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카르티에, 발롱 블루 드 카르티에-브랜드 디자인 철학 담은 21세기 명작

16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르티에(Cartier)는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주얼리 명가이자 시계 제조사로서도 풍부한 유산과 노하우를 가진 브랜드다. 지난 7월 19일부터 10월 12일까지 중국 상하이 당대예술박물관에서는 중국·프랑스 국교 수립 50주년을 기념한 카르티에 타임 아트 전시회가 성황리에 개최된 바 있다. 국가간 수교를 기념하는 의미 있는 이벤트에 글로벌 브랜드로는 유일하게 참여했다는 것은 카르티에가 지닌 위상과 아시아 특히 중국에서의 높은 유명세를 반영한 결과다.

연재 초반 우리는 카르티에의 손목시계 제조 역사상 가장 중요한 컬렉션인 산토스와 탱크를 연이어 살펴본 바 있다. 이번에는 21세기 들어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선호도가 높은 발롱 블루 드 카르티에(Ballon Bleu de Cartier·이하 발롱 블루)를 다루고자 한다.

2014년 SIHH 신모델 발롱 블루 드 카르티에 39mm 플라잉 투르비용 에나멜 시계

등장과 동시에 젊은 여성들의 선풍적 인기
최초의 손목시계 중 하나인 산토스(1904년)를 필두로, 다이얼 위에 시·분침이 둥둥 떠 있는 것만 같은 신비로운 메커니즘의 미스터리 클락(1912년), 거북의 등 모양에서 착안한 톡튀(1912년), 표범에서 영감을 얻어 여성용 주얼리 시계로 출발해 올해 벌써 100주년을 맞은 팬더(1914년), 아르데코 사조의 유행을 예견한 사각시계의 아이콘 탱크(1917), 1943년 발표한 크라운 캡에 짧은 체인을 연결시킨 형태의 첫 방수 손목시계를 계승한 파샤(1985년), 모터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로드스터(2001년), 첫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장착한 본격 남성 컬렉션인 칼리브 드 카르티에(2010년)에 이르기까지 카르티에는 거의 전 손목시계 컬렉션을 예외 없이 히트시켰다. 스위스의 내로라하는 고급 시계 제조사들도 브랜드를 대표할 만한 컬렉션이 한두 개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카르티에는 여러 컬렉션이 현대의 클래식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가히 독보적인 경지로서 카르티에가 왜 주얼러로서뿐만 아니라 시계 제조사로서도 중요한 브랜드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중 2007년에 론칭한 발롱 블루는 카르티에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의 정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등장과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비교적 뒤늦게 카르티에 컬렉션에 합류했음에도 발롱 블루는 업계에서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에 가장 성공한 컬렉션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발롱 블루는 최근 유행하는 패션 용어로 ‘잇(It) 아이템’으로 통할 만큼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가격대부터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제법 고가의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여성들로부터 선망의 대상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손목시계 역사상 실로 보기 드문 광경이다.

베스트셀러인 발롱 블루 드 카르티에 스틸 모델

국내에서도 예물용으로 선호도 높아
그럼 발롱 블루의 인기 비결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프랑스어로 파란 공을 뜻하는 발롱 블루는 손목시계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에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마치 공상과학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선이나 조약돌을 연상시키는 원형의 볼륨감 있는 케이스는 거친 면이나 모서리가 없이 전체적으로 매우 부드럽게 곡선 처리되었다. 또한 블루 사파이어 내지 합성 스피넬(첨정석)을 카보숑컷으로 둥글게 깎아 제작한 크라운은 케이스 안쪽에 밀착돼 외부의 아치형 메탈로 감싸 보호된다.

이렇듯 발롱 블루는 시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그 케이스 형태와 가공 처리에서부터 기존의 카르티에 컬렉션과 차별화된 노선을 보여주고 있다. 흠을 찾기 힘들 정도로 세심하게 가공된 케이스는 그 자체로도 부드러운 곡선미와 특유의 우아한 멋을 드러내 보였고, 여기에 발롱 블루가 뜻하는 파란 공을 형상화한 블루 사파이어 카보숑컷 크라운은 화룡점정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반면 모던하면서도 절제된 아방가르드를 구현한 케이스와 달리 다이얼은 기존에 카르티에가 한결같이 추구해온 클래식 스타일을 그대로 이어갔다. 두툼한 블랙 로만 인덱스와 철로를 형상화한 미닛 트랙, 기요셰 다이얼, 검 모양의 블루 핸즈 같은 요소들이 그것이다.

