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만난사람]황중연 우정사업본부장

“웃으며 일하는 직원들이 저의 행복입니다”
아날로그 감성 중시하는 디지털 혁신 전도사… 올 하반기 우정청 승격 전망

마지막으로 우체국에 간 게 언제였나. 친구와 싸우고 눈물 흘리며 원망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고도 아무래도 너무 심하게 쓴 것 같아 집배원 아저씨가 오면 되찾아가려고 우체통 옆에서 쪼그리고 있던 때는 언제였던가.

그 빨간 우체통에는 이제 행인이 버린 쓰레기나 담배꽁초만 가득하다. 또 연인의 연애편지, 맞춤법과 철자법이 다 틀려도 정이 뚝뚝 묻어나던 어머니의 안부편지, 군대간 아들의 문안편지나 외국서 딸이 보내준 소액환 등 반가운 사연을 안고 오던 집배원 아저씨는 이제 각종 청구서나 독촉장 등 ‘숙제’들만 주러 온다. 그래도 여전히 빨간 우체통이나 시골의 한적한 우체국을 보는 것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1886년 이래 122년 동안 전 국민의 애환을 전하는 손과 발이 되어왔던 우체국이 이젠 가장 첨단사업을 담당하는 곳으로 거듭나고 있다. 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는 전국 2800여 개의 우체국과 855개의 우편취급소, 4만20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이다.

10원짜리 우표에 침을 발라 편지를 보냈던 추억만 갖고 있는 이들에겐 현재의 변화가 너무나 놀랍다. 전자상거래 등 올해 매출규모 4조2000억 원 달성을 목표로 ‘유비쿼터스 우체국’을 실현하는 우정사업본부는 예금, 보험은 물론 꽃배달서비스와 전자우편, 국제특송, 탁아소운영, 집배원의 365일 도우미활동 등 정부 각 행정부처에서 담당하는 많은 일을 맡고 있다.
이렇게 일이 많은데 우정사업본부는 한국산업고객 만족도 공공행정서비스 부문에선 7년 연속 1위를 차지했고 국내 고객만족도 일반행정 부문에서도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2005년도엔 경영수지 674억 원의 흑자까지 달성했다.

이 삼복더위 퇴약볕에도 묵묵히 우편물을 나르는 집배원들도 걱정되었지만, 도대체 누가 어떻게 조직을 혹독하게(?) 이끌기에 이런 성과를 냈는지 궁금해 우정사업본부의 황중연 본부장을 만나러 갔다.

변신하는 우체국 존재의 이유

2005년 4월 본부장 취임 후 ‘국민의 사랑, 우정서비스’란 경영비전을 세우고 우정사업 혁신을 위해 ‘u-POST 339전략’을 추진해 성공사례로 손꼽힌다.

‘u-POST339전략’은 유비쿼터스 우체국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객서비스, 사업모델, 업무프로세스의 3대 혁신전략과 복리증진, 노사협력, 성과보장 등 3대 수행기반 및 우편사업 경쟁력 강화, 우체국 금융의 국민편익 증진, 책임경영체제를 위한 9대 정책과제로 이뤄져 있다.

‘혁신의 전도사’로 불리는 그에게 “짧은 기간에 많은 성과를 거뒀지만 가장 자랑하고 싶은 일은 뭐냐”고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을 던졌더니 그는 ‘겉포장’보다는 ‘실속’을 자랑했다.

“직원의 사기진작과 만족도를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우수직원들에겐 해외배낭여행도 시켜주고, 직원 주치의 제도를 마련해 건강도 챙겨주고, 직원 자녀 영어 캠프, 동호회 활성화 및 지원, 병상직원 위로 방문 등은 우리 우정사업본부만의 직장문화입니다.

며칠 전에도 이번 수해에 피해를 입은 강원도 직원들을 위로해주러 갔고 직원들이 입원한 병원에도 다녀왔습니다. 어렵고 안 풀릴 때 매듭을 하나 풀어주는 것이 잘 풀릴 때 10개를 풀어주는 것보다 도움이 되거든요. 어느 책에서 읽은 말인데, 몸으로 전달하면 20%, 머리로 전달하면 70%의 효과를 내지만 마음으로 전달하면 120%의 효과를 낸다더군요. 직원들에게도 열정과 진심을 직원들이 일하기 즐겁고, 행복하고, 오래 머물고 싶어야 훌륭한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잘 받아들이고 그걸 고객들에게 잘 전달해 최상의 서비스가 나오거든요. 전국 방방곡곡의 직원들을 만나 가슴을 열고 진심을 전하면 그들도 다 공감해서 따라와주더군요.”

