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모두 ‘산업역군’일 순 없지 않은가?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러한 세태가 ‘자괴감’을 우리 시대 사회 초년생들의 일반적 정서로 만든 것이다.

페이스북에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이란 그룹(이름만 유니온이지 노동조합은 아니다. 아쉽게도)을 만든 지도 벌써 5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라디오와 주간지, 일간지 등 일곱 군데 정도 인터뷰를 하고 그룹 가입자도 3000명을 넘었으니 나는 명실상부 일 못하는 것으로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드물기는 하지만 요즘도 언론에서 연락이 오고, <주간경향>에서 지면도 내주겠다는 것을 보니 ‘일 못함’이라는 주제에 기자들의 촉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내게 전화를 건 <주간경향> 기자도 그 촉에 낚였으리라.

처음 전화로 연재 제안을 받고는 조금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내 부담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일 못한다고 자처하는 필진들을 모아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감을 가져도 되겠다 싶었다. 애초에 우리는 일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글이 재미가 없으면 우리 책임이 아니다. 만약 반응이 안 좋으면 그때는 우리를 섭외한 기자도 일못 유니온에 들어와서 같이 놀면 되지. 오늘은 처음이니 ‘일못’을 처음 접하는 분들을 위해 그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보려 한다.

일 못하는 사람 유니온 페이스북 페이지.

1. 왜 이런 모임을 만들었나
사실 나는 2014년 중반까지 모 시민단체의 활동가였다. 2013년 초반 우연한 기회를 만나 면접을 본 그 단체에서 나는 1년 반을 일했다. 일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았고 옳은 일을 한다는 정체성도 좋았는데, 1년쯤 일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내가 일을 매우 못 한다는 것이었다. 회의시간은 나의 결과물과 계획에 대한 성토로 채워졌고, 사무실 분위기도 갈수록 험악해졌다. 회의시간에 몇 번을 뛰쳐나왔다. 일을 잘해 보려고 할 일 목록을 적는 노트도 만들어 보고 표도 그려 봤지만, 노트든 표든 다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페이스북에 그룹을 만든 것은 며칠 후의 일이다. 나는 개인 담벼락에 퇴사 과정에서 느낀 자괴감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거기 몇 명의 지인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 다음 과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장난삼아 그룹을 만들었고, 거기에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까지의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지 못했다.

2. 일 잘함/일 못함이란 무엇인가
일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한 시대의 일 잘하는 사람이 다음 시대의 부적응자가 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일 못함’은 왜 유독 문제가 되는가? 우리 시대, 우리 세대의 ‘일’이 천편일률적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산업역군’이 될 수 없다. 자영업을 시작하자니 위험부담이 크다. 가장 넓은 문은 사무직이 되는 것인데, 사무 노동자는 갖가지 편법으로 인해 파리 목숨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러한 세태가 ‘자괴감’을 우리 시대 사회 초년생들의 일반적 정서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사실 수년 전 ‘엄친아’의 유행을 통해 예언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별 볼 일 없는 생활이 불만이고, 상사들은 신입사원의 패기 없음이 불만이겠지만 어쩌겠는가. 돌파구가 없는데.

3. 무얼 하려고 하는가
원래는 이 주제로 글을 끝내려 했으나 쓰다 보니 요청받은 원고 분량을 넘어가 버렸다. 목표에 대한 이야기는 앞으로 계속하면 되니까 크게 상관없을 것으로 믿는다.

오늘의 한 줄 요약: 일 못하는 나는 세상의 찌꺼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말을 밖으로 꺼내 보니 나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더라.

그래, 나는 일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