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정부보다 바셀린을 믿는 사람들

나라에 역병이 돌고 있다. 막을 수 있었던 재앙을 다시, 고스란히 받아들여만 하는 지금에 우리는 서 있다.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스크를 쓰고, 손발을 열심히 씻으며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신과 가족을 비켜가길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다는 말인가. 거리마다 골목마다 흉흉한 소문이 가득하다. 떠도는 괴담과 유령과 액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문설주에 닭 피라도 발라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다. 2015년, 우리는 떠도는 미신밖에 믿을 게 없다는 말인가. 어쩌면 이제 이 나라 백성에겐 자신을 지켜줄 무엇이 부적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부보다 바셀린을 믿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분노를 넘어 서글픔이 크다.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온갖 소문들이 SNS에 등장한다. 소문은 덩치를 불리며 단련되고, 사람들은 괴물이 된 소문을 더 믿는다. 정부가 솔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민에게 알려야만 하는 정보를 감추기 때문에 괴담이 넘쳐난다. 정부가 우리를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 공포를 부른다. 우리는 이 정부가 재난에 대응하는 그 어떤 시스템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세월호의 침몰을 지켜보며 알게 되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이 없었다는 것이 지금 넘쳐나는 불신의 실체다.

진정 우리가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반복되고 있는 행정부의 무능이다. 이 나라는 이제 어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다시 증명되고 있다. 관료주의에 물들어 책임 회피를 일삼는 공무원들의 무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그 대가가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정부와 관료의 무능이 재난을 키운다. 능력은 어떤 일에 책임을 져야지만 생겨나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부여되는 기준치다. 무능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고, 그래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무능은 죄다. 벌로 다스려야만 한다. 바이러스만큼 더욱 더 큰 공포와 두려움은 아무렇지 않게 훼손된 시스템에 대한 복구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은 계속하여 어떤 재앙과 위험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피하는 것이고, 운이 없으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려운 것은 이 나라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한다. 침몰 중인 세월호를 그저 지켜보던 정부의 모습이다. 국민의 무지와 운 없음이 이번 메르스의 실체인가. 이번에도 그냥 사고에 불과하다고 말할 것인가. 전염병이 돌고 돌아 모두 치명적이고 위험상태에 이르러 살면 사는 것이고, 죽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 자연적인 해결이 정부의 최선의 대책인가. 역병이 창궐하여 학교와 병원, 공공시설이 모두 문을 닫고 사람들은 집에서 나오지 않는 방법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것인가. 감염된 환자들을 격리만 하면 바이러스를 막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정부는 불안함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국민에게 안전을 약속하고 답해라. 국민이 알아야 할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라. 부디 이런저런 말만 늘어놓지 말고 국민을 위해 책임 있는 행동과 조치로 답하라. 국민 모두가 재난영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현실에서 멀어 보이던 공포와 두려움이 실재한다는 것이 더해 두려움이 크기만 하다. 1년 만에 우리는 다시, 여전히 침몰 중인 세월호에 승선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진정으로 반성하고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제 누구도 침몰하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마음을 진정 교훈으로 새겨듣길 간곡히 바란다.

<소설가>

백가흠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