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악당을 응징하는 액션 스릴러

1030
리 차일드 지음·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1만4800원

두어달 전, 마포라디오에서 <탐정사 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질문을 받았다. 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탐정은 누구인가요?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잭 리처였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잭 리처>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지만, 소설과는 많이 다르다. 생각하면 바로 행동하고, 악당들을 보면 즉시 때려눕히는 성격이 바뀐 것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건 외형이다. ‘키 195㎝에 체중이 113㎏인데 온몸이 근육질.’ 웬만한 악당들과 마주치면, 오히려 악당들이 주눅들 만한 몸집이다. 키가 170㎝도 안 되는 톰 크루즈가 맡을 캐릭터가 아니었지만 제작을 하며 배역까지 독점했다.

잭 리처는 탐정이 아니다. 군대에서 헌병이었던 잭 리처는 구조조정으로 갑자기 전역한다. 군인의 자식으로 태어나 인생의 모든 것이 군대와 연결되어 있었던 잭 리처는 갑자기 세상에 적응해야만 한다. 하지만 잭 리처는 느긋하다. 자신의 방식대로 태평하게 살기로 한다. 휴대폰도 없고, 메일 주소도 없고, 신용카드도 없다. 군대를 나와 처음 향하는 곳은 좋아하는 블루스 뮤지션의 고향이고, 그 후로도 아무 계획 없이 떠돌아다닌다. 여행가방도 없고, 짐도 없다. 다만 갈 때마다 뭔가 사건을 만나거나 과거의 사람들이 찾아와 부탁을 한다. 잭 리처는 반영웅이지만, 사회에 대한 분노나 어딘가로 도피하려는 생각은 없다. 다만 잭 리처는 ‘자기는 무슨 일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잘난 체하는 덩치들을 싫어한다.’

거대한 세상의 시스템은 숱한 저항과 분노에도 흠집조차 남지 않고, 탐정이 하나의 사건을 해결해도 결코 세상은 좋아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탐정들도 고뇌에 빠진다. 우울함과 무력감 때문에 자신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무덤으로 향하다>의 매튜 스커더처럼, 경찰임무 도중 오발 사고로 아이가 죽자 모든 것을 버리고 사회 밑바닥의 부랑자가 된 탐정도 있다. 하지만 방송국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구조조정당한 리 차일드는 고뇌하는 탐정 대신 행동하는 영웅을 원했다. 그의 활약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도 당장 눈앞의 역겨운 악당들을 해치워버리는 영웅을 창조했다. 그렇게 1997년 잭 리처가 처음 등장하는 <추적자>가 발간된 것이다.

잭 리처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인 <1030>은 특수부대 시절 동료가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군대 내에서 교묘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을 추적하고 체포하기 위해 리처가 직접 인선하여 조직한 특수부대. 과거의 동료에게 연락을 받은 잭 리처는 나머지 동료들을 찾아 함께 복수에 나선다. 과거에 했던 것처럼 하나씩 단서를 추적해 가면서 미지의 악당을 찾아간다.

북리뷰

잭 리처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액션 스릴러다. 수사를 했던 헌병 출신답게 추리력도 뛰어나지만, 악당들을 제압해 가는 리처의 압도적인 액션이 중심에 놓인다. 특수부대 출신이 집결하여 사건을 해결하는 <1030>이지만 의외로 ‘추리’가 부각된다. 아무런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적’을 찾아가야만 하니까. 하지만 미스터리와 액션 중에서 무엇이 더 부각되건 변하는 것은 없다. 잭 리처 시리즈의 매력은 악당들에 대한 가차 없는 응징이고, 목적을 위해 질주하는 속도감과 서스펜스다. ‘복수’가 동인이 된 <1030>은 그래서 더욱 흥분된다. 이런 킬링타임이 바로 스릴러를 읽는 재미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