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진휴의 눈]낭떠러지와 난간

난간이 되는 것 자체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우리가 느끼듯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난간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다는 한탄의 소리를 적잖이 들어왔다. 그렇게 생각도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을 용서와 화해로 극복한 만델라 대통령이나 어려운 곳곳에 사랑과 보살핌의 자취를 남겼던 테레사 수녀가 우리에게도 있었으면 했다. 남북전쟁의 상처를 화합의 힘으로 치유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을 부럽게 보기도 했다.

존경할 대상이 없는 사회는 매우 궁핍한 사회다. 이전투구가 난무하고 자기 살길만 찾는, 배려를 상실한 사회다. 어디를 왜 가야 하는지 모르고 갈팡질팡하는 사회다. 존경할 대상이 있는 사회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생각과 행동의 잣대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에는 믿음과 신뢰가 형성된다. 믿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여유와 이해가 미덕이 된다.

최근에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우리 곁에도 귀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새벽에서 늦은 밤까지 매서운 초봄의 추위와 반나절의 기다림을 내쳤던 끊임없는 조문 행렬에서나, 종교와 이념을 떠나 그 분이 떠나는 마지막 길 곁에서 말없이 그냥 지켜본 셀 수 없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큰 사람을 보았다. 짙은 아쉬움이 남지만 귀함은 그 귀함을 잃고서야 알게 된다는 진리를 재삼 확인한다.

최근 어떤 방송에서 방송인 이금희씨가 낭떠러지와 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낭떠러지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매우 무서운 곳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낭떠러지 곁에 가기를 매우 주저한다. 그러나 난간이 마련된 낭떠러지는 많은 사람에게 그 아래에 펼쳐진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난간이 위험을 아름다움으로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낭떠러지 끝에서 난간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난간이 되는 것 자체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60여 년의 우리 현대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긴박함이었고 곳곳이 낭떠러지와 같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달려온 경제 개발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인권이 도외시되었고 이념과 계층의 갈등도 있었다. 오늘의 우리 사회가 이만큼이나 부유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이면에는 긴박함과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나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었던 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우리가 느끼듯 아마도 김수환 추기경이 그런 난간이었던 것 같다.

김수환 추기경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이 아쉬움으로 가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모든 이를 감싸 주었던 만인의 친구였기 때문이다. 고통받는 사람들을 쓰다듬어 주고, 고통을 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픔을 그들과 함께 아파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성직자의 모습을 찾기가 가장 어려웠던 성직자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대어도 움쩍하지 않는 난간이었기 때문이다.

목진휴의 눈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통해 귀한 분이 우리 곁에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기쁘다. 그럼에도 왠지 가슴의 한쪽이 뻥 뚫린 것 같다. 비록 우리를 떠나긴 했으나,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굳건한 난간으로 항상 남아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