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창간 23주년을 맞은 주간경향의 각오

사람들은 흔히 <주간경향>을 진보적 시사주간지라고 합니다. “<주간경향>은 만날 박근혜만 비판하고 늘 삐딱하게 써”라는 말도 자주 듣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습니다.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기사를 쓰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선후는 조금 다릅니다. <주간경향>이 추구하는 것은 진보지가 아닙니다. <주간경향>이 늘 가슴에 새기고 있는 것은 저널리즘의 원칙입니다. 특정 진영을 위해서, 특정 진영을 대변하는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시사주간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게 저희의 각오입니다. 언론으로서의 사명이 진영 논리에 앞서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을 감시하고, 권력의 잘못된 부분을 비판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의 가장 어두운 구석을 비추다보면, 즉 언론 본연의 역할을 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진보지가 되려고 해서 진보지가 된 것이 아니라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다 보니 진보지가 된 것입니다.

예부터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이 생명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곧 ‘정당하고 이치에 맞는 의견이나 주장(정론)’을 ‘무엇에 구애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직필)’이라는 의미입니다. 정론직필을 통해 감시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권력은 안심하고 부패합니다. 그래서 비판 언론이 중요합니다.

온라인 시대가 되면서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어떤 것이 낚시기사이고, 어떤 것이 좋은 기사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습니다. 많은 가짜 언론들이 권력과 자본을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종편’은 뉴스를 수다로 희화화합니다. 기사에 ‘팩트’는 있지만 ‘진실’은 없다는 말도 흔히 듣습니다. 정론직필이 아니라 돈 버는 수단으로 쓰레기 같은 기사를 양산하는 시대가 된 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좋은 기사가 중요합니다.

<주간경향>은 어떤 상황에서도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숭배하고 기본 강령으로 삼고 있는 것은 진실성과 공정성, 객관성, 정확성의 원칙뿐입니다. 그게 저희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니까요. 예전 MBC〈PD수첩〉이 한창 명성을 날릴 때 최승호 PD가 남긴 클로징멘트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희 PD수첩은 능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았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 간 적은 없었습니다.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 그것은 여전히 저희 PD수첩의 신념입니다.” <주간경향>의 신념 또한 최 PD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능력이 닿는 한 제대로 비판할 것입니다.

<주간경향>이 창간 23주년을 맞았습니다. 1992년 6월 경향신문사의 시사주간지 <뉴스메이커> 창간호가 나온 이후 2008년 <위클리 경향>, 2011년 지금의 <주간경향>으로 제호를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3살이면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셈입니다. 오랜만에 창간사를 들춰보았습니다. 제목이 ‘인간시대의 사람들 얘기’입니다. “우리는 지금 인간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른바 권위주의 시대는 성난 얼굴의 독재자나 권력을 쥔 사람들의 위선적인 미소, 아니면 우격다짐의 제도만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의 모습, 사람의 목소리, 사람의 따뜻함은 거의 뒷전에 숨겨져 있어서 한참 찾아야 했습니다. ~민주시대는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시대입니다.”

권위주의 시대를 넘어 인간시대로 간 줄 알았는데 다시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다시 권력자의 성난 얼굴이, 위선적인 미소가 서민들을 겁박하고 있습니다.

편집실에서 구독

그래서 저희는 마음과 각오를 가다듬어야 합니다. 저널리즘의 원칙을 되새기며 감시와 비판의 정론직필을 휘두를 것입니다. 저 권력자들이 마음놓고 부패할 수 없도록, 국민들을 얕보지 못하도록. 독자님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주간경향>이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