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평택 ‘쌍용호’는 해고자를 다시 배에 태울까

‘쌍용호’ 선장은 구명조끼도 없는 하청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배에서 내몰았고, 배가 위험하다는 가짜 방송을 하며 정규직들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했다.

야속하다. 봄비가 그렇고, 소란스럽지 않은 기차 안의 적막이 야속하다. 합동분향소 밖으로 쫓겨난 대통령의 조화에서 커져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분노를 본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대통령은 사태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분노만 더 키웠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선생님의 안부를 묻는 천진한 아이들이 남긴 마지막 동영상이 안타까움을 더했다. 평택역에 내려 시외버스로 반 시간, 안중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반 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포승국가산업단지. 낯선 이름이다. 현대위아, 모렉스, 대우공업, 금호타이어, 현대모비스 공장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잘 나가는’ 자동차부품 회사들이다. 미국 자동차전문지 ‘오토모티브 뉴스’가 지난해 6월 발표한 ‘글로벌 톱 100 부품업체’에 현대모비스는 8위, 현대위아는 38위에 이름이 올랐다.

이청희씨(34)는 현대위아에서 자동차 엔진을 만든다. 기아차 모닝에 탑재되는 카파 엔진이다. 그러나 그는 현대위아가 아닌 신광ENG라는 사내하청업체 소속이다. 현대위아 1·2공장 생산라인에는 정규직 60명과 비정규직 300여명이 함께 일한다. 하청노동자들의 시급은 법정최저임금. 주야 맞교대에 잔업과 특근을 해도 월 200만원 쥐기가 빠듯하다. 아이 둘을 키우려면 아내가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가 일하는 1공장은 잘 돌아가지만 2공장은 잔업 특근도 없고, 주간근무만 한다. 1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살아간다.

평택 쌍용차 공장 앞. | 박점규

포승국가산업단지는 ‘하청 산업단지’
현대위아는 자동차부품과 공작기계뿐 아니라 방위산업인 화포도 만든다. 본사는 경남에 위치한 창원공장이며, 안산·평택·광주에도 공장이 있다. 서산에는 공장을 짓고 있다. 2013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위아 직원은 연구원과 사무직을 포함해 2590명, 1인당 평균 연봉은 7390만원이다. 생산직 노동자 가운데 정규직은 1040명, 사내하청은 1850여명이다. 비정규직 비율이 64%이고, 평택·안산·광주공장은 사실상 비정규직 공장이다.

포승공단을 한 바퀴 돈다. 현대위아를 그만둔 동료가 옆에 있는 모렉스에 들어갔는데 똑같은 하청공장이었단다. 중앙일보가 ‘민감한 핸들링 손맛, 반도체처럼 클린룸에서 만들어집니다’라며 평택공장 탐방기사를 내보낸 현대모비스도 엔지니어를 제외한 현장직 노동자는 모조리 비정규직이다. 모비스에서 일하다 너무 힘들어서 현대위아로 옮긴 동료도 있다. 이청희씨는 포승·송탄·칠괴공단에서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는 평택항 인근에 있는 만도와 한라공조 정도라고 말한다. 평택의 노동자들에게 포승국가산업단지는 ‘포승하청산업단지’다.

이청희씨는 2010년 현대위아에 처음 온 날을 잊지 못한다. 면접 볼 때 쌍용차 다녔냐는 것이 첫 질문이었다. 고용불안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다 못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니, 노조 만들면 쌍용차처럼 망한다고 한다. 노조하다가 해고되면 쌍용차처럼 취직이 안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는 안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싸웠기 때문에 정리해고가 세상에 알려졌고, 법원에서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47억원이라는 손해배상에 맞서 시민들이 ‘노랑봉투’라는 이름으로 13억원이 넘는 돈을 모으고 3만명 가까이 함께하는 것도 그들이 견디고 싸우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그가 노조활동과 연대를 열심히 하는 이유다.

잔업을 마친 노동자들이 통근버스와 자가용으로 공단을 빠져나와 안중과 평택으로 향한다. 평택역 광장 낡은 천막에서 쌍용차 비정규직 서맹섭 지회장이 반갑게 맞는다. 지난해 11월 29일 평택법원은 사내하청 노동자 4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정규직 소송에서 전원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서 지회장은 2003년 9월부터 쌍용차 차체부에서 일했다.

