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26년 만에 신곡 발표한 조영남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비겁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공자(孔子)는 “나이 일흔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不踰矩)고 했다. 칠십이 되면 마음대로 살아도 별 탈이 없다는 뜻일 게다.

올해 칠순인 조영남은 평생을 칠순처럼(?)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았다. 서울대 음대 출신인데도 팝송을 부르며 ‘딴따라’의 길을 걸었고, 홀연 미국 신학대학에 유학 가서 목사 자격증을 따놓고는 교회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가수면서도 그림을 그려 100여 차례 전시회를 열었고 현대미술과 시인 이상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 선언>이란 책을 냈다가 진짜 맞아죽을 만큼의 고통에 시달렸다. 40여년 만에 <세시봉> 붐을 일으킨 주역으로 현재는 가장 청취율이 높은 라디오 <지금은 라디오 시대>의 진행자이기도 하다. 4월에 칠순잔치를 했고, 더불어 <화개장터> 이후 26년 만에 신곡을 발표한 조영남을 만났다. ‘세월호’의 충격 탓인지 항상 양명한 그의 표정도 좀 어두웠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26년 만에 신곡 발표한 조영남 “나이든 사람들은 자신이 비겁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요”

5월에 하려던 신곡 발표회 겸 콘서트를 연기했더군요.
“8일부터 전국 투어 공연 ‘아버지의 노래’를 준비했는데 6월 말로 미뤘어요. 티켓 구입한 분들께 다 환불해드렸지.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슬픈데, 나 같은 가수는 노래로밖에 위로해 드릴 게 없는데 할 수 없이 연기했어요.”

26년 만에 신곡을 4곡이나 만들었던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영감을 떠올리게 한 인물이 있다거나.
“우선은 60대의 조용필이 지난해 ‘바운스바운스’ 하며 정말 새로운 감각의 신곡을 들고 나타났는데 경외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어요. 꼭 조용필에 대한 경쟁심에서가 아니라 세상사에 떠밀리듯 곡이 써지더군요. <안녕 대자보>는 고려대 학생이 붙였다는 대자보를 보고 만든 곡이에요. ‘안녕들 하십니까’란 말에 다들 울컥했잖아요. 가사 중에 ‘그래도 한 번은 살아볼 만한 인생이다’란 대목은 전 부인 윤여정이 방송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듣고 쓴 거예요. 참 맞는 말이거든. 그 사람이 화를 낼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정말 멋진 여자고 훌륭한 배우예요. 내 전 부인은.”

<통일바보>와 <별에게>란 곡도 만들었죠.
“통일부 장관을 지낸 친구 정동영의 권유로 만들었어요. ‘통일대박’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부를 통일 노래는 <우리의 소원>밖에는 없잖아요. 우울하거나 너무 무겁지 않은 곡, 남과 북이 따라 부를 수 있는 음률과 가사로 만들었죠. ‘부산에서 아침 먹고 서울에서 점심 먹고 평양에서 냉면 먹고 오는 것이 오늘의 나의 스케줄, 내가 미쳤냐구요? 내가 꿈꾸냐구요? 그래요, 나는 꿈을 먹고 사는 내 이름 통일 바보. 통일 통일 이게 꿈이냐 생시냐, 통일 통일 이제 헤어지지 말자’ 이런 가사예요. <별에게>는 어느 날 텔레비전 뉴스를 보는데 2012 미스 인터내셔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일본의 요시마쓰 이쿠미양이 우리 위안부 할머니를 무시하고 폄하하는 일본 정부에 대해 용기있고 소신있게 말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순식간에 가사와 곡을 만들었어요. ‘내가 깜짝 놀랐던 건 네가 쓴 왕관보다도 너의 맑고 빛나는 마음이었어’라는 내용이죠. 또 태어난 고향은 이북이지만 1·4 후퇴 때 피난 내려와 충청도 삽다리에 살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에 살았으니 내 고향은 서울이란 <쭉 서울>도 썼어요. 이장희가 나더러 ‘어떻게 칠순 영감이 이렇게 곡을 만들 감성이 살아 있냐’고 감탄하더군요.”

감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그냥 철없이 살면 돼요. 이 나이엔 이래야 한다, 저런 자리에서는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그저 자연스럽게 사는 거죠.”

그래도 나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있나요.
“당연히 몸으로는 의식이 되죠. 남들이 나보고 젊어 보인다, 젊게 산다고 하지만 다 뻥이에요. 매일매일이 위태위태하지. 다만, 나잇값을 해야 한다는 것은 젊은이들에게 인생의 지혜를 전해주거나 점잖은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밥을 사주면 됩니다. 결국 나잇값은 밥값이에요.”

