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할배시리즈2’도 순항 중인 나영석 프로듀서 “할배들, 캐릭터에 초연… 아예 방송 안 보는 분도 있어”

스타 PD, 연예인 PD…. 그의 이름 앞에 따라다니는 타이틀을 보면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나영석 프로듀서. KBS PD 시절에 <1박2일>을 시청률 40%의 국민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던 그가 케이블채널에서 또 다른 성공시대를 구가 중이다.

케이블채널 tvN에서 <꽃보다 할배>라는 여행 프로그램을 성공시켰다. 만지는 프로그램마다 대박나게 하니 방송계 ‘미다스의 손’으로 부를 만하다. 여배우 시리즈에 이어 할배시리즈 2도 순항 중이다.

그의 등장으로 예능계 주도권이 출연자에서 생산자로 이동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누가 출연하는지보다 누가 만드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 ‘나영석 PD’는 ‘믿고 보는 프로듀서’로 통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할배시리즈2’도 순항 중인 나영석 프로듀서 “할배들, 캐릭터에 초연… 아예 방송 안 보는 분도 있어”

<꽃보다 할배> 2편이 또 터졌다. 한 번은 호기심에, 2탄은 여배우니까라고 높은 시청률을 이해하지만, 똑같은 할아버지 출연진에 포맷도 같은데 1회 시청률이 7.7%나 나왔다. 요즘은 공중파의 예능도 10% 수준인데 이번 시리즈의 성공을 예상했나.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제작진에서도 구성에 변화를 줄까 등등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런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여행 프로그램임을 잊지 않았다. 솔직히 4명의 어르신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드라마에는 한계가 있고, 그분들이 예능 대본을 따를 분들도 아니다. 그분들의 끈끈한 우정도 이미 다 보여줬다. 어찌 보면 지루할 수도 있을 텐데 다행히 시청자들의 호응이 크다.”

할아버지들이 보통 할아버지가 아니잖은가. 현재도 드라마, 연극, 영화에서 맹활약 중이고 기타 예능프로에 거의 안 나오는 분들인데 섭외는 힘들지 않았나.
“쉽진 않았다. 다만 신구 선생님을 만나고 멤버 구성은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제일 먼저 이순재 선생님을 만나고 다음에 신구 선생님을 만났다. 프로그램 기획서며 이것저것 준비해 갔고 긴장을 하며 설명드렸더니 중간에 내 말을 끊고 이렇게 정리해주셨다.

‘당신이 하는 말은 나랑 순재형이랑 말년에 여행을 보내준다는 거잖아. 뭐 그렇게 설명을 길게 해. 당신들 덕분에 순재형이랑 여행 가게 생겼네. 고마워.’ 그 다음은 순조로웠다. 다들 기꺼이 스케줄 조정을 해주셨고 모든 것에 협조적이었다.”

그래도 어르신들 모시고 하는 여행이 쉽지 않을 텐데, 체력도 그렇고 노인 특유의 까칠함이나 자존심도 있고….
“어르신들이어서가 아니라 누구랑 가도 여행은 힘들다. 더구나 열흘 정도 이상의 긴 여행은 더욱 그렇다. 우리팀 사무실 칠판에 ‘할아버지만 즐거우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란 글을 써두고 매일 본다.

여행 가서도 그분들이 즐거우시고 행복해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그분들 역시 자신들과 짐꾼 이서진이 함께할 때 가장 기분 좋아하신다.”

극기훈련도 아닌데 ‘배낭여행 중급’을 강조하며 일당도 깎았다.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물론 어르신들 모시고 저럴 필요까지 있나 하겠지만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걸 시청자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 만약 몇 년 전이었다면 더 많은 설정과 양념을 뿌렸겠지만 지금은 자연스러운 콘텐츠를 보여드리고 싶은 게 제 욕심이다.

