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영어의 ‘권위’를 벗어던지자

<얼음 속의 소녀들>
톰 롭 스미스·박산호 옮김·1만4000원·웅진지식하우스

다니엘은 어른이 되는 동안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스웨덴에 있는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연이어 병원에서 도망친 어머니가 영국의 다니엘 앞에 나타난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범죄자라 주장하고, 아버지는 어머니가 미쳤다고 한다. 대체 무엇이 진실일까?

다니엘의 부모인 크리스와 틸데는 노후를 위해 스웨덴 시골 마을의 농장을 인수한다. 그리고 지역 유지인 하칸을 만난다. 하칸은 지배자다. 지역의 정치인과 경찰도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하칸의 편이 아니면 낙오자가 된다. 그런데 틸데는 하칸을 심각한 범죄의 주모자라고 의심하게 되고, 크리스는 하칸과 가까워지며 의심하는 틸데를 나무란다. 여기까지는 틸데의 주장이다. 크리스의 말과 입장은 전혀 다르다.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위해 다니엘은 스웨덴으로 향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차일드44>로 데뷔한 톰 롭 스미스의 신작 <얼음 속의 소녀들>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나에게도 비밀이 있고, 부모에게도 뭔가 비밀이 있다. 나는 정말로 그것을 알고 싶은 것일까? 모든 진실을 알게 되면 행복한 것일까? <얼음 속의 소녀들>은 톰 롭 스미스의 실제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소설 초반의 상황을 실제로 겪은 것이다. 경험을 토대로, 톰 롭 스미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가란 질문에서 출발하여 외면하고 싶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결국은 각자의 의지로 감당해야만 하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실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받아들이는 그가 위대한 것이다.

<얼음 속의 소녀들>은 섬세하면서도 교묘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어머니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이 그동안 보았던 어머니는 과연 누구일까? 왜 갑자기 어머니는 돌변한 것일까. 하칸은 정말 끔찍한 악인일까? 숱한 질문들 속에서 다니엘은 탐정이 되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칸, 하칸의 부인, 하칸의 적이라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하칸이 악인이라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저 하나의 ‘진실’이 밝혀질 뿐이다. 톰 롭 스미스는 <얼음 속의 소녀들>을 전혀 의외의 방향으로 끌고 간다. 다니엘이 추적하던 진상의 한참 너머에 있던 진실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톰 롭 스미스는 29살에, 자신이 살아보지도 않았던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배경으로 한 <차일드 44>를 발표하며 각광을 받았다. 너무나도 생생하여 소름 끼쳤던 <차일드 44>를 생각하면 <얼음 속의 소녀들>은 담담한 소품이다. 그러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얼음’ 속에서 소녀들의 처참한 과거를 파헤치는 <얼음 속의 소녀들>은 책을 덮고 난 후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끔찍한 상처를 입은 인간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잊어버리거나 극복하거나 아니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어느 쪽이건 처참한 흉터를 남기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결과는 다르다.

북리뷰

톰 롭 스미스는 <얼음 속의 소녀들>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살아남아서,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