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호가 만난 사람]“석면정책 사각지대는 바로 우리 생활주변”

석면야구장·석면 4대강 자전거길 폭로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환경보건이 중요합니다.”
“맞아요. 저도 환경복원 문제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요.”
개그처럼 들리지만 실화다. 17대 국회 시절 환경운동연합 활동가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의원이 주고받았던 동문서답의 한 토막이다. 1980년대 반공해운동을 시작하던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직업이 공해평론가에서 ‘공예평론가’로 뒤바뀐 유명한 일화의 2000년대 버전 격이다. 환경보건은 이처럼 사회 일반에게는 아직도 생소하게 받아들여지는 개념이다.

실제로 환경보건운동은 21세기판 반공해운동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다만 가해와 피해의 인과관계 규명이 비교적 쉬운 공해와 달리 환경보건과 관련한 문제 제기는 고난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는 게 차이점일 듯하다. 그것은 최근 50대의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야구 스타 장효조·최동원 선수의 암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는 것만큼 어려운 문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지난 10월 26일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을 만났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암살당한 역사적 사건 못지않게 서울시 ‘시민권력’ 등장은 그 의미가 간단치 않을 법하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자 한다. 환경보건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세상에 나온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지난 1년간 펼친 활동은 눈부시다는 말이 인색할 정도다. 캐나다 석면 수출 반대, 구제역 사태 및 후쿠시마 원전 사고 조사, 시멘트공장 주변 진폐증 피해 주민 지원, 가습기 살균제 및 학교운동장·야구장·4대강 현장 석면문제 제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의 대형 현안을 환경보건의 관점에서 크게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무실도 변변치 않고 상근자도 달랑 두 명인 첫돌배기의 작은 NGO가 이루어낸 성과다.

최예용 소장은 전날(10월 25일)에도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4대강은 석면대강’ 기자회견과 함께 방진복과 방진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는 퍼포먼스를 열었다. 낙동강살리기 안동지구 39~40공구 자전거길과 생태탐방로에 1급 발암물질이 포함된 석면사문석을 사용한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서였다.

연일 기자회견과 행사로 바쁘군요.
“오늘 아침에도 보도자료 2개나 내고 왔어요. 하나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하고 있잖아요. 1·2차전이 열린 대구구장과 달리 3·4차전 장소인 인천 문학구장에는 아직 석면이 있거든요. 전 국민한테 생중계되는 현장인데 거기 석면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경기를 강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내일 아침에 한 번 더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할 거고요. 센터 공동대표인 백도명 선생(서울대 보건대학원장)을 비롯한 운영위원들과 함께 투수·타자·심판이 전부 방진복과 방진마스크를 쓰고 야구를 하는 퍼포먼스를 하려고 해요.”

다른 하나는 11월 1일 국회에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례에 대한 2차 발표 및 토론회를 연다는 보도자료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지난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가 수십명의 임산부 사망의 원인이라고 발표하고서도 미온적으로 대처하자 영유아 피해 사례 및 관련 제품을 독자적으로 조사해서 공개한 바 있다.