조금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여행이니까 말이다. 평균 연령 77세가 된 할배들이 서투른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세관에서 ‘소주’를 설명하거나 길거리에서 숙소를 찾아가는 모습, 스페인의 이국적인 문물에 도취된 모습들은 더 진화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 프로는 ‘실버 예능’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령화 시대의 흐름을 읽은 것인가. 예능 프로그램도 시대정신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시대의 흐름을 읽을 능력은 없다.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선이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남들이 좋아하는 것과 교집합이 될 때 만들면서 나도 즐겁고, 참여하는 이들도 신나고, 시청자들도 좋아한다.

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장르이면서 국민들이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여행은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처음 가본 시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반대다.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어린아이로 돌아가듯 긴장하고 실수하는 느낌이랄까.

특이하게 할아버지들이 여행, 그것도 배낭여행을 간다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는 것 같다. 그 무엇보다 확실한 것은 좋은 프로는 다 본다는 것이다.”

의도했건 아니건 4명의 할아버지들이 각자 캐릭터가 잡혔다. 직진만 하는 이순재는 카리스마를 갖춘 리더, 신구는 호기심이 가득한 낭만할배, 박근형은 넘치는 열정의 건강한 로맨티스트, 백일섭은 넘치는 식욕에 곰 같은 고집 등등. 캐릭터에 대해 본인들은 불만이 없나.
“그분들은 불만이 없으신 것 같다. 관심도 없고 심지어 방송을 안 보는 분도 있는 눈치다. 젊은이들은 캐릭터에 의한 자신의 이미지에 신경을 쓴다. 잃을 것이 많기 때문이고 잘하면 얻을 것도 많아서다. 하지만 이분들은 크게 얻을 것을 기대하지 않아 아주 초연하시다.”

중년의 시청자들은 이 프로를 보면서 재미도 있지만 위로를 얻기도 한다. 81세의 이순재 영감이 저렇게 열심히 책을 읽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손수 무거운 짐을 끌고 배낭여행을 하는데 나도 희망이 있지 않을까라는…. 나 PD는 이 프로그램을 한 후 변한 게 있나.
“난 직장인이고 예능 프로를 만드는 사람이라 항상 오늘에 충실하려고 한다. 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이 크게 바뀌는 것 같다. 이순재 선생님의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 대우나 받으려는 것은 늙어 보이는 것이다.

인생은 긍정적으로 보면 좋다. 이제 우리 나이는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나는 당장 내일 할 일이 있으니까 끝을 생각하기보다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지. 팔십이라는 것도 잊고 아직도 육십이구나 하며 산다’란 말에 울컥했다는 분들이 많았다.

예능 프로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그 정도까지의 자극을 줘야 한다. 다른 예능 프로가 웃음 80%, 나머지 20%라면 우리는 웃음 40%, 나머지 60%다.”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때의 철학은 무엇인가.
“난 고향도 충청도이지만 좀 촌스러운 사람이다. 시대 흐름에 편승하기보다 앞서 강조했듯 내가 좋아하고, 남들도 좋아하는 것이 뭘까를 고민한다. 다만 내 프로를 보는 이들에게 그 프로그램을 보는 시간이 그들의 인생에서 아깝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게 의미건, 재미건, 뭔지 모를 느낌이건 말이다. 마치 일제시대의 문학사조인 ‘카프’ 분위기가 나지만….”

다른 PD에 비해 방송 화면에 자주 나온다. <1박2일> 때는 거의 멤버 같은 느낌이고, “땡!” 등의 유행어도 있고. 지금 <꽃보다> 시리즈에서도 수시로 등장한다. 시트콤에 카메오로도 등장했다. 연예인 수준인데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처음에 <1박2일>을 만들 때 갑자기 길에서 알아보거나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는 이들이 많아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이제는 좀 덤덤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연출하는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해 출연자들과 함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면 더 재미있다고 한다. 적적한 부담감으로 안고 가는 중이다.”

예능 PD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방송 환경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변화는 스타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타에 쏠렸던 무게중심이 서서히 연출자 쪽으로 이동 중이라고 한다. 카메라 뒤편의 조력자로 있다가 카메라에 나서는 이유가 뭔가.
“아마 관찰형 예능 프로가 많아지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꽃보다 할배>의 경우도 24시간을 카메라에 담지만 1시간 분량을 만들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분들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장면을 담기 때문이다.