그래도 나이 들어서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요. 지혜로워진다거나….
“내 경우엔 좋은 점이 하나도 없어요. 흔히 나이 들어서 ‘현명해졌다’, ‘노회해졌다’ 등의 표현을 하는데 그건 비겁해진 것을 교묘하게 포장했을 뿐이거든. 어린 학생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면 예전엔 ‘얘들아, 미성년자들이 이런 공공장소에서 담배 피면 안 된다’고 따끔하게 나무랐는데 이젠 못 본 척하게 돼요. 시비 걸다 내가 맞을까봐서지. 사랑도 마찬가지야. 젊을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목숨도 걸 용기가 있었는데 이젠 사랑의 감정도 스멀스멀 약하게 오지만, 고백도 못하고 비겁하게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거든. 그걸 배려심이나 지혜로 포장하지만 결국 비겁한 거라구. 중요한 것은 나를 비롯한 나이 든 사람들이 자신이 비겁한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거예요. 아무 곳에서나 만용을 부리란 뜻이 아니에요. 내가 국무총리라고 해도 비겁한 어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세월호 유가족들이 욕을 하건, 물을 뿌리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하면 됩니다. 그런데 국무총리나 장관이란 자리만 의식하니까 물을 뿌리면 기겁해서 팔로 막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거지. 권력자들도 자신이 비겁한 어른이란 것을 인정하고 국민 앞에 고백하면 오히려 국민들이 격려의 박수를 쳐주지 않을까요.”

조 선생님도 권력을 누릴 기회가 많지 않았나요. 서울대 출신의 연예인에다 목사이기도 하고.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은커녕 가수협회 분과위원장 자리 한 번 한 적이 없더군요.
“난 지금도 충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어요. 내 자유의지에 따라 ‘그 프로에는 출연하지 않겠다’거나 ‘그 행사비용을 받고는 안 간다’ 등 프로듀서와 기획사에 권력을 휘두르죠. 그걸로 충분해요. 예전에 미국 트리니티 신학대학에서 목사 자격증을 받았는데, 그걸 받고서야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 줄 알았어요. 그 때 ‘앞으로 목사활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동기생 중 유일하게 나만 손을 들었어요. 그 이유를 묻기에 ‘난 교회에서 설교할 때 예쁜 여자 신도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면 그 여성에게 눈길이 가서 설교 말씀을 다 잊어버릴 것 같다. 목사 자질이 없다’고 했죠. 나중에 다른 동기들이 내게 다가와서 귓속말로 ‘우리도 그래’라고 하더군요. 권력은 남들을 내 힘과 자리로 누르는 게 아니라 내 의지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거 아닐까요. 나야말로 진정한 자유권력자인 셈이지.”

권력자들과도 교분이 많죠. 정운찬 전 총리, 손학규 전 경기지사, 정동영 전 장관 등 가까운 분들이 대통령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뭐 재수가 없어서지.(웃음) 대통령은 국민들이 뽑는 자리이지만 결국 그 시대의 흐름을 누가 타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정작 권력의 핵심에서 벗어나 있는 그 사람들이 더 행복한 것 아닌가 싶어요.”

