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원의 에브리컬처]“표절, 뭐 어제오늘 일인가 새삼스럽게”

“본 적도 없다”고 단호히 일갈하던 소설을 원본 삼은 티가 너무도 나버린 바람에 급기야는 “나도 이제 내 기억을 못 믿겠다”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스런 해명은 차라리 구수해 보인다.

장충동 족발거리를 지날 때면 언제나 궁금해진다. 저 많은 ‘원조’들 중에 진짜 원조는 어느 집일까. 저 중 분명 진짜 원조가 한 집 있긴 있을 텐데 나 같은 민간인으로서는 도통 알 수가 없다. 한때 누가 진짜 원조인가를 두고 소송전까지 벌어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이제 장충동 족발집들의 문제는 ‘누가 원조인가’보다는 어느 ‘원조’건 그들이 내놓는 족발 맛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점인 것 같다.

아무튼.

최근 유명작가의 표절 문제가 불거졌다. 모르긴 해도 이 뉴스를 보며 이렇게 말하셨던 분들이 꽤 많으리라 생각된다. “뭐, 어제오늘 일인가. 새삼스럽게 왜들 그래.” 그렇다. 우리 문화판에서 각종 표절(또는 표절급 모방)의 사례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기상천외한 법원 판결 사례까지 보유한 국가이니만큼 수많은 ‘성공한 표절자’들이 처벌이나 망신은커녕 버젓한 문화판 인사로 자리 잡고 활동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런 차원에서 “본 적도 없다”고 단호히 일갈하던 소설을 원본 삼은 티가 너무도 나버린 바람에 급기야는 “나도 이제 내 기억을 못 믿겠다”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스런 해명은 차라리 구수해 보인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파문을 낳은 17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한국소설 화제의 책 코너에 신씨의 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등 3권이 진열돼 있다. / 김여란 기자

장충동 족발 진짜 원조는 어느 집일까
나도 글쟁이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벌써 15년이 훌쩍 넘은 만큼 직접 겪거나 가까이에서 본 표절사례가 꽤 된다. 그 첫 번째이자 대표적인 사례는 10여년 전 모 영화정보 프로그램에서 열 달쯤 연재했던 코너(<결정적 장면>이 그 제목이었다)의 연재를 마친 뒤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분명 연재를 그만뒀는데 그 뒤에도 계속해서 주위 사람들로부터 “프로그램 잘 보고 있습니다”라든가 “그 프로그램 그만뒀다고 하지 않았어?” 등등의 말이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해당 프로그램을 봤더니, 연재하던 코너의 구성과 어투를 엇비슷하게 흉내낸 코너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제작사 측에 항의를 하자 ‘<결정적 장면>과는 관계없는 다른 코너’라는 답변만 왔다. 아닌 게 아니라 제작사 측에서는 나름의 회피동작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코너 제목으로 ‘결정적’까지만 쓰고, 그 뒤엔 기타등등의 비스무레한 단어들(예를 들면 ‘대목’, ‘한방’, ‘순간’, ‘찰나’ 등등등)을 붙인다든지, 코너를 담당했던 성우와 어투와 구성은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되, 내가 썼던 문장과 똑같은 문장을 쓰는 등의 꼬투리 잡힐 짓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든지 등등.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일반 시청자들이 대부분 착각을 할 정도면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 라고 물으실 선량한 분들을 위해, 두 번째 사례를 적겠다.

그로부터 얼마 뒤, 졸저를 한 권 냈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사들을 추린 뒤, 당시 유행하던 처세술 책이나 어학교재 형식을 패러디해서(박스나 표를 쓰거나, 별점 그래프를 쓴다거나 등등)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뭐, 덕분에 책이 서점의 영화 코너가 아닌 처세술 코너에 꽂히는 비극적인 경험도 하게 됐지만…. 아무튼, 모 영화주간지가 이 책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 리뷰를 실어주었다.

