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눈]관용이 범죄인 사회의 비극

로베스피에르가 이끌던 공포정치가 기승을 부린 1793년 가을, 프랑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리고 지롱드파 지도자 20명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뒤를 이어 ‘지롱드파의 여왕’으로 불리던 마담 롤랑이 단두대에 올랐다. 그때 롤랑은 단두대 위에서 이런 외침을 남겼다.

“아!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죄를 범할 것인가?”

프랑스대혁명이 내걸었던 자유의 꿈은 그렇게 공포정치를 자행하기 위한 명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역사상의 모든 공포정치는 예외없이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행해졌다.

연말 연초를 거치며 한국 사회에서는 ‘종북 척결’을 명분으로 공안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종북정당’으로 낙인찍힌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강제해산당했다. 그러나 공안통치의 배는 여전히 고픈 모습이다.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전직 의원들의 피선거권을 박탈하자는 입법 논의가 진행되고, 당원들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고 있다. 아예 통합진보당을 이적단체로 규정하는 데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는 소식까지 전해진다. 그들의 주장을 거들거나 헌재의 결정을 부정하는 집회도 금지대상이 된다고 한다. 상황이 이쯤되면 이는 특정 정당만의 문제를 넘어서게 된다.

애당초 큰 틀의 정치로 해결할 일이었다. 불온하게 보이는 정치세력이 있다면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통해 퇴출되도록 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정부와 헌법재판소와 검찰과 경찰이 총동원되어 특정 정당을 궤멸시키는 데 나서지 않으면 사회가 유지되지 않을 정도로 이 나라의 기반이 허약하지는 않다.

어디 통합진보당 문제뿐인가. 정치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이어지고 있건만, 해결사로 나서는 것은 언제나 검찰과 경찰이라는 물리력을 가진 기관들뿐이다. ‘정윤회 문건’ 파문이라는 가장 정치적인 사안조차도 검찰에 해결을 맡겨놓은 상태이다. 검찰은 문건의 진위 여부, 그리고 유출과정을 밝힘으로써 이 사건에 대한 결론을 내리려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불통과 폐쇄적 국정운영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검찰 수사를 통해 논란이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 논란을 빚고 있는 수많은 일들도 사실은 온갖 비판을 포용하고 그러한 비판의 소지를 없애도록 정치적 노력을 기울이면 될 일을, 역시 검찰과 경찰이 나서 번번이 사건으로 만들고 있다. 집권자의 불통과 아집이라는 갈등의 근원을 직시하여 고치지 않고 힘에만 의존해서 국가를 운영하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며, 결국은 부메랑이 됨을 역사의 경험들은 말해주고 있다. 때아닌 21세기판 ‘경찰국가’(police state)의 모습은 민주주의의 성취라는 자긍심을 간직했던 우리 가슴에 참담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유창선의 눈

다시 1793년 프랑스. 공포정치에 반기를 들고 관용을 요구하다가 역시 처형당한 카미유 데물랭은 “왜 공화국에서는 관용이 범죄가 되는가?”라고 물었다. 관용이 곧 범죄인 시대, 그 속에서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상은 배반당했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의 말로는 언제나 비극적이었다. 그것이 어찌 이백수십 년 전 프랑스만의 일이겠는가. 역사의 교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법이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