재수를 강조하는데 정말 재수 좋은 분 아닌가요. 남들은 하나 갖기도 힘든 재능을 여러 가지 다 갖고 있고, 화투 몇 개만 붙여 놓은 그림도 고가에 팔리고….
“나도 여태껏 내가 정말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화투 그림은 쉬워 보여도 굉장히 고뇌하며 밤새워 그린 작품입니다. 그런데 유병언이란 사람은 나무 한 그루, 사슴 두 마리를 찍은 사진을 한 장에 5000만원에 팔았어요. 그것도 어렵게 화랑에서 기획 전시를 하거나 지방 순회를 한 것도 아니고 자회사에 팔았어. 판로가 확실한 판매처럼 쉬운 게 어디 있나. 난 수십년 화투 그림을 그렸지만 아직 판로 개척을 잘하지 못했는데….”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재미있게 사는 남자임엔 분명합니다. 권력층이건 재벌이건 자신의 삶이 재미있어 보이는 이들은 드물거든요.
“재미는 남의 눈치 안 보고 하는 딴짓에서 나와요. 직업에서는 의미를 찾고 재미는 딴짓에서 찾아야지.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온다는 것은 구시대적 속담이고 닥치는 대로 딴 우물을 파야 해요. 난 가수이지만 계속 그림을 그렸어요. 사람들에게 귀로 듣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 노래라면 눈으로 보는 즐거움인 그림도 그려 보고 싶었죠. 기독교 신학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종교에도 관심이 많아 나철도 연구했고, 이상의 시에도 매료됐고 그걸 말이나 글로 표현하다 보니 방송도 하고 책도 내게 되고…. 지금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탁구를 치며 건강도 유지하고 주말마다 젊은 여성들과 영화를 보러 가요. 남들이 죽기살기로 한 우물을 파는 시간에 이것저것 파둔 게 잘한 것 같아요. 노래하다가 지치면 그림 그리고, 그림에 싫증나면 노래하고…. 또 여러 가지를 하니까 꼭 한 분야에 최고가 돼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거든. ‘가수가 그린 그림인데 뭐’라고 이해도 해주고 적당히 신비하고…. 의사, 물리학자 뭐 그렇게 고정되는 건 너무 답답하지 않나요?”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 선언>이란 책을 냈다가 친일파로 몰려 방송을 비롯한 모든 활동을 중단했었고 그 후로도 여러 가지 구설수에 숱하게 오르내렸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마음의 평정, 균형감각이 제일 중요하죠. 어제도 김동길 교수, 김동건 형이랑 이번 세월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격론을 벌였어요. 그 두 분은 ‘모든 문제에는 방법이 있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난 ‘방법이 없다’고 했어요. 인생에는 어차피 정답이 없어요. 슬픔이나 아픔은 지금 이 순간, 모든 사람에게 다 있다구. 슬픔을 한꺼번에 덜어내는 방법은 없어요. 다만, 내가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다, 너무 가라앉았다는 자각이 들면 방향 전환을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해요. 내 경우엔 친구들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평정심과 평화를 찾았어요. ‘당신은 잘못 없다. 오해를 받은 것이니 좀 기다리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견뎌냈죠. 우리 사회에 고통과 아픔이 가득하지만 아직 나라가 망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소위 지식인이란 사람들이 너무 위기감과 공포심을 조장하고, 해법을 못 찾는 게 바보라고 비난하거든. 모든 해법은 우리 마음에 있어요. 항상 자신이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균형감각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론 보통 사람들도 다 너무 슬프고 우울해요. 그걸 억지로 이겨내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한참 슬퍼지면 ‘아, 다시 희망을 찾아보자’고 스스로 일어날 균형감각을 찾는 게 중요하죠. 우린 그들을 위로하고 다독여주고 공감해줄 뿐이죠.”

조영남씨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젊은 여자들일 만큼 항상 젊은 여자들과 친하게 지냅니다. 가수 남궁옥분은 ‘나이 많고 못 생긴 남자의 열등감’이라고 하더군요.
“남자가 젊은 여자, 예쁜 여자를 싫어하는 게 더 비정상 아닌가요? 난 그저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다들 주책이라고 하더군요. 지하에서 음습하게 좋아하는 것보다 양지에서 건강하게 표현하는 것일 뿐이에요. 그런 재미도 없으면 얼마나 노년이 더 우울하겠어….”

칠십년 삶에 후회되는 것은 없나요.
“많죠. 이혼으로 두 아들을 제대로 잘 돌보지 못한 것에 자책감이 있어요. 항상 미안하죠. 내가 즐겨 입는 겉옷 포켓 주머니에 두 아들의 생일을 수놓아 항상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생일축하 선물도 못 보내죠. 하지만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는 버킷리스트로만 보자면, 난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봤어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도 했는데 오는 8월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설치미술 전시회도 열고, 제주도에 기념미술관도 준비 중이고, 아직은 매일 할 일이 있고…. 난 정말 재수가 좋은 사람임엔 틀림없어요. 여러분들도 자꾸만 ‘나는 재수 좋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세뇌시켜요. 그게 중요해요. 내가 재수 좋고 행운이 따르는 사람이라고 믿는 것….”

유인경이 만난 사람

많은 남성들이 칠순의 조영남 영감이 젊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을 의아해한다. 20여년간 지켜본 조영남은 대한민국 남성 가운데 정신과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하는 말을 가장 참을성 있게 경청해주는 사람이다. 자신이 재미있게 살기 위해서도, 남들을 재미있게 해주기 위해서도 이런 ‘경청’은 참 필요한 자질이다. 남자들은 그걸 왜 모를까?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