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의 사회]전월세 세금 정책, 진단도 처방도 빗나가

이번 월세 파동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지금 이 결과가 ‘상식적’인 결과인가.

세금을 내는 것이 좋을까, 안 내는 것이 좋을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인가 하고 반문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 뚱딴지 같은 질문이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상식적인 답변은 “당연히 내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과연 그런가.

오히려 우리 마음속 한 구석에는 세금을 적당히 얼버무리려는 유혹이 상존한다. 좋게 말하면 절세고, 심하게 말하면 탈세다. 성실하게 세금을 내려니 공연히 ‘생돈’을 뜯기는 것같기도 하고, ‘나만 바보처럼 사는 것은 아닌가’라고 공연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선택하는 꼼수도 가지가지다. 봉급생활자라면 누구나 연말정산 때 부양가족을 이중으로 등재시켜 볼까 하는 유혹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조금 더 간 큰 사람은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기도 하고, 비용을 과대 계상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소득을 누락시키기도 한다.

지난 2월 24일 서울 송파구 신천역 주변 상가 내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부동산 거래를 알리는 전단이 붙어 있다. | 홍도은 기자

특히 개인 자영업자의 경우 세금문제에서 자유스러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음식점 아주머니가 언제나 카드보다 현금을 선호하는 이유가 단순히 카드수수료 부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목하 언론을 달구고 있는 전·월세 대책의 핵심도 세금문제다. 그 핵심은 대략 이렇다. 정부는 부동산시장에서 전세를 없애고, 매매시장과 월세에 기반한 임대시장으로 유도해 가겠다는 정책을 세웠다.

전세가 우리나라에 독특한 제도이고,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지 않는 한 대단히 불안정한 제도라는 점에서 이런 정부의 문제의식을 크게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나라 세입자들이 아직도 월세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집주인들 반발에 허겁지겁 정책 수정
그 이유의 근저에는 월세시장에서의 임대료가 시장 이자율에 비해 아직도 턱없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주인은 은행보다 높은 금리가 나오는 월세를 선호하는 반면, 세입자들은 비싼 월세 대신 전세를 선호하는 것이다. 따라서 월세시장으로 세입자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임대료 수준을 인하시키기 위한 정책적 처방이 필요하다.

그런데 정부가 이를 위해 꺼내든 칼이 적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가 꺼내든 칼은 바로 세금이었다. 즉 세입자들의 월세 납부액에 대해 세금혜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월세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 재원은 집주인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메우면 되니, 정부 입장에서는 큰 돈 들이지 않고 생색을 낼 수 있는 묘책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정부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국민 대다수를 상대로 세금전쟁을 벌이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가라는 점이 그것이다. 종부세의 예를 생각해보자.

작년 6월 말 기준으로 종부세의 부과 대상에 해당된 집주인은 약 25만명으로 정말로 전 국민의 1%도 채 되지 않았다. 세수는 1조원을 약간 넘는다. 그런데도 참여정부 때는 이것 때문에 “세금폭탄”이라는 신무기(?)가 나타날 정도로 나라가 시끄러웠다.

월세를 놓는 집주인 숫자는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니 벌집을 쑤신 듯 난리가 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청와대가 당황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자신들의 중요한 지지세력인 ‘집 가진 사람들’ 그것도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이 반발을 했으니 말이다.

결국 허겁지겁 일주일 만에 사실상 정책을 뒤엎었다. 이번에는 아예 확실하게 집주인들에게 선심을 썼다. 2년 동안 세금 안 받겠다는 것이다. 소위 ‘유예’ 조치다.

이번 월세 파동이 어떻게 귀결될지는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지금 이 결과가 ‘상식적’인 결과인가.

매달 100만원 내외의 돈을 받는 집주인에게 한시적이라도 정부가 공개적으로 내야 할 세금을 안 내도록 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지하경제는 무슨 마피아 같은 범죄조직이 마약대금을 움직이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소득이 존재하는데, 세금이 규칙에 따라 걷히지 않는 부문이 있다면 그 곳이 곧 지하경제다. 이런 의미에서 ‘선량한’ 국민의 상당수는 사실상 지하경제에 한 자락을 걸치고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진실은 불편한 진실이다. 선량한 국민에게도 사실은 선량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고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조금씩 그런 은밀한 부분들이 있다. 어쩌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시인하는 것이 더 솔직한 것이고, 더 상식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세금 유예 ‘선심’이 정당한 것인가
그럼 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런 부분이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되, 그것을 묵인하거나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든 비정상적인 부분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책이다.

필자는 무조건적인 유예보다 일종의 ‘자진신고 기간’을 설정하고 이 기간 중에 월세 소득이 있었던 점을 자진해서 신고한 집주인에게는 납부세액 중에서 가산세를 감액하거나 없애주고 지연이자도 일부 깎아주는 정책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후에는 가차없는 세무조사를 해야 한다.

혹자는 이렇게 해도 신고하는 사람이 많지 않으리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속에 늘 ‘악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한편으로 절세와 탈세의 경계를 걷고 싶은 유혹을 느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되면 어쩌나 하는 ‘새가슴’과 또 이왕 이렇게 된 거 떳떳하게 세금 내고 살고 싶다는 정의감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앞으로 월세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면 월세 소득이 가구소득의 중요한 원천이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과세제도를 잘 정착시키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정부의 정책은 단순히 조변석개(朝變夕改)했다는 점만이 문제가 아니라 큰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인 것이다.

비상식의 사회

문득 작년에 봤던 영화 ‘신세계’에서 형사 최민식이 조폭에게 했던 대사 한 마디가 떠오른다. “이봐, 우린 경찰이야. 신고가 들어오면 수사해야 되고, 문제가 나타나면 잡아넣어. 그게 우리 일이야.” 국민이 조폭이 아닌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정부가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생각할 때마다 자꾸 이 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