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황우석 교수를 한 명의 악당으로 처리해 버렸으면, 사회 전체의 반성이 약해지겠죠. 황 교수는 영화에서 실제보다 ‘과하게, 좋게’ 그려졌습니다. 어쨌든 그런 악당을 만든 사회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가 영화의 레벨을 더 높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능력이 없어서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건 있었지만, 압력 때문에 굴해서 방송을 못한 적은 없었다’고 자부하는 젊은 PD들이 있었다.
학계와 언론, 정부의 카르텔이 낳은 광란과 참사를 겪은 지 10년이 지났다. 강산만 변했고, 사회는 퇴보했다. 지록위마의 시대, 죽은 언론의 사회에서 다시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태를 떠올린다. ‘황우석 사태’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는 배가 되고, 저수지가 된 4대강에서 녹조를 덮어 쓴 큰빗이끼벌레가 되어 출현한다. 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공익 제보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는 마련되지 않았고, 속보경쟁에 혈안이 된 언론, 논문 조작이 판치는 학계, 무능한 정치 3종 세트는 두껍고 뻔뻔한 포장지를 입고 있다.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들을 만나야 했다.
최승호 PD는 MBC를 상대로 해고 무효소송을 진행 중이고, 한학수 PD는 비제작 부서를 떠돌고 있다. 문화방송 아카데미로 발령이 나서 ‘브런치 만들기’ 같은 수업을 들어야 했고, 스케이트장으로 발령이 났다가 번복되기도 했다. ‘내가 과연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인이 맞는가’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학수 PD와 뉴스타파 앵커로 있는 최승호, 언론인을 제보자로 설정한 영화 <제보자>의 감독 임순례 세 사람을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만났다.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서울 마포구 뉴스타파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녹화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영화 <제보자>의 실제 인물과 감독
영화감독의 눈에 비친 ‘황우석’이라는 캐릭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임순례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연구대상이에요. 전무후무한 매력적인 캐릭터죠. 젊은 감독들 모임에 갔더니 그러더라고요. 황 박사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영화에서 재현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제보자>가 나와서 실망했다고.(웃음) 분신자살을 하신 분들도 계시고, 난자 기증을 전 국민적으로 한다고 진달래꽃을 뿌리고… 시각적·의미적·상징적으로 굉장히 임팩트 있는 장면이 많은데, 그런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이 들어가면, 이 영화에서 황우석 박사 개인에게 비난이 쏟아졌겠죠. 올바르게 진실을 추적하는 언론도 있었지만, YTN같이 당시의 진실을 가리는 언론도 있었고, 난치병 치료라든지 생명 연장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앞서다 보니 복합적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모든 환경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거죠, 미디어를 통해서 과학자가 그렇게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건 아마 세계적으로 전무한 사례일 겁니다. 인터뷰할 때 보면 기자들에게도 호의적이고, 카메라 앵글도 잘 알아요. 매우 미남이시고요. 미디어를 잘 알고 활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실제를 잘 반영했던가요?
한학수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울컥하는 장면들도 있었어요. 박해일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배역을 소화해 주어서 더없이 행복했습니다.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좀 더 친숙하고 따뜻하게 대해줬어요. 황우석 사태에 대해서 PD수첩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되는가 하는 의문을 영화에서 상당히 잘 풀어 주었어요.”
최승호 “제가 몸무게 변화가 없는 사람인데, 그 당시엔 몸무게가 거의 7㎏ 빠졌어요. 영화에는 MBC가 이상적으로 그려졌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어요. 바람직한 언론상을 그려보고 싶은 감독님의 마음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한 “박해일씨와는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밥을 한 번 먹었습니다. 박해일씨는 대단히 수줍어하는 성격의 배우였어요. 연예인이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술을 몇 잔 먹고 ‘나는 사실 코믹한 사람’이라고 농담도 건네고 했더니 한 시간쯤 지나서야 박해일씨가 저한테 질문을 시작하고 그 후 4시간 동안 저를 집요하게 추궁했어요. 제 책뿐만 아니라 황 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기사들을 다 읽어보고 왔더라구요. 박해일씨는 몇 시간 사이에 저에 대한 특징들을 잡아낸 것 같아요. 승호형 앞에서도 제가 ‘쫄았구나?’ 이런 말을 실제로도 했거든요. 영화에서도 해일씨가 그 대사를 치더군요. 제 주변 사람들도 얼굴만 빼고 많이 비슷하더라(웃음) 그러더군요.”
영화에서 이상적인 MBC, 실제완 달라
임 “저는 한 PD님 처음 만났을 때 사실 굉장히 놀랐어요. 실례된 표현이지만, 너무 촐랑대가지고.(웃음) 아주 유쾌한 사람이었어요. 약간 형사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박해일씨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했죠. 제가 박해일씨한테 주문한 게 집요하고, 집중력 있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이지만 또 때로는 여자 후배를 대할 때나 이럴 때는 장난스러운 면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죠.”
감독님,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다는 게 참 부담스러운 일인데요.
