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흠의 눈]내가 저축하지 않는 이유

이 세상엔 빚이 있는 사람과 빚이 없는 사람 두 종류가 있다. 빚이 많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고, 빚이 없는 사람은 부자라고들 한다. 대개는 그렇겠지만, 우리는 빚이 많은 부자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돈이 많은데 왜 빚이 많은 걸까. 돈이 많으면 빚도 많아야 하는 걸까. 부자들은 정말 저축을 열심히 하는 걸까. 보기에 부자들은 그다지 은행을 신뢰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저축하는 것에도 그다지 열심인 것같지 않다.

세상의 모든 부자는 가진 것보다 빚이 훨씬 많다. 순전히 필자의 편견임을 알아두시라. 세상에 꼬인 거 많은 사람 중 소설가도 한몫 한다는 말. 어쨌든 밑도 끝도 없는 빚과 저축 사이의 궁금증은 어떤 하나의 말도 되지 않는 개똥 같은 삶의 철학 하나를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바로 부자들처럼 빚을 내자라는 것이었다. 조건이 붙었다. 과하거나 감당하기 힘들면 안 된다는 것. 꼭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빚을 내야 한다는 것. 저들이 저축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에게만 저축하라고 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꼬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생이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허나 아직까지 잘 살고 있다. 실제로 나는 지금껏 그 흔하디 흔한 적금이나 보험 같은 것 하나 들어본 적이 없다. 청약통장 같은 것도 해본 적이 없다.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사는 것이 여유 없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가난한 직업이지만 그럭저럭 잘 살아왔다. 돈을 저축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돈을 모으려면 저축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 허나 나는 저축하는 것에 반대한다. 돈을 모으려면 우리도 재벌이나 부자들처럼 빚을 내야 한다. 박봉에서 돈을 떼어 정기적으로 저축하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알다시피 평생 저축해 봤자 집 한 채도 살 수 없는 시대다. 물론 부자들은 그런 짓 하지 않는다. 우리들도 부자들을 따라 해보자. 미리 빚을 내어 사라지지 않게 어딘가에 잘 짱박아 놓고, 빚을 갚아보시라.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빚은 자산이 되어 있을 것이다. 어떤 기업도, 부자도 매달 적금 같은 거 들어 저축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저축은 왜 돈 없는 우리에게만 장려하는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말한 대로 나는 저축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저축은 하면 할수록 손해 보는 느낌이 들고, 돈이 모였을 때도 그다지 행복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돈을 모아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돈을 저축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빚을 내고 빚을 갚는다. 빚을 다 갚았을 때의 행복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박봉의 우리들은 아무리 저축을 열심히 하고 현실적인 일정한 목표를 이루어도 행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모은 돈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저축하고 목표를 이루었는데도, 모자라서 빚을 내야만 하는 상실감을 가져본 적 있는가. 절망이다. 그러니 열심히 돈을 모으지 말고 빚을 내고 천천히 빚을 갚으며 살아보자. 대신 빚을 낸 돈은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 그것은 0을 향한 것이 아니라 마이너스의 무한대로 인생이 가는 길이다.

백가흠의 눈

적절한 빚을 낸 삶은 언제나 0을 목표로 한다. 마이너스의 삶에서 0이 최고치인 인생은 무한대로 플러스만 존재하는 인생보다 행복하다. 항상 빚을 갚아야 하니 열심히 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열심히 빚을 갚고 0이 되었을 때의 만족감과 해방감을 짐작해 보자. 적절한 빚이 있는 삶은 엉뚱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빚이 있는 삶의 목적은 오로지 빚을 갚는 것이다. 삶을 마이너스에서 0으로 돌려놓는 일, 끊임없이 욕심을 내야만 하는 플러스의 인생보다 행복하다.

<백가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