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찬의 눈]개헌보다 혁신이 먼저다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가 한 달을 맞았다. 그는 할 일이 많다고 했다. 지난 22일 취임 한 달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들이 야당에서 집권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딘가 공허하다. 그는 “국회의원 세비 동결 결의처럼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부터 개헌과 같은 거대 과제까지 치밀하게 준비할 것”이라고 했다. 참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또한 더욱 공허하게 들린다. 마치 ‘정당 혁신’의 과제를 회피하기 위한 오랜 정치적 수사의 반복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야당은 수많은 지도부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국정원 선거 개입 이슈와 세월호 이슈 등 대형 이슈들을 앞세워 국민들의 강력한 혁신 요구를 외면해 왔다. 그런데 문희상 위원장마저 이른바 ‘옳은 이야기들의 좌판’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그 모든 옳은 말들에 우선순위가 없고 그에 대한 인식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나뿐일까. 지금 야당의 모습을 보면 이번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패트릭 모디아니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떠오른다. 야당은 아직도 ‘애매모호한 의제들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것같기 때문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 논의 점화는 마치 개그콘서트처럼 희화화되고 있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말한 것도 그렇고, 청와대가 발끈하자 납작 엎드린 형상이 마치 개그콘서트의 몸 개그를 보는 것 같다. 개헌이 그런가. 당신들에겐 대통령만 있고 국민은 없는가.

정치권과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개헌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길리서치 등의 조사에서 국민 대다수가 개헌 필요성에 대해 압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매우 차갑다. 개헌 논의가 발화된 이후 트위터와 블로그에서 ‘개헌’을 언급한 건수는 일주일 동안 2만여건에 불과했다. 이는 같은 기간 ‘카카오톡’ 언급량 18만건의 10% 남짓한 수치다.

더욱 큰 문제는 야당의 태도다. 야당은 개헌의 내용이나 필요성 등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오직 청와대발 개헌 논의 금지 명령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표현을 빌리면 매우 전형적으로 ‘프레임 전략의 오류’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왜 개헌을 해야 하는지조차 공론화하지 못하면서 대통령이 반대하니까 우리는 해야겠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제 개헌이라는 국가 중대사조차 정치화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는 자신들이 원치 않는 개헌 논의 자체를 극단적으로 희극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문희상의 한 달은 짧은 시간이었을까.

영속적 프래그머티즘, 이른바 혁신적 실용주의를 강조한 하버드대 로버트 웅거 교수는 “시간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의 대조점”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시간은 관계의 산물이며 변화의 상대성이다. 좀 더 어려운 말을 인용하면 “다른 변화나 변화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는 어떤 변화의 상대성”이다.

유승찬의 눈

문희상의 한 달은 무난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수습했지만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구원투수로서 실점은 안 했을지 몰라도 야당이 응당 가져야 할 핵심 어젠다를 주도하지는 못했다. 지금 야당에게 필요한 것은 숱한 정치 의제들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가진 감동적인 혁신이다. 그것 없이는 국민도, 미래도, 집권도 없다.

<소셜미디어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