이른바 ‘석면 야구장’에 물을 뿌리는 등의 조치를 취해도 선수나 심판이 석면에 노출될 수 있는 겁니까.
“그럼요. 물이 흥건할 정도면 경기 자체를 못 하기 때문에 습기를 머금을 정도로 뿌리는 건데, 물론 물을 뿌리면 비산은 좀 덜 되죠. 하지만 완전히 안 되는 건 아니고요. 대시하고 슬라이딩하는 과정에서 흙이 튀기 때문에 위험하죠. 애초에 환경부는 경기 중단 또는 석면 철거를 먼저 하라는 입장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한국야구위원회(KBO)랑 회의하는 과정에서 밀린 거죠. 어떤 전문가인지 모르지만 전문가가 물 뿌리면 괜찮대요. 그래서 참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한 상태고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유독 석면 문제를 자주 제기하는 까닭이 뭡니까.
“학교운동장, 야구장, 4대강 현장 등에서 줄줄이 나오니까 저희도 컨트롤이 잘 안 돼요. 왜냐면 이게 소스가 하나예요. 경북 안동에 있는 석면사문석 광산에서 지난 30년간 공급한 게 하나둘씩 나오는데, 그걸 묻어둘 수는 없잖습니까. 고구마 줄기에서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이 계속 딸려 나오는 거예요. 일단 다 끄집어내서 하나하나 조사하고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려고 해요. 앞으로도 상당히 우리 생활에 밀접한 석면 문제가 두세 건은 더 있을 것 같아요.”
40대 이상이라면 과거 슬레이트지붕 조각을 불판으로 해서 고기를 구워먹거나 그렇게 하는 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슬레이트에는 석면이 포함돼 있다. 그만큼 석면의 위험에 대해 무지하고 무감각했다. 지금도 석면이 돌 속에 포함돼 있는 광물 정도로 인식하는 사람이 꽤 있는 것 같다. 최 소장은 석면의 특징과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석면은 기본적으로 자연광물이지만 땅 위에 드러나 있는 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만든 제품 속에 있는 거예요. 그걸 캐내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죠. 극미량의 석면에 한 번 노출됐다고 해서 반드시 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안 걸린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아주 적은 양에 노출되더라도 암에 걸릴 수 있다는 게 전 세계 의료계의 입장이에요. 최소한의 노출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말하자면 허용치라는 게 없다는 겁니까.
“없습니다. 그게 굉장히 무서운 거예요. 또 하나 무서운 점은 머리카락의 한 3000분의 1에서 5000분의 1 정도의 굉장히 작은 입자나 섬유상으로 되어 있어 노출이 됐는지 안 됐는지 느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노출됐는지 모르고 만약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금방 피해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20년이나 30년 뒤에 나타납니다.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석면이 들어 있는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면 20대 후반이나 30~40대 한창 사회생활을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고요. 야구선구 같은 경우는 40대 초반이나 50대에 은퇴하고 뭔가 또 다른 활동을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거죠.”

장효조·최동원 선수의 죽음이 석면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야구장에서 석면을 쓴 것이 2000년대 중반부터니까 그분들은 직접 석면과 관련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뛰고 있는 300명 이상의 현역 선수, 심판, 이런 분들은 위험하다고 봐야죠.”

야구장에 왜 굳이 석면이 포함된 흙을 사용한 것일까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요. 하얀 야구공과 대비되고 탄성을 줄여주는 성질이 있는 토양이나 돌을 찾다 보니까 그게 사문석인 거예요. 우리나라 사문석은 석면 광산에서만 나요. 그 점을 체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면 그만큼 후진적이라는 얘기죠. 정부가 석면광산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까 1차적으로 석면정책이 엉망이었던 것이고요. 그 다음에 학교나 KBO나 구단이 그걸 체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졌더라면 아마 걸러졌을 테지요.”

우리나라에서는 2009년부터 백석면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석면 사용이 법으로 전면 금지돼 전 세계 54개 석면 금지국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우리나라는 석면 금지국이다, 이렇게 알고 있었죠. 그 전에 썼던 것만 잘 제거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석면정책에 굉장히 큰 사각지대가 있었고, 그게 바로 우리 생활 주변인 겁니다. 지금 조사 중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지붕재나 정수기, 이런 것과도 관련이 있는 걸로 파악되고 있어요. 그런 걸 전부 찾아서 다시 땅 속에 집어넣어야 돼요.”

최 소장은 1980년대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 활동가 시절 석면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서울 여의도 라이프빌딩을 폭파공법으로 철거하는 현장에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진과 함께 석면 샘플링 조사를 하면서다. 그 뒤 서울 강남 재개발 현장 주변 학교의 석면 피해 조사, 부산 제일화학 석면방직공장 노동자의 석면암 소송 지원, 삼성 본관건물 리모델링 과정의 석면 노출 폭로 등 집요하게 석면 문제를 다뤄 여론을 환기시켰다.

