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눈]경제정책에 대한 정부의 착각

정부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존력이 강한 기업을 지원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부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했어야 한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제기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론이 쟁점이 되고 있다. 골자는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들에 대해 주주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견제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지난 3년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며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이 고용과 투자에 쉽게 나서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것이다. 실제 정부 관계자들의 말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읽힌다. 명목세율이 아닌 법인세 실효세율은 10%대 초반에 불과하고, 환율과 정책 측면에서 많은 지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필요할 때 지원사격이 없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경제정책 플랜을 보면, 집권 전반기에 수출 대기업 등을 적극 후원해서 성장률을 끌어올린 다음, 집권 후반기에 이 성과를 나누겠다는 논리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권 전반기에는 ‘비즈니스 프렌들리’, 후반기에는 ‘동반성장’이라는 어젠다를 들고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트리클 다운( 낙수효과)’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정부의 기대만큼 반응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초조감의 발로가 곽 위원장의 ‘주주권 행사’와 같은 주장이 나오게 된 배경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음미할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삼성에 대한 요구라는 점이다. 우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단독사면과 수출 대기업에 대한 지원 이후 기업이익 공유제가 나왔고, 이후 이건희 회장의 낙제 발언이 나오자, 주주권 행사 주장이 나왔다는 과정이 그 중 하나고, 다른 하나는 곽 위원장이 언급한 기업의 명단 속에 함의가 있는데, 곽 위원장이 삼성·포스코·KT 등을 거론했지만, 여기서 현대자동차 그룹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 삼성을 제외하면 포스코는 현재 그나마 사정이 나은 대기업에 속하고, KT는 인사권을 정부가 휘두를 정도로 주주권 행사가 필요없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이 사안은 명백히 삼성을 겨냥한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건희 회장은 ‘환영한다’는 원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관계사를 제외하면 개인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을 훨씬 뛰어넘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안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유는 명료하다. 삼성의 지분은 외국인 지분이 과반을 넘는다. 결국 외국인 주주를 비롯한 다른 주주들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줄 리가 없고, 이 경우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무력화될 수밖에 없으며,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연금의 독립성이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기업의 의사결정권을 지배하는 상황을 용인할 리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의 기업지원 후 동반성장이라는 계획은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인텔의 최고경영자(CEO) 앤디 글로브는 ‘가장 효율적인 기업은 기업의 길을 가도록 하고, 국가는 그보다 비효율적인 곳을 지원하고 도우는 일에 주력하면 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상당히 통찰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도 대기업의 규모나 효율성은 이미 공공부분을 넘어섰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 생존력이 가장 강한 조직이다. 따라서 정부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존력이 강한 기업을 지원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정부의 도움과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집중했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박경철의 눈

즉 기업은 지원도, 견제도 할 필요 없고, 단지 국가가 법을 세우고 그 법을 엄격히 지키도록 엄정한 관리만 하면 되고, 나머지 정부의 역량은 약자, 소외자, 중소기업 등의 생존과 효율성에 집중하며 역할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시장주의이고, 국가의 역할인 것이다. 이때 대기업은 ‘룰만 제대로 지킨다면’ 굳이 기대할 필요도, 도울 필요도, 또 가르칠 필요도 저절로 없어지게 되니, 그것이 바로 진짜 상생이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