그런데 이 잡지는 놀랍게도 바로 다음 호에서 이 책의 아이디어와 형식, 어투, 그리고 심지어는 디자인까지 그대로 흉내낸 ‘기획특집’을 내보내는 기염을 토한다. 달라진 것은 다루고 있는 대사들뿐. 이번에는 엄연히 원본(<(어디 가서 써먹기 좋은) 대사매뉴얼>이 졸저의 제목이었다)이 존재하고, 그 저자가 분명히 명기되어 있는 만큼 첫 번째 사례처럼 뭉기적 넘어가진 않으리라고 (순진하게도) 생각했다.

실제로 내 책의 독자들과 내 홈페이지에 올린 항의글을 읽은 독자들도 해당 잡지사의 게시판에 항의글을 올렸다. 이에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책을 읽은 뒤 편집장과의 회의 후에 해당기사를 쓰게 되었는데,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며 게시판에 사과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나는 잡지사 측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잡지사는 거부했다. 그리하여 나는 저작권 심의위원회에 ‘저작권 분쟁 조정’이라는 것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당사자들이 모두 출석한 자리에서 ‘당사자들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명망 있는 제3자’가 위원장이 되어 중재를 진행한다는 이 조정에서 ‘제3자’인 위원장이 대뜸 한 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잡지 기사에 한동원씨의 책과 완전히 똑같은 구절이 있어요? 기사를 쓴 사람들이 법을 잘 몰라서 사과문을 올리고 그랬던 것 같은데, 이건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 나라’
최소한 당사자들이 인정을 한 만큼, 공식적인 사과는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헌법에 보장된 의사표현의 자유’에 의거해 사과를 강제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내 홈페이지에 올린 항의글이 ‘명예훼손’의 소지가 있다는 친절무쌍한 ‘조언’까지 잊지 않았다. 그럼 어쩌라고. 아무 일도 없던 듯 넘어가라는 말인가.

그런 결론을 내리기엔 본인들도 좀 머쓱했는지, 해당 잡지사에서 도의적인 차원에서 한동원씨의 ‘도움’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으로 조정을 마무리하자는 것이 그 ‘위원회’의 결론이었다.

그리하여 그 잡지 다음 호 서두의 에디토리얼 끝자락에는 ‘지난 특집기사에 기여한 한동원씨에게 감사한다’는 한마디가 애처롭게 매달려있게 되었다. 그 잡지에 ‘기여’를 할 의사나 그랬던 사실이 전혀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던 명예훼손 혐의자 한동원씨 본인은, 여기에 적힌 ‘지난 특집에 기여한 한동원씨’란 대체 누구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고, 하여 ‘나도 이제 내 기억을 못 믿겠다’는 생각을 절로 할 수밖에 없었다.

듣자하니 해당 잡지사 편집장은 잡지사를 옮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영화잡지 편집장으로 일했다고 한다. 또 해당 영화프로그램에서 나의 ‘후임’으로서 열심히 표절회피 동작을 한 작가는 지금까지도 버젓한 영화칼럼니스트로 통하고 있는 것 같다. 역시나 한국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는 나라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그렇다. 지금 나는 명예훼손 혐의가 다분한 문장을 쓰고 있다. 무슨 명예를 어떻게 훼손하고 있는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만)

한동원의 에브리컬처

다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거나 ‘창작은 없다. 모든 것은 편집이다’ 따위의 유치하고 조악한 궤변 따위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와 스타일을 찾아내기 위해 수십 겹의 다크서클을 감수해가며 정직하게 노력하는 창작자와 그들이 개척해놓은 새로운 길에 무임편승하는 아류를 구별하는 식별안이 우리 모두의 상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그 상식은 소가 말을 베끼고 말이 소를 베끼는 아류들의 따분한 진흙탕물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운 모양으로 변화하는 창작물의 청량파도를 우리에게 돌려줄 것이기에.

<한동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