왜 죽은 것일까? 누가 죽인 것일까? 아버지는 왜 진실을 감춘 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히메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누나를 흉내 내고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를 위해서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히메카와를 버렸다. 지금도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 내면에 검은 소용돌이를 감춘 채 히메카와는 혼자 살아가며 직장을 다니고,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를 하고 있다.

히메카와의 밴드 선다우너가 연습을 하던 스튜디오 창고에서 히카리가 대형 앰프에 깔려 죽었다. 함께 선다우너를 시작할 때 드럼을 쳤고, 히메카와의 연인이 된 히카리. 지금은 히카리의 동생 케이가 드럼을 친다. 얼마 전, 히카리는 임신을 했고 낙태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뭔가 어긋나 있다. 미치오 슈스케의 <랫맨>은 모호하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지금 히카리가 죽었고, 23년 전 히메카와의 누나가 죽었다. 히메카와는 기시감을 느낀다. 과거에 아버지가 했던 일을 지금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흉내일 것이다. 아버지를 흉내내려는 것. ‘열심히 흉내를 내다보면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 있지.’

우리는 과연 가짜와 진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일까? ‘자신은 정말로 모르는 걸까. 답을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정체를 알고 있는 게 아닐까.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돌리려고 하는 건 아닐까.’ 제목으로 쓰인 ‘랫맨’은 모호하게 그려져서 아저씨로도, 쥐로도 볼 수 있는 그림을 말한다. 한 번 아저씨라고 생각하면 그렇게만 보이고, 사람의 얼굴 그림들에 섞여 있으면 아저씨라고만 보게 된다. 유령이 나올지도 몰라, 라고 생각하면 머릿속으로 유령을 만들어내 보게 된다는 문맥 효과와 한 번 믿어버리면 분명하게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똑같이만 보인다는 명명 효과를 설명하는 그림이다.

<랫맨>은 의도적으로 생각을 몰아가고, 한 번 믿어버린 것을 가슴에 품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과거의 사건을 배경으로 깔아두고, 지금 히카리가 죽은 사건을 독자가 풀어보게 한다. 하지만 과거 사건의 무엇이 과연 진실일까. 히메카와만이 아니라 독자도 일단 판단을 한 상태에서 아저씨이거나 쥐, 둘 중 하나로 지금의 사건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밴드 멤버 각각의 입장에서 히카리의 죽음 현장을 되짚어보고 추측하게 한다. 그런 점에서 <랫맨>은 탁월하게 설계된 본격 미스터리다. 이거다 싶으면 새로운 단서가 나오고, 저거다 싶으면 또 다른 반전이 뒤를 잇는다.

북리뷰

‘옳고 그름이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면 누가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걸까.’ 히메카와는 현재의 사건을 통해서 과거를 되돌아본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구별해 낙인을 찍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모든 것을 해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후회하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눈을 돌리지 않고, 서투른 판단에 끌려가지 않고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후회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