임 “황우석 사태가 10년 전에 이미 PD수첩을 통해서 진위가 밝혀졌고,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더 흥미롭게 다루기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거절을 했죠. 그러다가 한학수 PD가 쓴 <진실, 그것을 믿었다>의 원작인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라는 책을 읽게 됐어요. 그때 그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 안에서 어떤 사명감이 생겼어요. 황우석 박사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도, 10년이 지난 지금도 버젓하게 또 다른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다니고 있는 현실에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어요. 두려운 마음도 있었죠. 아직도 황 박사 지지자들이 많은데, 그들과 싸우거나 논쟁의 중심에 서야 하니까요. 그때 최승호, 한학수 두 언론인이 져야 했던 리스크를 생각하고 용기를 냈죠. 언론이 계속 억압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다 떨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노력하는 언론인을 제보자로 설정했습니다.”
제보자 류영준 박사가 PD수첩 15주년 특집 기념 방송에서 최승호 PD의 멘트를 듣고 제보를 결심했다고 밝혔어요. ‘우리가 지금까지 능력이 없어서 제대로 파헤치지 못한 건 있었지만, 압력 때문에 굴해서 방송을 못한 적은 없었다’는.
최 “본인 신분을 다 밝힌 상태에서 ‘줄기세포 문제’ 제보를 해왔어요. 굉장히 심각하게 느꼈죠. 당시에 제가 다른 팀에 가서 삼고초려 끝에 겨우 한학수 PD를 영입해 왔거든요. 마침 학수가 줄기세포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장 제보자를 만나보라고 했고 일이 시작된 거죠. 류 박사를 만난 후 보고한 내용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줄기세포 만드는 과정에서 난자를 돈을 주고 입수하거나 연구원의 난자를 쓰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과 줄기세포가 가짜라고 확신하는데 증거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한 “보통 부장들이 제보 아이템을 보고 PD에게 ‘직접 만나보라’고는 안 하거든요. 승호형이 저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무언가를 읽어냈던 건 틀림없어요.”
최 “그 당시 전체 언론이 황우석 교수의 모든 걸 중계방송했죠. 물론 국민으로서 기쁘기도 했지만, 전체 언론이 난리법석을 치는 걸 우리가 회의적으로 본 겁니다. 어떻게 이런 완벽한 영웅이 탄생하는가, 사실이기에는 너무 완벽한 영웅 아닌가! 그때 마침 류영준 박사의 제보가 들어온 거죠. MBC가 그 당시에는 지금보다 훌륭했죠. 하지만 영화에 묘사된 것과 같은 MBC는 아니었습니다. 국장책임제라는 노사간 맺어진 단체 규약상 공정방송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거는 경영진이 방송에 간섭을 못하고, 방송에 대한 실무적인 책임과 권한이 국장에게 있다는 겁니다. 6월항쟁 이후에 노조가 얻어낸 하나의 장치였죠. 국장까지만 알고 국장이 책임지면 되니까 국장 위로 더 보고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취재를 하게 된 겁니다. 그래서 줄기세포가 가짜라는 것까지 파헤친 거죠. 방송을 하고 난 뒤에, 우리는 시청자들이 황 교수의 문제점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우리를 믿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최승호 PD와 한학수 PD(오른쪽). MBC는 최근 교양제작국을 해체하고 한학수 PD를 비제작부서인 신사업개발센터로 발령냈다. | 박상미 제공
PD수첩 규탄집회 보면서 두려움 느껴
당시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의 PD수첩 규탄집회를 보면서 심정이 어떠셨어요.
한 “영화에서 임 감독님이 표현하신 그것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촛불이 MBC 전체를 둘러쌌을 때, 10층에서 광경을 내려다 보면서 엄청 두려웠습니다. 영화 속 장면이 사실이에요. 승호형이 없었다면, 외로워서 못 견뎠을 겁니다. 저도 사람인데 왜 안 힘들었겠어요. 힘들고, 빠져나가고 싶었고. 웬만하면 이쯤에서 돌리고 싶고… 두려움은 영화에서 표현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저는 창을 다루는 조자룡이었고, 실제로 큰 판을 그렸던 건 승호형이었어요.”
최 “광고가 다 떨어져 나가고 YTN에서 이른바 청부 취재를 내보내구요. 김선종 연구원의 ‘한학수 PD의 협박에 못 이겨 거짓 증언을 했다’는 그야말로 거짓 인터뷰를 YTN에서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계속 방송을 했어요. 그 방송이 나가자 MBC 경영진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YTN의 방송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PD수첩 팀을 신뢰하지 않았죠. 결국은 방송을 완전히 중단하는 사태까지 갔습니다. 전문 연구자들의 온라인 대화 장소인 브릭에서 연구자들이 황 교수팀의 논문이 날조로 얼룩졌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혔어요. 줄기세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접근한 증거가 제시되면서 기류를 바꾸는 역할을 했고, MBC는 방송 결정을 하게 된 것이죠.”