발롱 블루는 여성용 사이즈인 케이스 지름 28.6㎜와 33㎜ 모델에서부터 남녀 공용인 36.6㎜, 남성용 42㎜와 일부 플라잉 투르비용 칼리버를 장착한 최고급 모델은 46㎜까지 다양한 크기로 선보였으며, 또한 가죽 스트랩과 스틸 내지 골드 브레이슬릿 모델로도 선보여 여러 고객층의 기호에 부합했다. 구동 방식 또한 쿼츠, 기계식 자동, 일부 수동 모델까지 추가해 라인업을 기본부터 탄탄하게 강화해 갔다. 발롱 블루는 국내에서도 선호도가 매우 높으며, 특히 예물용으로 최근 수년간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듯 2000년대 들어 브랜드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컬렉션으로 급부상한 발롱 블루는 2009년 또 하나의 프로젝트로 인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발롱 블루 케이스를 바탕으로 제작된 콘셉트 워치 아이디 원이 그것이다. 니오븀-티타늄 합금의 신소재로 제작된 지름 46㎜ 케이스에는 윤활유와 조정이 따로 필요 없는 자체 제작의 혁신적인 수동 칼리버가 탑재되었다. 아이디 원을 위해 카르티에는 기계식 시계 무브먼트를 구성하는 핵심 부품인 이스케이프먼트휠과 밸런스휠, 레버, 주요 트레인휠을 모두 화학증기증착법(CVD)으로 완성한 카본 크리스탈 소재로 제작했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결정 구조의 카본 크리스탈은 우수한 내마모성과 내충격성, 항자기장 성능까지 갖추고 있어 특히 주목을 받았다. 또한 가장 예민한 부품인 헤어스프링은 유리와 세라믹 혼합물인 제로뒤르라는 신소재로 제작해 기온의 변화나 자기장, 중력, 충격 등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아이디 원은 카르티에의 파인 워치메이킹(고급 시계제조) 기술력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야심작이자 발롱 블루 컬렉션이 향후 어떤 식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성취였다.

그리고 올해 SIHH(고급시계박람회)에서 카르티에는 46㎜ 사이즈가 아닌 39㎜ 케이스에 제네바 홀마크를 받은 플라잉 투르비용 수동 칼리버를 장착한 두 종류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핑크 골드와 화이트 골드 케이스로 각각 제작되었으며, 총 100개 한정인 화이트 골드 버전은 선버스트 패턴의 기요셰가 전체에 음각된 미드나잇 블루톤의 에나멜 다이얼을 사용해 한층 더 고급스럽게 완성했다. 한편 42㎜ 케이스 신모델 중에는 총 20개 한정의 발롱 블루 드 카르티에 꽃잎 상감세공 패럿 워치를 새롭게 선보였다.

이 시계의 다이얼 제작을 위해 카르티에는 처음으로 꽃잎을 사용했다. 특수 방부 처리를 통해 영구적으로 색상과 결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꽃잎을 일일이 장인의 손길에 의해 쪼개어 부착시켜 앵무새의 깃털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여기에 앵무새의 부리로 오닉스를, 눈에는 에메랄드를 추가했으며, 다이얼 외곽 및 베젤부 전체에도 다이아몬드를 세팅해 격이 다른 고급스러움을 보여줬다.

시계, 전설의 명기를 찾아서

통통 튀는 파란 공에서 착안한 특유의 우아한 디자인과 완성도 높은 만듦새로 단기간에 많은 애호가들을 양산하게 된 발롱 블루. 산토스와 탱크가 20세기가 낳은 아이콘이라면, 발롱 블루는 21세기가 낳은 브랜드의 새로운 시그너처이자 클래식과 모던함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명작 컬렉션이다.

<장세훈 타임포럼 시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