2005년 차체 2팀 대표로 정규직과 함께 산업자원부가 주최하는 국가품질경연대회에 참가해 대통령 은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불법파견 문제를 몰랐던 쌍용차는 수상 소식을 회사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는데 이번 재판의 증거가 됐다.

밤 8시, 현대모비스 통근버스에서 내린 젊은 노동자들이 집으로 향한다. 왼쪽 가슴에 코엠전자라는 낯선 이름이 적혀 있다. 모비스가 자랑하는 전동식 자동차 조향장치(MDPS)를 만드는 사내하청 업체다. 5월 17일까지 조립생산직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가 취업사이트에 떠 있다. “코엠전자란 회사 아시나요? 면접 후기를 찾아봐도 없길래 면접 보신 분들 후기 좀 알려주세요.” “분사인지 하청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가보려구요. 정보가 워낙 없으니 원ㅠㅜ.” 네이버 대표 취업 카페인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올라온 글들이다.

“우리는 정규직과 같이 일해서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설움이 컸는데, 모비스는 비정규직끼리만 모여 있으니 비교 대상이 없어서 울분도 없는 것 같아요.” 쌍용차 비정규직 한윤수 사무장의 말이 서글프다.

대기업 들어오면 좋은 일자리 생길까
경기도와 평택시는 평택에 대기업이 들어온다며 난리다. 삼성전자가 평택시 고덕국제신도시 내 120만평 부지에 2016년까지 복합 생산단지를 짓고, LG전자는 2017년까지 평택시 진위2산업단지에 30만평 부지를 조성해 고부가가치 전자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3만개, LG전자는 57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든다고 자랑한다. 경기도가 삼성전자에 1700억원대의 용수공급시설 사업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하자 LG전자도 지난달 경기도에 114억원을 달라고 요구했다.

3년 후 평택에 좋은 일자리가 4만개나 생긴다는 것일까? 쌍용차 비정규직 천막에서 만난 평택 비정규노동센터 남정수 소장은 “현대중공업 군산공장이나 현대모비스 평택공장처럼 삼성과 LG가 정규직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 사내하청 일자리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며 “나쁜 일자리를 늘리는 데 국민의 세금을 퍼붓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로 향했다. 5년 전, 2009년 5월 8일 어버이날에 2405명에게 정리해고 통지서가 전달됐다. 잔인한 ‘가정의 달’이었다. 이에 앞서 2008년 10월 3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 통보서가 건네졌다.

‘쌍용호’ 선장은 구명조끼도 없는 하청노동자들을 가장 먼저 배에서 내몰았고, 배가 위험하다는 가짜 방송을 하며 정규직들에게 배에서 내리라고 했다. 노동조합은 “함께 살자”며 싸웠고, 2009년 여름, 77일 전쟁의 상흔은 깊었다. 5년 전 4월, 쌍용차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에서 목을 매 자살한 이후 24명의 동료와 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쌍용차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멈췄던 숫자는 4월 23일 25번째 죽음으로 이어졌다. 쌍용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은 “고인은 고등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무효 판결을 받은 해고노동자로, 죽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빈소에 ‘쌍용호’ 선장의 조문도 조화도 없었다. 전 세계 노동자의 생일날인 5월 1일 쌍용차는 공장에 나오라며 특근을 잡았다.

4월 30일 아침, 쌍용차 북문. 해고자들이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노조 소식지를 건넨다. 매몰차게 외면하던 모습은 옛말, 수고한다는 인사와 아침은 먹었느냐는 걱정이 정겹다. 1시간 남짓 시간 동안 소식지를 거부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대화에 나서라는 서명용지에 절반 이상의 동료들이 서명했다.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조는 회사에 “돈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열어놓고 교섭을 하자”고 제안했다. 쌍용호는 해고자들을 다시 배에 태울 수 있을까?

박점규의 노동여지도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덧나기를 반복하며 새겨진 깊은 슬픔을 딛고 쌍용차 해고자들이 씩씩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무실을 떠나 차에 오른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탐욕의 자본, 무능한 정부, 부패한 관료의 추악한 민낯이 끝도 없이 드러난다. 도로에 뛰어든 강아지 한 마리도 차를 세우고 구하는 게 사람인데, 302명의 영혼을 수장시킨 국가는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평생 배를 만든 노동자와 선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디로 가야 할까?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