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이야기]미, 벤저민 프랭클린 우체국 없애나

미국에서 대통령이 아니었으면서도 대통령 이상으로 존경받는 정치인이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다.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100달러짜리 지폐에 초상화가 실려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실린 미국 최초 우표와 프랭클린의 자필 편지 봉투, 그리고 폐쇄대상인 프랭클린 우체국 건물.

벤저민은 다양한 분야의 위인이다. 정규교육이라고는 8세 때 2년간 학교에 다닌 게 전부지만 피뢰침을 발명한 과학자이자, 인쇄업으로 부와 명성을 얻어 도서관과 대학을 설립한 사업가였으며, 미국 철학회를 구성해 당대 지식인을 한 자리에 모은 정치사상가이자 정치가였다. 펜실베이니어 대표로 영국에 파견되어 식민지 자주과세권을 얻어온 외교관이면서, 독립전쟁 때 자신이 운영하는 신문에 식민지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라는 구호를 실어 유명해진 독립 영웅이다. 이 벤저민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이력이 있으니 그게 바로 우정인이다.

그는 1775년 전미 우체국 총괄기관(현 USPS의 전신)이 창설될 때 초대 기관장에 임명됐다. 당시 그의 나이 49세. 37세 때부터 필라델피아에서 전근대적 형태의 우체국을 운영해온 그였기에 자연스러운 인사였다. 취임 후 프랭클린은 영국과 미국을 오가는 정규 우편서비스를 개시하는 등 우체국 운영의 기본 틀을 세웠다. 1847년 미국 최초의 우표가 나올 때 프랭클린의 얼굴이 실린 것은 우정청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프랭클린의 고향인 필라델피아에 가면 프랭클린 광장이 있고, 그 인근에 미국에서 유일하게 성조기가 안 걸리는 우체국이 있다. 프랭클린의 이름을 딴 ‘B. Free Franklin’ 우체국이다. 이곳은 과거 프랭클린이 소유하고 운영하던 우체국 자리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었다는 의미에서 성조기를 달지 않지만, 실제 지금의 우체국이 문을 연 것은 1975년 프랭클린 탄생 200주년 기념행사 때다.

과거 프랭클린은 우체국장 재량으로 의원들이 보내는 편지 겉봉에 ‘free franking’(무료송달)이라고 사인을 해 요금을 면제해주곤 했는데, 이때 free라는 단어에는 나라의 자유와 독립의 뜻도 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우체국은 현재 소포와 등기는 취급하지 않지만 프랭클린의 서명이 담긴 소인을 관광객들에게 찍어준다. 또 3층 건물 중 2층에는 우정박물관이 있어 초기 시절 우편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와 유물이 전시돼 있다. 미국의 역사적 건물이자 의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관광지인 것이다.

그런데 이 프랭클린 우체국이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고 최근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미 우정청(USPS)이 “소규모 우체국 3653개를 폐쇄할 것을 검토 중에 있다”며 그 명단을 발표했는데 프랭클린 우체국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우정청은 “오늘날 우리 고객들은 더 이상 물리적 우체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우체국이 폐쇄되는 지역에선 약국이나 그로서리에서 우편서비스를 대신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체국을 약국이나 구멍가게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우정청이 우체국 폐쇄를 시행하려는 것은 물론 비용 때문이다. 우정청은 경기침체에 따른 우편물량의 감소로 2009년 38억 달러, 지난해 85억 달러(1달러가 1000원일 때 8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그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의 주 6일 배달제를 주 5일 배달제로 바꾸면 비용을 줄일 수 있지만 노조와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 여의치않고, 인원감축도 어렵다. 이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엇이든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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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우체국 적자문제는 충분히 인식돼 있다. 이대로 가면 우체국이 파산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지 오래다. 이 때문에 동네 우체국이 무더기로 없어진다는 발표에도 미국인들이 그렇게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미국 우정의 아버지’의 혼이 담긴 곳마저 없앨 수 있나 하는 저항감은 곳곳에서 느껴진다. 미국의 최종 선택을 두고 볼 일이다.

<이종탁 출판국장 jtl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