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허리케인 카트리나 ‘후 폭풍’

뉴올리언스 빈곤층 여전히 척박한 삶… 관광객 줄어 ‘재즈의 고향’ 전통 흔들

뉴올리언스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이 피해를 입은 주민을 격려하고 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지역의 주민들은 어느 정도 예전 삶의 모습을 회복했다. 반면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트레일러에서 잠을 청하며 정부의 지원만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기대만큼 신속하지 못했다. 빈곤 계층의 흑인들이 밀집한 지역이어서일까. 연방 정부는 구호 기금 집행을 승인하는 데만 1년을 보내는 등 피해 복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구호 기금을 지방 정부 관료들이 중간에서 가로채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카트리나는 비단 자연 재해가 아니라, 정부의 무능력과 관료주의, 인종차별과 부정부패 등 미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완전 복구는 아직 먼일 2005년 8월 29일 제방이 무너지면서 뉴올리언스의 80%가 물에 잠겼다. 1800여 명이 사망했고 가옥 20만 채가 파손되면서 주민 80만 명이 이재민으로 전락했다.

그로부터 2년, 뉴올리언스의 복구 상황은 들쑥날쑥하다. 일부 새로 지은 집들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수리 중인 집도 있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후 거의 손도 대지 않은 건물이 있고 집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터도 눈에 띈다.

‘레이크뷰’나 ‘브로드무어’ 등 중산층 지역은 주민들이 스스로 복구를 서두른 덕분에 형편이 나은 축에 속한다. ‘로워 나인스 워드’처럼 가난한 동네는 허리케인이 거리에 남기고 간 쓰레기 더미만 겨우 치웠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수천 명의 자원 봉사자들 덕분에 이 정도라도 성과를 냈다고 전했다. 정부에만 의지했다면 복구 속도는 더욱 더뎠을 것이다.

도시 인구는 45만5000여 명이 귀향하면서 이전 인구의 3분의 2 수준을 회복했다. 이중 4만2250가구가 정부가 제공한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다. 빈곤계층 중 일부는 영원히 뉴올리언스에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이 집 수리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집을 다시 건축한 중산층 중에서도 뉴올리언스를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회사 건물이 쓸려가 일할 곳이 없어서다. 사회 기반시설과 공공부문도 복구가 느리다. 지난 4월 브루킹스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병원 3분의 1이 여전히 휴업 중이고 상하수도 시설은 거의 붕괴한 상태다. 공립학교 등교율은 40%에 그치고 있으며 버스는 19%만 정상 운행 중이다.

사법 시스템도 무너졌다. 강력 범죄가 30%나 늘었고 살인 범죄율은 도시 역사상 최고다. 기소된 살인 피의자가 재판도 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기도 한다.

카트리나는 ‘재즈의 고향’이라는 도시의 전통과 역사마저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4000여 명에 달하던 재즈 음악인들은 재해 이후 뿔뿔이 흩어졌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음악인 3분의 1은 귀향했지만 3분의 1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나머지 3분의 1은 다른 도시에 집을 마련하고 뉴올리언스의 재즈바로 출·퇴근하고 있다.

관광객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수입이 줄었다. 이전에 음악인들은 공립학교에서 악기 연주를 가르치며 부업을 했지만 학교 50곳이 폐교로 변해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반면 아파트 월세는 뛰었다. 2년 전 침실 1개짜리 아파트를 한 달 빌리는 데 500달러면 충분했지만 지금은 800달러로도 부족하다. 뉴올리언스 음악인 노조의 존 무어(66)는 “우리는 관광객에게 팁을 구걸하는 거리의 걸인으로 전락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까지도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는 뉴올리언스의 주택.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는 뉴올리언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연방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 부부는 8월 29일 카트리나 2주년을 맞아 로워 나인스 워드의 학교 재건축 현장을 방문했다. 부시 대통령은 “더 좋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우리는 여전히 이곳을 주목하고 있고 (여러분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백악관은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은 미시시피 주와 텍사스 주 등 5개 주에 복구 예산 1150억 달러를 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말까지 실제 집행한 예산은 7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관료주의의 폐해 탓이다. 연방 정부는 집 잃은 사람들을 위한 100억 달러 지원을 승인하는 데만 1년을 보냈다. 게다가 이 기금을 신청한 주민 18만 명 중 4분의 1에 못 미치는 사람만 돈을 받았다. 예산이 충분한지도 의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기금 신청자들 전부가 돈을 받기 전에 예산이 바닥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일부 부동산 개발업자는 혼란을 틈타 부정행위를 일삼고 있다. 연방 정부는 걸프 연안의 카트리나 피해 지역에서 공사 프로젝트를 벌이는 개별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을 책정했다. 이중 상당액이 기회주의적인 개발업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공사 입찰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개발업자가 결탁하는 일도 있다. 전 뉴올리언스 시의회 의장과 전 학교 이사장이 최근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제2의 카트리나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제방 보강 공사도 지지부진하다. 2015년은 돼야 카트리나와 같은 5등급 허리케인을 견딜 수 있는 제방이 완공된다.

부시 행정부의 실정은 대선을 앞둔 미국 정계에서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 대선 예비 후보들은 뉴올리언스 유권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앞 다퉈 이곳을 찾고 있다.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일리노이)은 8월 26일 정치인 중에서 가장 먼저 뉴올리언스를 방문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도시 재건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아침에 눈뜰 때나 밤에 잠들 때나, 이 도시를 기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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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뉴욕)은 이튿날 뉴올리언스를 찾아 신속한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이 지역을 재건하는 것은 ‘미국인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같은 날 존 에드워즈 전 민주당 상원의원과 던컨 헌터 공화당 하원의원(캘리포니아)도 뉴올리언스 피해 복구 공약을 발표하며 세몰이에 동참했다.

<국제부|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