이제는 석면 문제 전문가가 됐습니다. 다른 활동도 많을 텐데 석면 문제에 너무 집중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됐습니다. 예방의학을 하는 어떤 분이 석면 문제는 잘못 빠지면 완전 늪이래요.(웃음) 거기 계속 문제가 있어서 일단 발을 디디면 빠져나올 수 없을 거라고 했어요. 틀린 말이 아니더라고요. 저로서는 (석면 관련 활동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 들어 여러 운동이 전문화되면서 서로 교류할 일이 없어졌잖아요. 정치적 계기가 있을 때는 같이 모이지만 일상적인 사회 이슈는 따로따로 해왔단 말이에요. 석면 문제는 그렇지 않아요.

2008년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를 만들 때 노동계, 그것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다 들어왔어요. 이렇게 환경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하게 된 것이 저로서는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또 하나는 피해자 지원활동이에요. 1980년대에 저희가 주력했던 피해 주민 지원, 나아가서 그분들이 스스로 조직해서 목소리를 내고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다시 하면서 아, 이게 진짜 환경운동이고 시민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최 소장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자생적으로 조직된 공해추방운동청년협의회(공청협) 출신이다. 공추련과 환경운동연합으로 이어진 국내 주류 환경운동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한 명이다. 1980년대 핵발전소 반대 100만인 서명운동, 1990년 지구의 날 행사 기획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특히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NGO와의 연대, 해양오염 문제와 더불어 고래 보호 운동에서 맹활약했다. 지금도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밟아 환경보건 분야의 전문성도 쌓았다.

원래 고래 보호 운동가로 더 알려졌는데 환경보건 분야를 공부하고 환경보건시민센터를 만들면서 방향이 달라진 겁니까.
“환경보건시민센터를 만든 건… 환경분야가 너무 넓어요. 환경문제의 눈으로 사회를 보면 문제가 아닌 게 거의 없어요. 그동안 굉장히 많은 분야를 다뤘는데 보건학을 공부하면서 1980년대 후반에 나타났던 공해병과는 좀 다르지만 사람들의 건강과 질병, 이런 부분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전체적인 환경운동의 흐름은 크게 생태계 보호운동으로 가지 않습니까. 맞는 흐름이지만 누군가는 우리 스스로와 미래세대의 건강, 생명, 이런 걸 직접 다루는 역할을 해야 된다, 그런 생각을 했고요.”

환경문제로 야기되는 새로운 질병도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구제역 같은 것도 사실은 환경보건의 문제예요. 기후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질병, 특정한 열대지방에 있던 질병이 우리나라로 전파되는 문제, 이런 것도 있고요. 최근에 가습기 살균제 문제처럼 우리가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우리 생활 가까이에 있던 그런 물건이 거의 살인기계로 돌변하는 상황이잖아요. 우리가 주의와 경계를 하지 않아도 기업이 스스로, 제품이 스스로, 또 정부 정책이 스스로 발전해서 우리를 보호한다? 한계가 있는 얘긴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환경보건운동이 전체 환경운동에서 하나의 새롭고 독자적인 영역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석면 문제가 얼마나 더 최 소장의 발을 묶어놓을 것 같습니까.
“법적으로 사용을 금지했고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과정이니까 시간문제예요. 아마 2~3년 내로 거의 다 찾아서 문제 해결 방향을 잡을 거고요. 물론 피해자 문제는 20~30년 더 걸리죠.”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앞으로 다루게 될 다른 환경보건 문제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요즘 새롭게 나타나는 것이 전자파예요. 얼마 전에 세계보건기구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암에 걸릴 수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요즘엔 휴대폰 없으면 못 살잖아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라니…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가습기 살균제도 마찬가지다. 겨울철에 건조한 기후와 온돌문화, 단열기술의 발달 등으로 우리의 생필품이 되다시피 한 가습기가 살인기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신동호가 만난 사람

“그런 물건이 그렇게 아이의 생명을 뺏어가고 산모를 죽인 거예요. 추가 사례 조사에서 밝혀진 것인데 심지어는 건장한 성인 남성 피해자도 있어요. 폐와 심장을 이식해야 겨우 살 수 있는 사례가 지금 있는 거예요. 얼마나 끔찍해요. 아, 환경보건문제가 갈수록 중요하다,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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