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경제]계획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두 번째 처방

람보와 코만도가 손을 합친다면 어떨까? 아니면 람보와 코만도, 터미네이터가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팬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상상들이다.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공동주연을 맡은 <이스케이프 플랜>은 그 자체로 향수를 자아낸다.

감독인 미카엘 하프스트롬은 “아놀드와 실베스터를 동시에 캐스팅한다는 것은 꿈 같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아무도 탈출할 수 없는 교도소가 있다. 어떤 구조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물론이고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조차 모른다.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 있도록 투명하게 제작된 특수 감방에 죄수를 가둬놓는다.

탈출전문가 브레슬린(실베스터 스탤론 분)에게 CIA가 거액을 들고 와 제안한다. 이 감옥이 완전한지 실험해야 하니 몸소 수감된 뒤 탈출을 해보라고. 교도소에는 먼저 수감된 로트마이어(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있다.

갇힌 뒤에야 음모에 빠진 것을 알게 된 브레슬린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녹록잖다. 로트마이어는 그를 도우며 동반탈출을 시도한다.

브레슬린은 탈출계획(이스케이프 플랜)을 세운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간다. 브레슬린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겐 플랜B가 있다. 플랜B란 처음 세워놓은 계획이 여의치 않을 때 대안으로 만들거나 만들어놓은 두 번째 계획을 말한다.

플랜B는 금융 용어이기도 하다. 크루그만 교수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언급해 유명해졌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 재무부 등은 외환부족 사태를 겪은 아시아 신흥국들에게 위기극복을 위해 고금리, 긴축정책을 펼 것을 요구했다.

금리를 올리면 외환이 유입되고 긴축정책을 펴면 재정부담이 줄어든다. IMF로부터 대규모 외환을 빌렸던 한국은 빚을 갚기 위해 플랜A를 성실히 따랐다. 하지만 고금리 정책은 부채가 많은 기업들에게는 독이 됐다.

멀쩡한 기업들이 나가떨어졌다. 반면 외화 유치 효과는 적었다. 당시 한국 채권시장은 폐쇄적이었기 때문이다. 외화는 다른 곳에서 흘러들어왔다.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입이 대폭 축소됐다.

반면 수출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이 회복됐다. 들어오는 외화는 많은데 나가는 외화는 적으니 단번에 외환보유액이 늘어났다. 한국은 이 돈으로 IMF 구제금융을 조기상환했지만 국민경제가 받은 충격은 컸다. IMF의 처방은 부채를 통해 급격한 성장을 해나가던 신흥국에는 맞지 않았다.

크루그만 교수는 이런 현실을 직시했다. 그가 외환 통제를 앞세우며 제시한 처방전이 플랜B다. 그는 “아시아 위기의 근본 원인은 신뢰의 상실로, 이 때문에 외국자본이 이탈하면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즉 ‘외국자본 이탈→자산가치 폭락→은행 위험→자산가격 재폭락’으로 이어지면서 위기가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신뢰가 상실된 상황에서 정부가 정책을 집행해봤자 자본은 추가로 유출된다”며 정부가 직접 개입해 외환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는 당시 외국인들이 자국에 투자한 외환을 환전해 달러로 바꿔 나가는 것을 6개월 유예시키는 극약처방을 썼다. 서구에서는 “사회주의자”라며 비난했지만 결론적으로 말레이시아 경제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

외환 통제의 대표적인 방법은 송금유예와 외환거래 때 세금을 붙이는 거래세 도입이다. IMF는 외환 통제에 대해 “자유무역을 해친다”며 반대했지만 2010년 G20 정상회담에서는 “우리의 처방이 일부 잘못된 것이 있다”며 플랜A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다.

영화 속 경제

핫머니(투기자본)가 활개치는 최근에는 외환 통제도 경제의 효율을 높이는 적절한 처방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사전에 충분히 예고하고 단계적으로 실시해 외화유출의 속도를 늦추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깔려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mypar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