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변방의식’의 예술가 윤이상

기이한 현대 음악의 생산자 윤이상의 위치와 시선은 실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그러한 지리적 기반 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중심주의, 폭력적 권력, 야만에 다를 바 없는 문명적 파괴에 대한 응전이었다.

신영복 선생님의 새 책 <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담론’>(이하 담론)이 출간되었다. 개인적인 소감을 말하자면, 제목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마지막 강의’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듣기로는 출판사에서 제안하고 또 사실상 확정하였다고 하는데, 선생님의 건강이나 연세를 고려한 제목이라면 다소 불경스러운 데가 있고, 어떤 의미를 담아 지었다 해도 그 의도를 느끼기가 어렵다. ‘마지막’이라고 붙였지만 실은 역설의 뜻으로 영원하다는 뜻? 이렇게 꿈보다 해몽을 해보았으나, 그런 의도라면 아예 처음부터 ‘신영복의 끝나지 않은 강의’ 이런 식으로도 얼마든지 독자와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몹시 아쉬웠다.

아마도 성공회대학교 부설 인문학습원의 기획위원으로 8년 가까이 선생님을 가까이에서 뵌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선생님의 강의는 ‘마지막’이기는커녕 늘 현존하는 드라마였고 당대적이었다. 그 공간의 밀도는 ‘명강사’니 ‘스타강사’니 하는 오합지졸들의 호들갑과는 전혀 무관한, 진실로 저마다의 내면을 향해 떠나갔다가, 다시 모두가 선생님의 무릎 아래로 다소곳이 모이는 실존의 시간이었다.

경남 통영시 윤이상기념공원에 윤이상의 초상 사진과 유물 몇 점이 놓여 있다. / 정윤수

중심과 주류서 떨어져 있는 사유의 변방
한 번은 수도권의 어느 도시에서 선생님의 특강이 진행된 적이 있다. 3시간가량 진행되었는데, 중간 휴식도 없이 그대로 직진하는 강렬한 시간이었다. 청중은 무려 300여명. 초등학교 아이부터 연만한 어른들까지, 지역의 정치 활동가부터 주부들, 교사들, 자영업자들까지 300여명이 운집하였으나 어느 한 순간 흐트러진 시간이 없었고 어느 한 대목 헛헛한 공간이 없었다. 각자가 각자의 조건에서 신영복이라는 청신한 석간수를 들이마셨다.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3시간여를 미동조차 하지 않는 강의란, 지금 이 한반도에는 없다. 누구처럼 청중을 윽박지르지도 않고, 누구처럼 현학의 기세로 장광설을 씨부리지도 않고, 또 누구처럼 깨달았네 어쩌네 하는 공허한 소리로 도시인의 헛헛한 마음을 요리해 먹는 것도 아닌, 진실로 300여개의 우주가 저마다의 조건에서 신영복이라는 점을 향해 매듭이 지어져 일순간이나마 서로들 충일한 관계로 형성되는 광경이었다. 이런 강의가 ‘마지막’이라니, 나는 몹시 섭섭하다.

어쨌든, 새 책을 통해 다시금 느낀 신영복 생각의 요체는 ‘변방 의식’이다. 고전을 읽되 우선 고전의 생각을 읽고, 고전을 낳은 그 시대를 읽고, ‘지금, 여기’에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읽어야 한다는 ‘독서삼독’을 시작으로 ‘석과불식’과 ‘관계론’으로 심화되고 확장되는 선생님의 생각, 그 씨앗은 ‘변방 의식’이 아닐까.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도 있거니와 선생님은 ‘변방’이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변두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권력의 중심, 세파의 주류가 아닌, 그 중심과 주류로부터 멀리 떨어져 끝없이 소용돌이치는 사유의 변방을 말한다. 변방은 회의하고 되묻고 모색하는 자리다. 그래서 변화가 생기고 창조가 이뤄진다.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 의식의 핵심이다. 이 과감한 결별, 이 모험 찬 창조에 의하여 변방은 ‘중심에 대한 열등의식’을 떨치게 된다.

이를 예술로 대입하면 곧장 수많은 쾌작들의 발생 근거가 된다. 스페인 궁정화단의 진부한 중심을 뒤흔들어버린 그리스 출신의 낯선 이방인 엘 그레코(1541~1614년)에 대하여 <서양미술사>의 저자 에리히 곰브리치 또한 ‘새로운 형식은 낯선 외부에서 발생한다’고 쓰지 않았던가. 인상파의 문제작들도 왕립아카데미라는 중심과 주류에서 탈락하고 밀려난 소수자들의 쾌거였다.