이후 긴 시간을 들인 후반작업 끝에 맛깔스럽게 편집한 완성품이 나온다. 출연자의 스타성이나 연기력보다 연출자의 감각을 바탕으로 한 편집 능력이 프로그램의 재미를 좌우하는 비중이 커져서 그럴 게다. 또 스타 PD의 경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섭외하기 편한 면도 있다.”

하지만 프로마다 악역을 자처하지 않나. <1박2일>에서는 쓴 까나리액젓을 먹이고 밥을 굶기고, 이 프로그램에서도 할아버지들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같다. 촌스럽고 착하게 생긴 얼굴이라 더 얄미울 때도 있다.
“프로그램을 위해 기꺼이 악역을 맡는다. <1박2일> 때도 출연자들과 대립상황을 주도하며 밀당을 해왔고, <꽃보다 할배>를 하면서도 늘 이서진 옆에서 깐족대는 모습으로 그를 도발했다.

내가 악역을 할수록 이서진, 이승기의 캐릭터가 살아나고 호감도도 높아진다. 사람은 위기의 순간을 만나야 그 진면목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원래 꿈이 프로듀서였나.
“연세대 행정학과 출신인데 행정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연극동아리에 몸을 담았다. 원래 연기자가 꿈이었지만 연기에 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포기했다.

다시 코미디 작가가 되고 싶어 당시 <세 친구>란 시트콤의 작가 모집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주변에서 작가가 아닌 PD의 길도 있다고 해서 KBS에 입사해 예능 PD의 길을 걷게 됐다.

평소 요리만화를 좋아해서 <1박2일>이나 <꽃보다 할배>에도 자주 요리를 하는 장면을 내보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이 정부에서 하도 창조경제를 강조하니 CJ EnM의 홍보에도 <꽃보다 할배>를 창조예능이라고 하더라. 창조예능이란 뭔가.
“창조, 크리에이티브는 콜럼부스의 달걀과 같다. 그것들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누구나 공감하고 누구나 ‘당연히 되는 거야’라고 하지만 현시로 보여지기 전에는 아무도 이해 못하는 게 창조다.

그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작업을 뚝심있게 밀고 나가는 게 크리에이티브라고 생각한다. 그 뚝심은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잘하는 게 뭔지를 잘 알아야 한다. 그것만 알아서도 부족하고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를 알아 교집합을 찾는 것, 그게 창의성의 원동력이자 핵심이다.”

예능 프로 말고 다른 프로를 만들 생각은 없나. 요즘은 예능 프로듀서가 드라마도 만드는 등 크로스오버 현상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다른 재주도 없고 그럴 깜냥도 못된다. 한 사람의 능력이나 인생의 길이가 작은 분야에 몰두해서 그걸 들이파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굳이 다른 데 기웃거리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 내가 좋아하는 예능 프로를 계속하고 싶다.”

거액의 이적료를 받았다는 소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KBS란 탄탄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tvN으로 옮긴 것은 모험이 아닌가.
“돈이나 안정감보다 변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분위기, 유난히 젊은 조직원들 사이에서 마음껏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직장을 옮겼다. 물론 케이블 방송으로는 시청률 30%, 40%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

새로운 회사 또한 나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시청률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힘과 경쟁력, 그리고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로 평가받고 싶다.”

<꽃보다 할배>는 언제까지 만들 생각인가.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라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밀고 나갈 생각이다. 할아버지들이 즐거워하는 한 계속 만들고 싶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방영 중인 프로그램의 PD를 만나는 것은 마치 수능시험을 앞둔 학생을 만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나영석 PD는 너무나 상냥한 태도로 인터뷰에 응했고, 겸손하게 답했다. 그가 화면에 악역으로 나오더라도 그건 다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고 믿게 됐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단순하다.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alice@kyunghyang.com>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