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엽의 눈]정당정치의 공공성

비례대표 부정경선 문제가 발생한 이후 통합진보당이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상황은 당 체제를 유지하려는 측과 변화시키려는 측의 갈등으로 확대되어 이제 당대표 경선까지 와 있다. 진보정당의 진로와 방향이 이처럼 오래도록 공론의 중심을 차지한 적이 없다.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는 진보당의 종북주의를 문제 삼았고 국가관 검증을 들먹이기도 했다. 대선의 호재라 여겼던지 또다시 냉전의 무덤에서 이념의 ‘좀비’를 불러내려는 기색이 완연했다. 여기에 더해서 한·미동맹이나 북한 인권과 3대 세습, 애국가 인정문제와 국민의례문제 등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진보진영에서는 이를 신매카시즘이라고 비난하며 이념의 문제와 절차의 적법성을 구분할 것을 주장했다. 말하자면 이념적 종북의 문제는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되는 것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정당 운영 절차의 적법성과 정당 민주주의의 문제로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진보진영의 입장은 논리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정당의 이념이나 가치와 정당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제에 있어서는 분리되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개방적이지 않고 공개적일 수 없는 이념과 가치는 정당정치의 민주적 운영을 담아내기 어렵다. 대중정당, 나아가 국민정당을 추구한다면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만큼이나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이나 가치 또한 시민의 눈높이에 맞게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진보당의 문제를 ‘공공성’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정치조직으로서의 정당은 공공성의 수준에서 정부에 버금가는 공적 기구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당의 이념과 정당의 운영절차는 동일하게 시대착오적이어서는 안 된다. 안타깝게도 통합진보당의 현실은 전혀 달랐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한국 정당정치의 저급한 공공성 수준이 통합진보당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이념의 측면에서 오늘날 한국의 보수정당이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이른바 ‘종미주의’는 냉전 이념의 테두리에 요지부동으로 갇혀 있다는 점에서 ‘종북주의’의 내용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정당 운영 절차의 적법성과 정당 민주주의의 문제 또한 다르지 않다. 새누리당으로 이름을 바꾸기 전 한나라당의 당대표 경선에서 300만원짜리 돈봉투를 돌리고, 이런 것이 60년 정당의 관행이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정당에서 무슨 정당민주주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정당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공공성의 수준을 높여야 하는 한편, 1990년대 이래의 탈냉전과 시민사회의 팽창하는 생활정치적 욕구에 조응하도록 정당정치의 공적 질서를 재구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특히 진보적 지향의 정당은 공공성의 구조를 혁신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정치사회의 변화를 선도해야 한다. ‘공공성’은 공민성, 공익성, 공개성의 세 가지 차원으로 요약될 수 있다. ‘공민성’은 정치의 중심이 정당이나 정부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진보정당은 대의민주주의의 위임구조를 넘어선 시민 삶 중심의 ‘생활민주주의’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조대엽의 눈

‘공익성’의 차원에서 진보정당은 계급의 진보를 넘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아 실현성을 확장함으로써 혁신적 가치를 지향하는 보다 보편적인 ‘생활진보’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또 ‘공개성’의 차원에서 정당구조는 보다 개방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하는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완전국민경선제’와 같은 제도는 거대 전환의 사회 변동과 시민적 욕구의 팽창에 부응하는 우리 시대 정당 개방의 가장 가시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는 방향은 다르지만 공공성의 수준을 높이는 문제에서 한국 정당의 동일한 과제를 안고 있다.

조대엽<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