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원의 에브리컬처]신년 벽두 “용한 점집 어디 없수?”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 및 도박성을 먹으며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 점술시장은 이제 ‘운명 철학관’을 ‘운명 24시간 편의점’으로까지 진화시키고 있는 추세다.

1월이다. 점의 계절이다. 우리나라 점은 음력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인데 어째서 양력 1월이 점의 계절이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저도 그걸 모르겠다니까요, 라고 답 드릴 수밖에 없다만, 아무튼 요즘 부쩍 내게 용한 점집 전화번호를 물어오는 지인들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는 걸 보면 점의 계절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가 점 또는 그에 준하는 행위를 한 것은 왕년 대학입시를 보는 과정에서 답안지 공란 메우기에 시계 초침을 활용했던 것이 마지막이다. 벌써 20여년 전 일이다. 그런 내게 사람들이 용한 점집을 물어오는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얼마 전 점집에 관한 책을 냈기 때문인데, 사실 나는 점(과 그 적중 여부) 자체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직 ‘점쟁이’라는 심리(또는 심령?) 엔터테이너들의 각종 영업용 테크닉들이나 임기응변 노하우 같은 것들, 아니면 점집의 인테리어나 소품 같은 것들뿐이어서, 나한테 용한 점집 전화번호 같은 거 물어봐야 애꿎은 복채만 날린다, 라고 아무리 말해도 전화는 오늘도 변함없이 걸려오고 있다. 모르긴 해도 설이 다가오면 그 빈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두렵다. 예전처럼 삐삐(그런 게 있었다) 쓰던 시절이라면, 착신 인사말에 “점집에 관해 문의하실 거라면 실수하고 계신 겁니다” 같은 멘트라도 녹음해 둘 텐데.

아아, 그립다. 그런 거 공짜 서비스로 남겨두던 그 순진하던 시절.

각종 점집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확실성을 먹으며 커가는 점술시장
그런데 생각해보면, 오죽하면 나한테까지 전화를 할까 싶다. 만일 어디선가 객관적이고 엄정한 검증을 거친 점집 정보를 얻을 수만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더구나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우리 사회의 불확실성 및 도박성을 먹으며 무럭무럭 커가고 있는 점술시장은, 이제 ‘운명 철학관’을 ‘운명 24시간 편의점’으로까지 진화시키고 있는 추세다.

하여 이 지면을 빌려 신년 소망 하나 빌고자 한다. 올해엔 아예 국가 차원의 점집 공인인증 제도가 마련되어 복채 양성화를 통한 부족한 세수 확충… 같은 거야 내가 알 바 아니다만, 아무튼 그런 것이 생겨 팔자에도 없는 점집 옐로페이지 신세로부터 해방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신년소망 되겠다.

이 대목에서 ‘아이들 돌볼 돈도 없는데 점집 나부랭이에 쓸 나랏돈이 어디 있어!’라는 비판이 들려올 것만 같은데, 그 문제는 ‘국민 점집 배심원제’ 도입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점술능력 검증시험(이하 ‘점능시험’) 지원자는 무작위로 선출된 배심원들의 단기 미래(대략 석 달 정도 앞)를 예언하고, 배심원들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이 예언의 적중도를 평가한다. 그러면 해당기관(이 어디가 될지는 전혀 모르겠다만)에서는 그 보고들을 토대로 합격 여부를 판명한다. 까다롭고 심각한 재판이라면 몰라도,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라면 기꺼이 응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편의점만큼이나 교회가 많은 나라이니만큼 종교적 문제로 인하여 점능시험 운영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글쎄. 꼭 그럴 것 같지만도 않다. 내가 취재차 들렀던 한 점집에서, 모 종교의 장로로서 ‘통째로 봉헌’ 등의 발언을 통해 종교적 신념을 호방하게 떨치셨던 모 전직 대통령이 대선후보였던 시절 발급한 ‘종교분과 자문위원 위촉장’이 물푸레나무 액자에 고이 모시어져 내걸려 있었던 것을 보면. 아무튼.

내친김에 한 가지만 더 말하면, 점술공간과 대기실 사이의 방음 설비 기준 또한 반드시 마련되었으면 한다. 취재차 점집을 다니는 동안 항상 느꼈던 문제인데, 거의 모든 점집에서 점술공간(주로 ‘법당’이나 ‘상담실’ 등으로 불림)의 문짝 및 벽이 거의 습자지급으로 얇아서 대화내용이 대기실까지 생생히 울려 퍼졌다. 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들려왔던 그 대화내용은 실로 민망하게도 연애, 임신, 배우자 외도, 고부갈등 등등의 상당히 내밀한 사연들이었던 바, 심지어 어떤 점집에서는 대기자들이 그 내용을 가지고 훈수를 두거나 논쟁을 벌이는 광경이 목격되기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심지어 어떤 점집에서는 대기실과 점술공간 사이에 조화 몇 송이 꽂아놓은 카페용 좌석 칸막이만 덜렁 세워놓은 채 영업을 하는 등, 이에 대한 배려 및 고려는 전무한 실정이었다. 뭐, 덕분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 꽤 다양한 사례들을 수집할 수 있어서 좋았다만, 막상 점을 보러 들어가서는 내내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종이컵 전화라도 만들어서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라지지 않는 못마땅한 것들
만일 방음시설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면, 그 대용으로 대기실 손님들에게 귀마개나 헤드폰 등 개인방음장비를 지급하고 그조차 여력이 안 된다면, 점술현장에서 말 대신 카톡 등의 메신저로 점괘를 전달해야 한다, 등 사생활 보호를 위한 방음 기준 마련은 필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 공인 점집 옐로페이지와 박스오피스 집계 시스템도 구축해 운영해 주기 바란다. 작두가 서 말이라도 갈아야 보배다. 아무리 돌팔이들을 걸러내고 제대로 된 설비를 갖춘 점집들의 라인업을 구축하더라도, 소비자들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하여 책임기관에서는 홈페이지에 공인 점집의 이름과 위치, 그리고 전화번호가 적힌 옐로페이지(전화번호부)를 운영해, 손님 좀 떨어졌다 싶으면 마치 갓 신내림을 받은 루키보살로 신분 세탁하여 손님을 새로 받는 돌팔이 보살이나 사주명리원리를 적용한 프로그램 주식투자 자산운용 등을 참칭하여 투자금 먹튀 일삼는 사주 사기꾼 등등을 미연에 방지하는 효과를 득함과 동시에, 나는 매년 연말연시마다 걸려오는 점집 문의전화로부터 해방되는 부수적 효과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이 땅의 수많은 점집 애호가들이 함량 미달 점술자나 돌팔이사기꾼들에 대한 걱정 없이, 정신적 크리넥스 또는 영적 대일밴드로서 각 장르의 공인 점집들을 마음 놓고 즐기는 광경…. 적어도 가짜 기부 영수증을 만들어서 내 이웃의 탈세를 도와주는 각종 ‘제도권’ 종교단체들에 대한 뉴스를 듣는 것보다는 훨씬 흐뭇하다.

예나 지금이나, 이른바 ‘제도권’에서는 모래에 머리 박은 타조마냥 점술자와 점집에 대해 투명인간 및 투명시설물 취급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렇게 하여 못마땅한 것들이 저절로 사라진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오히려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날 뿐이다.

같은 원리로 그 역 또한 성립한다. 뭔가가 있다고 강조 또 강조하며 애써 부르짖는 행위는 결국 그것이 없는 상태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할 뿐이다. 예컨대 ‘행복’, ‘혁신’, ‘안전’, ‘소통’ 같은 것들 말이다.

한동원의 에브리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