실제로 만난 황 박사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한 “저는 황 교수를 나쁘게 보지 않았습니다. 류영준 박사의 제보를 받기 전에 황우석 박사의 생명윤리에 대해 취재를 하면서, 너무 과한 열광이 황우석을 조명하고 있지 않은가, 윤리적 균형을 찾자는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졌는데, 제보자의 이야기를 듣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어요. 이 땅에 정의가 있다면 이런 사람이 이 많은 연구비를 쥐락펴락하는 것이 옳단 말인가? 네트워크에 강한 사람들이 다 해먹는 세상이라니!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이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겠습니까. 분노했고, 증오했고, 끝까지 황 교수의 실체를 파헤쳐야만 했어요. 그런 분노가 때로는 조금 과해서 미국에서 김선종 연구원에게 ‘황 교수가 구속될 것이다, 검찰 조사를 받을 것이다’ 이런 제 생각을 이야기하기에 이르렀죠. 영화에서 황 교수를 한 명의 악당으로 처리해 버렸으면, 사회 전체의 반성이 약해지겠죠. 황 교수는 영화에서 실제보다 ‘과하게 좋게’ 그려졌습니다. 어쨌든 그런 악당을 만든 사회에 대한 반성의 메시지가 영화의 레벨을 더 높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영화에서는 황 박사가 대학 선배임을 넌지시 말하기도 하고, ‘내가 앞으로 잘할게, 시간을 달라’ 이런 대사를 했는데 실제로 들은 말인지요.
한 “실제로 들은 말입니다.”
최 “줄기세포를 받아와서 테스트를 해봤고, 가짜라는 결과가 나왔을 때 우리가 황 교수를 찾아갔어요. 황 교수가 결과를 보면 충격 받아서 자살기도를 할지도 모른다. 앰뷸런스를 대기시켜야 하나? 상당히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지를 들고 갔어요. 우리가 순진했던 거죠. ‘가짜로 나왔습니다’ 하고 설명을 했는데 황 교수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아요,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주 허접한 곳에서 검사를 하고 쓸데없는 결과를…’ 이러는 거예요.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죠.”
“10년 후에도 진실로 남을 보도를 하자”
진실을 파헤친 대가는 잔인했습니다.
최 “그 당시 우리는 스스로 약자라고 느끼게 됐죠. PD수첩이 2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탐사보도를 했고, 압력에 굴복한 적이 없기에 자신 있었죠. 그런데 PD수첩을 무기한 중단한다, 실제로 예고에는 ‘PD수첩 폐지’라고 나갔어요. 바로 그 직후에 저와 당시 국장, 한학수 모두 징계를 받았죠. 제가 감봉 3개월, 국장이 근신. 징계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대기발령이에요. 제가 PD수첩 팀장이었는데, 대기발령이 된 상태에서 당시 부국장이 PD수첩 팀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PD수첩을 가로챈 거죠. 저와 학수는 다른 부서로 쫓겨가고 진실은 묻히는… 그때 정말 처절했습니다.”
가족들도 큰 고통을 당하셨어요.
최 “저는 덜했죠. 한 PD는 가족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고 협박을 받고… 집을 떠나야만 했어요.”(인터뷰가 끝난 후 사석에서 만난 최승호 PD의 아내는 당시에 최 PD가 잠을 자다가도 대여섯 번씩 벌떡 일어나서 ‘여보, 줄기세포가 가짜래’, ‘여보, 믿을 수 있어?’와 같은 말을 하며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한 “저는 칼잡이로서의 이미지가 강해서 미움을 더 받은 면이 있었죠. 승호형도 죽이겠다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둘 다 24시간 경호를 받으라고 했는데, 승호형은 거부를 했죠. 돌을 던지면 맞겠다고 했어요.”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님께 묻습니다. MBC 해고무효 소송에서 이기면 MBC로 돌아가실 겁니까.
최 “간다고 해야 대법원에서 복직 판결이 납니다. 대한민국 언론이 언론인을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과제는 반드시 ‘복직’으로 완성해야 합니다. 그 다음 행보는 개인의 선택 문제입니다.”
한학수 PD님, 이런 사건은 앞으로도 생기겠죠. 진실을 밝히는 게 국익이라면, 또 하실 건가요.
한 “참 가혹한 질문입니다. 군대 한 번 더 갈 수 있겠냐? 하는 질문과 같습니다.(웃음) 아마 갈등하겠죠. 아내와 상의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족에게 큰 위해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동반자에게 말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에 와이프는 의외로 쿨 했어요. 단, 안전하게 하라고 했죠. 다시 같은 상황이 온다면… 다르지 않을 겁니다.”
후배 언론인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속보경쟁이 문제입니다. 그게 언론인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내가 보도한 것이 10년 후에도 진실로 남아 있을 수 있는 보도를 하는 언론인이 됩시다.”
이제, 제보자가 배신자로 치부되는 사회에서 제보자 K로 살아온 류영준 박사의 이야기를 들을 차례다. ‘죽은 윤리의 사회에서 제보자로 살아남기’는 가능한 일일까. 지난 10년간 학계는 변했을까. 황상익 박사를 통해서 ‘줄기세포 비망록’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들어보자.(다음주 연속)
<박상미 문화평론가>
![[오늘을 생각한다]](http://img.khan.co.kr/spko/ranking/weekly/140098/20240430104625_14009801.jpg)
점점 커지는 채 상병 의혹
‘이채양명주’ 의제로 올려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