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여적]대법관

1981년 미국 첫 여성 대법관에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임명된다. 오코너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연방대법원 판결문 서명란이 ‘미스터 저스티스(Mr. Justice)’에서 ‘저스티스’로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평등을 구현해야 할 대법원이 남성 중심 관행에 빠져 있다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여성을 임명하고서야 바뀐 것이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공범을 알았을 때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버렸다고 해명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미국 연방대법원의 법관을 한국 사법체계에 맞춰 대법관으로 번역하지만 미국말로는 ‘정의(Justice)’다. 미국에서 저스티스 이외의 나머지 판사들은 ‘저지(Judge)’이고 번역하자면 ‘판단’이다. 저스티스라는 호칭에는 미국 사람들이 대법관에 거는 기대가 들어 있다. 축구심판 보듯 재판하는 하급심 판사가 보지 못하는 정의를 발견하라는 시민의 명령이다.

우리나라에서 대법관이라는 명칭은 제헌헌법에서 생겼다.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대법원판사였다가 1987년 만들어진 현행 민주화 헌법에서 대법관으로 되돌아왔다. 1988년 이일규 대법원장은 노태우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3공화국부터 대법원판사로 바뀌어 격하된 듯한 서운함이 없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초임 검사 시절 참여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서의 행적 때문에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의 해명을 요약하면 위법은 아니라는 것, 또는 잘못이 없다는 것 같다. 법원조직법을 보면 법관은 세 종류다.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다. 셋을 나눠놓은 이유는 임명절차가 달라서다. 판사는 기준에 부합하면 임관을 거부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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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이유는 대법관이 흠결 없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라 재판받는 시민이 인정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자리라서다. 미국에서 대법관을 ‘저스티스’라고 부르는 이유와 같은 취지다. 무흠결을 주장하기 위해 화려한 법률지식을 동원했던 신영철 전 대법관의 퇴임이 왜 그렇게 쓸쓸했을지, 박 후보자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