이때, 변방이란 결코 지리적 개념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일정하게 지리적 조건이 작동하는 수가 있다. 앞서 언급한 엘 그레코도 화려한 스페인 궁정 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진 그리스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스페인 바로크 궁정화풍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지리적 변방이란 점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변두리’에서 왔다고 해서 모두가 말의 참된 의미의 ‘변방 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한 지리적 격절이 중심의 영향을 덜 받는 것도 사실이다.

경남 통영시 윤이상기념공원에 전시된 작곡가 윤이상의 유품. / 정윤수

‘애국자 윤이상’ 명패에 대한 수많은 생각
이 지리적 변방을 사유의 변방으로 심화하고 확장할 때 득의의 예술적 성취가 발생한다. 음악에서 그 대표적인 인물을 들자면, 나는 1초 내로 ‘윤이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1917년 경남 통영 생. 식민지 조선의 남단 항구 통영, 이로써 1차적인 지리적 변방성이 발생한다.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서 현대음악을 배웠고 전쟁 직후 서울에서 활동을 하다가 1956년에 유럽으로 떠난다. 파리에서 1년 정도 정착기를 가진 후 이듬해부터 독일로 옮긴 윤이상은 남은 생애를 독일, 그것도 문제적인 도시 베를린에서 활동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남북 긴장시대의 정치적 상처들에 대해서는 두루 확인된 바가 많으므로 생략한다.

중요한 것은 그의 음악. 1958년부터 윤이상은 현대음악의 메카로 알려진 다름슈타트에 참가하였으며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1959)을 발표하여 유럽 음악계에 충격을 던지게 된다. 관현악곡 ‘바라’(1960),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歌辭)’(1963), 대관현악을 위한 ‘예악’(1966),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1967~68), 혼성합창과 타악기를 위한 ‘나비의 꿈’(1968) 등이 절정기 윤이상의 쾌작들이다. 그 이후에도 윤이상은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1975~76), 오보에, 하프, 관현악을 위한 이중 협주곡 ‘견우와 직녀 이야기’(1976), 그리고 1980년대에 나온 5개의 교향곡 등을 남겼는데 이 성취들의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으나 오늘의 흐름에 의거하되 ‘윤이상 음악의 변방 의식’이 여러 작품들에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낮은 수준의 오리엔탈리즘과는 무관하다. 서양의 설익은 ‘동양 취미’에 호응하여 동양의 음악가가 ‘우리 것’ 운운하며 표피적인 문화적 스와핑을 하는 낮은 차원의 일이 아니다. 윤이상은 변방, 그 외곽에 머물고 또 서성대면서 전쟁과 학살과 야만으로 점철되는 두 문명의 권력적 중심주의를 응시했다.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눈>이 그렇듯이, 이 기이한 현대음악의 생산자 윤이상의 위치와 시선은 실은 동양과 서양이라는 지리적 구분이 아니라, 그러한 지리적 기반 위에서 벌어지는 온갖 중심주의, 폭력적 권력, 야만에 다를 바 없는 문명적 파괴에 대한 응전이었다.

비 내리는 날에 통영을 갔었다. 항구 도시는 비에 젖어 있었다. 비를 맞으며 윤이상의 흔적을 살펴보았다. 한때는 윤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되었던 음악제와 그 밖의 문화사업들에서 점점 이 뜨거운 이름은 연소되고 있다. 윤이상이라는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도 많았고, 그런 압력 밑에서 그나마 명맥을 지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복잡한 사정으로 인하여 윤이상기념공원보다는 ‘도천테마파크’라는 공식 명칭을 쓰고 있는 곳에도 가보았다. 윤이상의 유품을 통하여 그의 흔적을 만져볼 수 있었다. 낡은 여행가방들은 윤이상의 변방 의식을 상징하여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는 중에 어느 전시물 앞에서 나는 멈춰섰다. 윤이상의 유품 몇 점이 놓여 있고, 그 위에 큼직한 초상 사진이 있고, 거기에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애국자 윤이상’

정윤수의 길 위에서 듣는 음악

그것을 보자마자 수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애국자’라…,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호명하고 이렇게 각인하지 않으면 안 될, 어떤 시류의 사정 또한 강하게 느껴졌다. 변방 의식의 예술가 윤이상이 고향에서 한줌이나마 안식과 기억의 거처를 갖고자 한다면 ‘애국자’라는 명패를 강하게 앞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생각했다.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