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절망적 상황 속 원초적 감정

테러호의 악몽
댄 시먼스 지음·김미정 옮김·오픈하우스·1만3000원

1845년, 영국 해군의 프랭클린경이 이끄는 탐험대가 북극을 통과하는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난다. 하지만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는 실종되고, 그들을 찾기 위해 구조대가 나서지만 더 많은 숫자의 희생만 더해졌다. 1849년 마침내 구조대가 흔적을 찾아낸다. 빙하에 갇힌 배를 버리고 100여명이 탈출했고, 식인까지 하며 버텼지만 모두 죽었다. 그런데 뒷이야기가 있다. 테러호의 함장이었던 크로지어가 이누이트족과 함께 있다는 목격담이 나온 것이다. 진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휴고상 수상작가인 댄 시먼스는 테러호와 크로지어의 운명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 그들은 무슨 일을 만들어냈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얼음뿐이다. 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3년분의 식량을 가지고 떠났지만 태반이 상했다. 통조림 납땜을 할 때 들어간 납 성분이 인체로 흘러들어간다. 괴혈병이 심각해진다. 그리고 괴물이 나타난다.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알 수 없는 거대한 괴물. 얼음 속에서, 어둠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선원들을 끌고 가거나 시체로 만들어버린다. 여름이 돼도 얼음은 녹지 않는다.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배에 남아서 죽어가거나, 배를 버리고 떠나서 죽든가 둘 중 하나다.

<테러호의 악몽>은 그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악몽이고, 지옥이다. 지루하면서도 절망적인 일상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실낱같은 돌파구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이렇게 저렇게 모든 것을 다 해 보지만 실패다. 지독한 실패담이다. 하지만 댄 시먼스의 필력은 그야말로 웅혼하다. 크로지어와 프랭클린 함장, 군의관인 굿서, 이누이트 여인을 사랑하게 된 어빙 소위 등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힘차게 써내려간다. 그들이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그들이 지금 어떤 생각으로 행동하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지루한 상황이지만 읽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절대적인 절망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산해내는 기쁨과 슬픔, 욕정과 질투 등의 원초적 감정이 <테러호의 악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문명사회에서 온 영국의 선원들은 모두 죽어간다.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아마도 이누이트의 지혜를 빌리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야만의 동토에서 살아가는 원시인들. 하지만 크로지어가 죽음 직전에서 겨우 돌아와 배우는 것은 지혜다. 이누이트는 야만이 아니고, 북극은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가 아니었다. 그것 자체로도 충만한, 위대한 자연이고 풍요로운 대지였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문명사회의 인간이야말로 미망에 사로잡힌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인생은 외롭고, 가난하고, 추잡하고, 잔인하고, 덧없는 것이니.’

북리뷰

팩션이고 모험소설인 <테러호의 악몽>은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가 무엇인지, 그들이 어떻게 두려움과 절망에서 벗어나려 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지금 붕괴 직전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옥을 만들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테러호의 악몽>을 읽으면서, 공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희미하게 깨달았다. 아주, 아주 어렴풋이.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