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점규의 노동여지도]삼성맨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삼성은 수원의 자랑이다. 그런데 삼성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도 회사가 자랑스럽고 행복할까? 황유미씨가 일하던 기흥공장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사라졌을까?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지도는 크게 달라졌다. 정리해고는 안정된 일자리를 밑동부터 허물었고, 비정규직은 사회양극화와 불평등의 핵심이 됐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15년, 한국의 노동지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이 주요 기업과 도시를 찾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 할퀸 상처와 고름을 들여다보고, 행복한 노동의 꿈을 그려본다. 노동여지도는 격주로 연재한다.

신분증을 확인하는 경비들의 차가운 눈빛에 황급히 호주머니를 뒤진다.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두리번거리며 공장으로 향한다. 통근버스와 택시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반도체 생산 세계 1위, 한국 경제의 심장부라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3월 첫 출근날 풍경이다.

9년 전 강원도 속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제일의 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처음 출근하던 날의 유미가 떠오르는 듯 공장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이 젖어든다.

1년 8개월 만에 백혈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하늘나라로 떠난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딸이 입고 일했던 방진복을 입고 황상기씨는 말없이 하늘만 바라본다. 2007년 3월 딸을 가슴에 묻고 이 자리에서 삼성과 싸움을 시작하던 날은 어땠을까?

딸의 영정을 들고 공장 앞에 선 아버지
아버지는 홀로 7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50만 관객의 눈물이 담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들고 딸의 공장을 찾았다. 7년 전에는 혼자였지만, 오늘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다.

삼성공장 기흥공장 앞에서 딸 고 황유미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황상기씨(왼쪽). | 박점규

발걸음을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으로 옮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오자 젊은 노동자들이 쏟아져나온다. 주요 생산시설을 다른 공장으로 이전해서 연구원과 사무직들이 대다수다. 삼성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아픔이 담긴 홍보물을 연거푸 건네지만 매정하게 뿌리친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전단지마저 외면한다. 하기야 삼성의 홍보담당 부장이 삼성 공식 블로그에 “진실을 왜곡하고 영화가 아닌 투쟁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떠드는 마당에 어느 간 큰 노동자가 흔쾌히 손을 내밀 수 있을까?

푸른 삼성의 깃발이 가장 많이 걸려 있는 도시 수원, 축구팀 이름도 수원삼성이다. 삼성전자 수원디지털시티, 기흥과 화성공장, 삼성전자서비스 본사까지 삼성은 수원의 자랑이다. 그런데 삼성에 다니는 노동자들에게도 회사가 자랑스럽고 행복할까? 황유미씨가 일하던 기흥공장에서는 억울한 죽음이 사라졌을까?

3월 3일까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는 146명이었고, 이 중 57명이 목숨을 잃었다. 500여종 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있는 기흥공장의 사망자가 31명으로 가장 많았다.

2010년 이후에 사망한 노동자도 26명이나 됐다. 직업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삼성과 합의해서 언론에 알리지 않기로 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직업병 피해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009년 89조원에서 2012년 201조원으로, 당기순이익은 9조6000억원에서 23조8000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인원은 3년간 3819명(4.4%) 늘었을 뿐이다. 삼성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떼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요술방망이는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도 사내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 기흥공장의 정규직은 2500명밖에 되지 않았고, 사내하청 노동자가 3018명이었다. 생산직의 55%가 비정규직이었다. 반올림에 제보된 57명의 삼성전자 직업병 사망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은 단 두 명이었다.

정규직도 삼성이 두려워 세상에 알리기 어렵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정규직을 포함한 직업병 피해자의 규모는 예상을 초월한다. 2013년 1월 삼성반도체 화성사업장 불산 누출사고 때 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모두 하청업체 소속이었다. 삼성은 위험까지 외주·하청화하고 있다.

2014년 3월 삼성전자 사업장에 몇 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일하고 있을까? 올해부터 고용공시제도가 도입돼 300인 이상 기업은 3월 31일까지 정규직, 기간제, 소속외 근로자(사내하도급, 파견, 용역 등)로 구분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신고하지 않아도 아무 벌칙이 없고, 회사를 감시할 노동조합이 없기 때문에 삼성전자에 비정규직이 몇 명인지 알 방법이 없다.

직업병으로 죽어도 말 못하는 사람들
지난해 7월 4일 노동조합을 만든 삼성전자서비스가 삼성 노동지도의 축소판은 아닐까? 삼성전자에 통합되기 전인 2010년 삼성전자서비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임직원은 1434명, 1인당 연봉은 7500만원이었다.

사무관리직을 제외하고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는 노동자는 8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대한민국 소비자 중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 서비스 1등을 고수하는 비법이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홈페이지에는 ‘전국 184개 센터에서 IT 전문 CS프로(엔지니어) 신속 지원, 제품의 H/W뿐 아니라 S/W까지 유지보수 수행, 사업장(Site)별 지정 엔지니어를 통한 책임 서비스, 정기 예방점검을 통해 장애발생 사전 차단’을 주요 업무라고 자랑한다. 한 센터에 50명씩만 일해도 서비스 기사는 최소한 1만명이다.

비밀의 문은 비정규직이다. 184개 서비스센터 중에서 7곳만이 정규직이 운영하는 직영센터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의 옷을 입고 삼성전자 제품만 고치는 1만명의 기사들을 동네 ‘전파사 직원’으로 만들었다. 건당 수수료라는 임금체계를 도입해 성수기에는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을 시키고, 비수기에는 100만원도 주지 않았다.

삼성서비스가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 정당한 대우를 했다면 지난해 1월 칠곡센터에서 30대 임현우씨가 과로로 쓰러져 숨지고, 10월 31일 천안센터 최종범씨가 “배고파서 못살았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삼성서비스 기사들은 ‘또 하나의 황유미’다.

공부 잘해서 사무직으로 들어가면 비정규직이 되거나 백혈병에 걸릴 걱정도 없고, 삼성이 정년을 60세까지 늘리기로 했으니 삼성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행복할까?

삼성전자는 1년에 몇 명이나 정년퇴직을 하는지 대외비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삼성전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9년이고,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될 확률은 0.1%다. 99.9%의 사무직은 정년은커녕 40대를 넘기기 어렵다. 사무직 노동자는 스스로 자신을 ‘정리해고’한다.

“이제는 삼성 노동자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직접 나서서 노동권을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그 노동권이 여러분을 지키고, 자녀와 동료를 지키고, 회사를 아름답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점규의 노동여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