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별에서 온 장군들

8월 12일 밤 MBC ‘100분 토론’은 ‘병영 혁신, 어떻게?’라는 주제로 최근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군대의 병영문화를 다뤘습니다. 3년 전인 2011년 7월 14일 밤 방영된 MBC ‘100분 토론’의 재방송 같았습니다.

‘병영 혁신, 어떻게’라는 주제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강화도 해병부대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졌고, 휴가장병 자살사건이 이어지며 병영문화에 대한 우려가 높았습니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건 전개나 내용이 판박이인지 소름이 끼칩니다. 지금처럼 그때도 갖가지 대책이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달라진 건 하나도 없습니다. 병사들이 죽고, 자살하고, 폭행당하고,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시끄러워도 군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이라고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도 않습니다. 아들을 군대 보내기가 겁이 납니다. 군대 갔다가 어떤 악마를 만나,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어떤 부모가 선뜻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습니까. 다음 아고라에 ‘입영 거부 운동을 해야 한다’는 글까지 올라온 걸 보면 부모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합니다.

그러나 자식을 군에 보내고 안 보내고는 우리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끗발과 특권과 인맥과 돈이 있는 특권층이라면 몰라도, 서민들은 꼼짝없이 가라면 가야 합니다. 군과 국방부 고위 인사들,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병역의무는 신성하다고 주문을 외웁니다. 그런데 누구를 위해 신성한지 모르겠습니다.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장병들을 소모품이나 ‘따까리’ 취급합니다. 군의 위계질서를 악용해 억누르고, 입 다물게 하고, 눈 깔게 하고, 폭행하고, 구르게 합니다. ‘신성한’ 병역의무가 고작 이런 취급을 당합니다. 그 한편에서 하사관이나 장교들이 왕처럼 군림하는 그들만의 왕국이 구축됩니다.

어쩌면 이런 구조가 병사들은 죽어나가는데도 군대는 바뀌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100분 토론’을 방청하던 한 시민도 “문제의 핵심은 간부들에게 있다”고 일갈하더군요. 더 높은 간부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병사들을 이용하는 모습들이나 사고방식이 더욱 더 안 좋은 병역문화를 만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군은 병사들을 대상으로 인권교육을 시켰습니다. 남의 눈의 티끌은 보면서 자기 눈의 대들보는 외면합니다. 진짜 인권교육이 필요한 것은 병사들이 아니라 장교들입니다. “사소한 가혹행위는 일반적” “마녀사냥 중 소나기는 피해야”라고 망발을 한 이재혁 전 국군양주병원장(대령)을 보면 군 고위 장교들의 수준과 인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병사들 이상으로 장교들에 대한 인권교육이 상례화돼야 합니다.

이 나라 군대는 장교들의 왕국이 아닙니다. 장군들의 왕국도 아닙니다. 장교들은 병사들에 대해 제대할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국가를 지키는 의무를 다하기 위해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포기하고 입대한 젊은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게 당연합니다. 아니, 그에 대한 장교들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제도화시켜야 합니다. 이런 상식적인 시스템이 수십년 동안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지휘관들이 사고만 일어나면 묵인하고, 방조하고, 은폐하고, 축소하고, 조작하는 데 급급한 것은 다 군 당국의 책임입니다. 암묵적으로 방조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191기의 억울한 죽음들은 아직 군 병원 냉동고를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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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위나라 장군 오기는 독창이 난 병사의 고름을 빨아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병사의 어머니가 통곡을 합니다. “그 애 아버지도 오기가 독창을 빨아주자 감격해서 물러서지 않고 용감히 싸우다가 죽었는데, 이제 아들도 죽게 생겼습니다.” 우리 군은 정반대입니다. 장군이 병사들의 고름을 빨아주는 게 아니라 병사들이 장군의 고름을 빨아줍니다. 이런 군대가 강해질 리 없습니다. 병사들의 인권이 보장돼야 군도 강해집니다. 장교들이 별에서 내려와야 군이 제대로 설 수 있습니다. 그래야 부모들도 아무 걱정없이 자식들을 군에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류형열 편집장 r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