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코멘터리]엉터리 대북 정보 ‘아니면 말고’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어느날 핵실험을 할지 정확한 시점을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현실이다.

미국의 정보 관리들은 북한을 말할 때 ‘하드 타깃’(hard target)이란 용어를 흔히 사용한다. 하드 타깃은 ICBM 기지나 군사기지·시설물 등 견고한 대응 방어체제를 갖추고 있는 전략 공격 목표를 가리킨다. ‘첩보활동의 중요 목표’나 ‘국제분쟁 예상지역’이라는 의미도 있다. 특히 중국, 러시아, 북한같이 감시하기 어려운 국가를 특정해서 언급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만났던 전직 CIA 간부는 북한을 ‘하드 타깃’ 중의 ‘하드 타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북한에 대해 전략적 측면에서는 잘 알고 있지만, 작은 범주로 들어가면 잘 알 수도 없고, 예상하기도 힘든 곳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북한 관련 정보는 정보 전문가들조차 얻기가 무척 힘들다. 그러다 보니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날에는 북한 군사정보의 최고책임자인 국방부 정보본부장(중장)이 핵실험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태릉 군골프장에 출현하기도 했다.

2011년 12월 28일 김정은 북한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평양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구차를 호위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른 사례도 많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인적정보(Humint·휴민트)와 신호정보(Sigint·시진트), 영상정보(Imint·이민트) 모두를 동원하고도 국정원은 물론 군 정보기관조차 51시간 동안 관련 정보를 전혀 입수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도 처지는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국가정보원이 북한 정권의 2인자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 사실을 알아내 체면치레를 했다고는 하지만 대다수 북한 관련 정보는 중구난방이다.

장성택·김경희 관련 보도 확대재생산
지난주에는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이자 처형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부인인 김경희 북한 노동당 비서(68)가 뇌 수술의 후유증으로 사실상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라고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정보당국자가 밝혔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경희의 사망설도 나돌고 있다.

앞선 언론 보도에서는 장성택이 국가전복음모 혐의로 처형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경희의 건강상태나 위상에는 변화가 없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뤘다.
북한 고위층의 사생활로 들어가면 ‘정보의 벽’은 더욱 높다.

2006년 프랑스에서 자살한 장금송(장성택과 김경희의 무남독녀)을 놓고도 ‘김경희가 실제 낳은 딸이다’, ‘입양한 딸이다’라는 설이 엇갈렸다. 그만큼 정보가 부족한 탓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일이 1월 8일이란 것도 방북한 미국 프로농구 NBA 출신 데니스 로드먼이 “김정은의 생일을 맞아 왔다”고 말하면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는 이것만이 아니다.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북한에서 사흘 이상 굶주린 사냥개 120마리를 풀어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했다는 보도를 했다. 그러면서 김정은이 당 간부 300명과 함께 이 과정을 끝까지 지켜봤다고까지 했다. 장성택의 처형 직후에는 일부 국내 언론이 장성택을 기관총으로 처형한 후 화염방사기로 불태웠다는 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보도들이 장성택이 처형됐다는 하나의 팩트에 붙일 수 있는 갖가지 가능성들을 그럴싸한 첩보나 소식통들을 동원해 한 매체가 보도하고 나면, 이것이 다른 매체에 의해 다시 몇가지 새로운 내용이 첨가된 후 부풀려져서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국정원과 같은 권위 있는 정보당국조차 이런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다. 만에 하나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관총이나 화염방사기 처형은 탈북자들이 흔히들 증언하는 단골 아이템이어서 장성택의 경우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식이다.

지난해 4월 10일 한국 공군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인 피스아이(E-737)가 대북 감시활동 임무를 마친 후 김해공항으로 돌아오고 있다. | 연합뉴스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의 핵실험 징후를 포착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어느날 핵실험을 할지 정확한 시점을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자칭, 타칭 북한전문가들이 도하 방송이나 신문에서 북한의 상황을 전망하는 것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그럴 것이다”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마치 100% 확실한 것처럼 북한의 움직임을 말한다. 자신 없이 전망을 하게 되면 당장 발언의 신뢰도를 잃고 언론매체들이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TV 시청자들이나 신문 독자들도 이들 전문가의 발언 내용이 실제로 이뤄졌는지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칭, 타칭 북한전문가들 양산
지금은 고위공직자가 된 한 국책기관의 전문가는 북한의 핵실험을 놓고 엉터리 전망을 내놓은 후 동료들이 힐난하자 “솔직히 북한 김정일이 뭘 할지 누가 알 수 있냐”고 변명했다. 그는 “핵실험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핵실험이 있으면 문제가 되지만, 핵실험이 있을 것이라고 해놓으면 핵실험이 없다 하더라도 누가 시비 안 건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통상적으로 북한 고위층에 대한 정보는 여러 경로를 통해 수집된다. 가령, 김경희가 평양에 있는 고위간부 전용 병원인 봉화진료소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는 첩보는 평양 고위층을 만난 중국 소식통에게서 나올 수도 있고, 정찰위성이 봉화진료소를 드나드는 고급차량의 번호를 확인해 알 수도 있다. 이같은 여러 정황들을 짜맞추면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나오는 식이다.

한·미 정보당국이 북한 정보를 얻는 데 가장 많이 의존하는 게 SI 첩보다. ‘SI’(Special Intelligence) 첩보는 북한 지역에서 잡히는 신호정보와 도·감청정보를 말한다.

북한도 남측이 SI 첩보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장성택이 지난달 전격 처형된 이후 북한군의 무선 교신이 예년 같은 기간의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든 것도 남측으로 흘러나가는 정보를 최대한 차단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SI 첩보는 한·미 연합으로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운용 중인, 대북감청 전문부대 ‘제777’(일명 쓰리세븐) 부대에서 생산하고 있다. 국방부 정보본부 예하의 쓰리세븐 부대는 백두 신호감청기와 지상의 감청장비를 통해 전자신호정보를 잡는다. 해상에도 선박을 띄워 정보를 수집한다.

북한군은 감청을 피하기 위해 도·감청이 불가능한 광케이블 유선 통신망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무선교신의 경우에도 주파수 대역과 암호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잘못된 역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한국군 코멘터리

북한군이 무선교신 체계를 바꾸면 이를 다시 정상적으로 파악하는 데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수개월 이상 걸리기도 한다. 이래저래 북한은 하드타깃이다. 그러나 그것을 핑계로 엉터리 대북정보가 판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박성진 경향신문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