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철의 눈]엔트로피의 저주

인류가 그동안의 산업생산 방식을 재고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을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은 예고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모든 에너지는 보존된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데워진 물은 식을 수 있고, 그 에너지는 보존되므로 식은 물도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외부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가하지 않는 한 식어버린 물이 다시 뜨거워지지는 않는다. 즉 에너지는 일방향성, 즉 비가역적 특성을 가지는 것이다.

폐쇄된 특정 시스템은(이를테면 지구) 이러한 비가역적 성질 때문에 자연물을 변형시킬 때마다 질서있는 역학적 분자운동에서 무질서한 열운동으로 바뀌면서 시스템의 무질서도가 증가하게 되는데, 열역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미래학자 ‘제러미 러프킨’은 이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주목하여, 지구 역시 지금처럼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언젠가는 이 엔트로피가 최대가 되는 지점으로 도달하게 될 것이고, 이 경우 지구는 완전한 무질서 상태가 되어 모든 에너지 흐름이 사라지게 되고 물리, 화학, 생물학적 과정이 모두 멈출 수밖에 없다고 설파했는데, 우리는 보통 이 상태를 가리켜 ‘열 사망’이라고 표현한다.

물론 이 가정이 전적인 엄밀성을 가진 것은 아니다. 지구는 외부로부터 태양 에너지를 공급받기 때문에 완전한 폐쇄계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질서도를 가속시키는 행위, 즉 자연상태의 물질(자원)을 변환하여 에너지와 상품을 생산하는 ‘잉여생산/잉여소비’의 시스템이 지속되면, 엔트로피는 그 이상으로 빠르게 증가할 것이고, 결국에는 지구의 ‘열역학적 사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산업혁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산업문명의 틀은 이런 엔트로피의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잉태하고 출발한 것이다. 자연물을 이용해서 에너지나 상품으로 전환시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생산의 방식은 그것의 비가역적 특성을 감안할 때 증가된 엔트로피를 원래의 자연으로 환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인류가 그동안의 산업생산 방식을 재고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을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언젠가는 자기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은 예고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산업사회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당면한 자원 고갈과 같은 한정된 자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증가한 무질서도의 증가, 즉 지구 온난화와 환경오염의 문제 등은 바로 이 ‘엔트로피의 저주’가 코 앞에 다가와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원전사고 역시 겉으로는 화석자원을 대신하는 대안으로 포장되었지만, 좀 더 크게 보면 원전 자체의 안전성 문제보다 모든 가용 자원을 이용해 에너지를 획득하려는 인간의 엔트로피에 대한 맹렬한 욕망이 근저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런 욕망의 그늘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까지 감춰져 있다. 도쿄와 대도시의 전력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평온한 어촌마을에 원전이 대거 건설되고, 그 결과 재앙은 그 에너지 소비의 주체가 아닌 원전 주변의 주민들을 직접 겨냥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볼 때 이제 더 이상 선택 옵션은 없어 보인다. ‘항상성(생명을 유지, 존속시키려는 자정작용)’을 유지하려는 인류의 생존본능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시스템은 이쯤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박경철의 눈

현재 우리가 획득한 것들을 모두 버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원자력 역시 아직까지 우리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된 지금 시점에서, 그것이 마치 미래 환경산업인양 포장되거나, 효율성과 산업적 부가가치를 앞세운 논리로 추가 건설에 나서는 일은 엄밀하게 재고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원자력이라는 에너지를 우리 인간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만이라도 그래야만 할 것이다.

<안동신세계연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