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웃을 수 없는 집권세력의 슬랩스틱 코미디

A씨는 이른바 대선 공신 중의 한 명입니다.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뛰었습니다. 조직총괄본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정권은 이제 끝났다.” 박근혜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사람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겨우 집권 3년차에. 집권세력이 저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거짓말하고, 발뺌합니다. 친이계를 잡으려다가 제 발등 제가 찍는 게 꼭 심형래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웃을 수가 없습니다. 이 희대의 난장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함과 자괴감을 떨치기 힘듭니다. 저들의 수준이 곧 우리의 수준이기에 그렇습니다. 저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총리가 되고,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고, 장관이 되고, 도지사가 되는 현실 자체가 쪽팔리는데, 그 현실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은 3000만원을 줬다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이완구 총리는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합니다. 그는 급기야 “만약 돈 받은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합니다. 이 총리 말이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현직 총리가 불법자금을 받고, 국민들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까지 하다가 결국은 쇠고랑을 찬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소름이 돋습니다. 정말 그게 현실이 된다면 우리 국민이 너무 비참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가지 않더라도 그를 믿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

총리 말을 믿고 싶은데 왠지 불길합니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사 청문회 때 그에게서 구린내가 얼마나 진동했는지를. 이번에도 그렇습니다. 그는 “돈 받은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난다면 물러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치인이 안 받았다고 버티는 건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우스개이긴 하지만 한국인이 꼽은 거짓말 베스트 20 중 2위가 바로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는 정치인의 말입니다. 오히려 의미심장한 건 ‘명명백백’이라는 표현입니다. 그 뉘앙스가 참 오묘하지 않습니까. 그는 또 “성 전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성완종 전 회장의 비망록엔 2013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20개월간 모두 23차례 만났다고 써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그날 만났다는 주변인들의 증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총리는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게 맞습니다. 수사 대상이 검찰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 있는 것은 누가 봐도 온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수사를 받겠다면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은 총리직을 방패막이로 쓰겠다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난장을 뒤로 하고 해외 순방길에 올랐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혼자 빠져나간 선장의 모습을 떠올리는 게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부패에 책임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부패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총리와 전·현직 청와대 비서실장 등 친박계입니다. 박 대통령의 최측근들입니다.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은 박 대통령 자신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감 표명이나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남 얘기 하듯 부패 척결을 외쳤습니다. 이 무책임하고 4차원적인 유체이탈 화법을 도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겁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박 대통령은 직시해야 합니다.

검찰 수사가 어떻게 결말이 나든 박근혜 정부의 국정 동력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집권 3년 만에 박근혜 정권이 절름발이가 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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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말한 A씨가 그러더군요. “인사가 만사(萬事)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정권에서는 인사가 망사(亡事)가 돼버렸어요.” 왜 이런 경고를 박 대통령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그리고… 한심합니다.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