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이유는

몽환화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민경욱 옮김·비채·1만3800원

혼자 살던 노인이 살해당한다. 단순 강도라고 생각되었지만 손녀인 리노는 노란 꽃 화분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찍어뒀던 노란 꽃의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자 낯선 남자가 찾아와 지우라고 경고한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노란 나팔꽃. 에도시대까지는 노란 나팔꽃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이유는 무엇이고, 할아버지가 키우던 노란 나팔꽃은 대체 무엇일까? 리노의 할아버지는 퇴직하기 전까지 인공적으로 꽃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몽환화>는 과거에 존재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진 노란 나팔꽃의 행적을 쫓는다. ‘몽환화’의 흔적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레몬>과 <변신>이 떠오른다. <레몬>은 유전자 공학으로 태어난 아이가 출생의 비밀을 쫓는 이야기이고, <변신>은 뇌 이식 수술을 받은 남자의 인격이 변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공계 출신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첨단 의학과 과학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다수 발표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몽환화>는 ‘역사’에 대한 소설이었다.

<몽환화>는 월간 <역사가도>라는 잡지에 연재했다. 역사에 푹 빠져 <외딴 집> <흑백> 등 추리와 공포를 엮은 시대물을 연이어 발표하는 미야베 미유키와 달리 히가시노 게이고는 역사를 다룬 소설이 거의 없었다. <몽환화>도 50년 전의 사건이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다. 오로지 ‘역사’를 다루기만 하면 된다는 조건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연재 과정에서 ‘첨단’ 과학이 구태의연해지고 오류가 밝혀지기도 하면서 단행본이 나오는 데에는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몽환화>라는 작품 자체의 역사가 10년이 넘는 셈인데, 그 와중에 3·11 동일본 지진이 있었다. 미증유의 참사를 지켜본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 사건의 의미와 살아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을 다시 쓴 <몽환화>에 담았다.

<몽환화>의 주인공인 리노와 그를 돕는 소타는 멈춰 있는 젊은이들이다. 올림픽에 나갈 정도로 실력 있는 수영선수였던 리노는 알 수 없는 공황장애로 수영을 포기해야만 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한 소타는 원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나빠지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 어딘가 닮았어요. 열심히 자기가 믿은 길을 선택했었는데 어느새 미아가 되어버렸네요.’ 그런 리노와 소타가 몽환화를 찾아 뛰어다니면서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다. 노란 나팔꽃이 사라진 이유와 함께 그들이 왜 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지도.

북리뷰

소타는 원자력공학을 계속하기로 한다. 원전을 더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원전을 안전하게 폐기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누군가는 해야만 한다. ‘세상에는 빚이라는 유산도 있어. 그냥 내버려둬서 사라진다면 그대로 두겠어.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는 받아들여야 해. 그게 나라도 괜찮지 않겠어?’ 모든 일이 끝난 후 리노와 소타의 선택을 보면서 지금 한국이 떠올랐다. 누군가 저질러둔 일들, 추악한 과거의 역사가 있다. 단지 어딘가로 치워버리고, 무시하고,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해경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구조과정의 문제를 정확하게 밝히고, 책임이 있는 이들을 처벌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제대로 깨닫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할 일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