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넷]집단지성이 만들어낸 놀라운 업적?

인터넷에 보면 끝내 미궁에 빠지는 사진들이 있다. 한 공원에 젊은 미모의 아가씨들이 모여 있는 사진의 운명도 그렇게 끝날 뻔했다. 약 2~3개월 전 사진이 처음 포스팅되었을 때 이름은 ‘미국의 10대들’이라는 제목이었다.

그 다음 나온 것은 영국의 여고생들, 헝가리의 흔한 여고생들, 프랑스, 이탈리아, 에티오피아로 국적이 바뀌었다. ‘선화예고의 흔한 여학생들’이라는 이름이나 ‘불국사로 수학여행 온 소녀들’, ‘장난 없는 엑소(아이돌 그룹)팬들 몸매’ 등의 이름이 붙었을 때는 하나의 놀이로 진화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의지의 한국인들이 나타났다. 일단 배경의 조각작품. ‘二하二’라는 MLBPark 볼펜 유저가 이 장소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어부의 요새’라는 건물 안에 있는 성 이슈트반의 청동동상 아래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는 또 하나의 결정적 단서를 찾아내는데, 이 여학생들이 들고 있는 생수병이 슬로베니아 산이라는 것이다.

누리꾼들의 추적 끝에 실체가 거의 드러난 슬로베니아 여학생들 사진. | mlbpark

여기에 또 하나의 단서가 추가된다. 여학생들이 입은 티셔츠 속 로고와 글씨. 슬로베니아 수도 류블라나시의 로고였다. 사진 ‘exif’ 정보 분석을 통해 naxx라는 누리꾼이 이 사진은 2009년 6월 25일 찍은 사진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단서. 사진 속 한 여학생이 손에 들고 있는 패찰이 무엇인지 밝혀진 것이다. 바로 루블랴나, 자그레브, 부다페스트, 빈, 브라티슬라바 등 5개 도시가 여는 체육대회의 ‘로고’였다.

결국, 이 여학생들은 저 체육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온 슬로베니야 수도 루블랴나시의 학생들인 것이다. 다시 ‘에어컨만빵’이라는 누리꾼은 2009년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5개 도시 체육대회’의 종목은 육상이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그는 또 다시 놀라운 업적을 더하는데, 이 대회 결과표를 찾아낸 것이다. 결과표에는 순위와 함께 참가선수들의 이름과 나이, 출신도시가 나와 있다. 순위 표를 통해 참가자 수를 계산해보면 약 10명인데, 우연찮게도 사진 속의 여성도 10명이다. 즉 저 여성들의 이름은 대부분 저 순위표 내에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결국 최종 정리는 다음과 같다. “2009년 6월 25~2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5개 도시 체육대회에 참가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시의 17세 이하 대표선수들이 대회 첫날 일정을 마치고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에 가서 성 이슈트반 기마상 밑에 모여 있는 것을 찍은 사진.” (누리꾼 ‘퍼지’)

사실, ‘인터넷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사를 쓰다보면 “클릭질 몇 번으로 쉽게 기사 쓴다”는 비난을 많이 듣는다. 그러면 기자가 한 것은 뭔데?라는 되물음이 가능하다. 확보된 명단을 바탕으로 루블랴나시 출신이라고 밝힌 슬로베니아 여성을 SNS-페이스북 상에서 찾아 문의해보는 것이다.

언더그라운드·넷

의외로 같은 나이에 동명의 인물들이 많았다. 한국의 상황을 소개하고 “혹시 저 사진 속 인물들과 관련해 아는 게 있다면 답장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회신이 오면 다시 공개하도록 하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