황 본부장은 한 달에 한 번 ‘주니어보드’란 제도를 통해 젊은 직원들과 회의도 하고, 전국의 행사장에 가능한 한 참석해 손이라도 잡아주려고 애쓴단다. 곁에 있던 최성열 우정사업본부 홍보팀장은 “지난 7월 여성주간에는 여직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해 남자임원들이 음식을 서빙해주었다”며 “남자직원들이 오히려 역차별당한다고 서운해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우정사업본부가 있는 광화문우체국의 창구에 가면 우편물을 담당하는 여직원들이 유난히 친절하다. 또 은행과 달리 여직원들의 연령도 높다. 궁금해 물어보니 일선창구에 앉아 있는 여직원들의 평균연령이 41세란다. 구조조정으로 수시로 떠나는 은행과 달리 58세 공무원 정년이 보장되고 이렇게 대접받으니 우표 한 장을 팔더라도 마냥 감사하고 즐겁지 않을까. 물론 이 거대조직을 이끄는 본부장에게 그건 감사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우정사업본부가 밝힌 2006년 사업계획안 등을 보면 우리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최근 정보기술 발달의 영향으로 우편물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다. 거국적으로 ‘편지쓰기운동’을 펼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우정사업본부는 본인 지정 배달서비스를 확대하고, 국제특송 등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고객 중심의 웹서비스를 위해 인터넷 우체국도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포털화를 추진하는 등 IT기술과 연계한 상품개발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전자태그(RFID)를 소포에 부착하는 시범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2007년 말쯤이면 전자태그가 상용화돼 우체국을 이용하는 국민은 누구나 자신이 보낸 소포의 위치를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 전국 곳곳에 위치해 있는 3600여 우체국과 대전교환센터를 통한 우편운송 및 물류네트워크를 경쟁력으로 69개 민간금융기관과 제휴한 금융서비스는 금융기관이 없는 농어촌 주민들에게 ‘우체국의 존재 이유’를 입증한다. 우체국쇼핑의 경우에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 유통과정 없이 직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최근 이용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놀라운 우정사업본부를 디지털 세상으로 변모시키고 시스템을 빨리 받아들여 전파하는 얼리어댑터로 불리면서도 황중연 본부장은 감상적이고 아날로그적인 면, 즉 인간적 따스함을 매우 강조한다.

“아무리 우체통에 편지가 들어 있지 않아도, 그래서 효율적인 면으로는 당장 없애는 게 낫다 해도 저는 우체통을 놔두고 싶습니다. 동네 골목 모퉁이에 서 있는 빨간 우체통 하나를 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따스함과 그리움도 중요하니까요.
영업이익을 내기 위해 각종 전자상거래 및 물류시스템을 연구하지만 편지쓰기운동에도 꼭 참여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몰래 편지공모전에 내보는데 번번이 떨어지더군요. 그래도 편지를 쓰는 것은 우리 아름다운 한글을 지키는 길이고, 사람들의 정을 이어주는 일이니 편지쓰기 캠페인도 지속하려고 합니다.”

“고객만족도 1위도 사실 서운해”

우정사업본부 직원들에 따르면 황 본부장은 매일 아침 5시에 출근해 인근 헬스센터에서 운동을 하고 밤 11시까지 일을 한단다. 전국을 누비며 직원들을 만나고 각종 행사에도 참여한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냐고 했더니 “내 칭찬보다 우정사업본부의 업무 반응이 좋다는 기사를 읽거나 직원들이 칭찬받을 때 스트레스가 쫙 풀리고 행복하다”고 했다.

“기사에서 보셨죠? 이번 수해났을 때 강원도 집배원이 고립된 주민 30여 명을 무사히 높은 곳으로 옮겨 구하지 않았습니까. 만일 평소에 그 집배원이 주민들에게 나쁜 평판을 듣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아주머니인 그 분들이 순순히 밤길에 그를 따라갔겠습니까?

전국 어디에나 찾아가는 이들이 집배원이어서 고령화시대에는 특히 우리 집배원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겁니다. 독거노인들의 상태도 돌봐드리고, 불우한 소년소녀가장들에게도 부모 역할을 해주죠. 시골에 가보면 이건 뭐 완전히 심부름센터 역할을 합니다. 올 때 약 사와라, 뭐 가져다달라…. 그래도 웃으며 해주는 직원들 덕분에 제가 행복합니다.”

우정사업본부는 혁신성공사례로 손꼽히는 부서여서 다른 부처와 기업에서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본부장에게는 강의 요청이 쏟아진다. 그런 강의를 하기 위해 본부장은 어려운 시스템을 설명하기 전인 강의 초반부에 재미있는 유머로 청중들의 눈과 귀를 집중하게 만든다. 그래서 수시로 유머나 음담패설을 수집해 자기 스타일로 혁신(?)해 전달하면 반응이 좋다고 했다. 그런 정보는 대부분 식당 종업원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다면서 “밥값과 정보료가 많이 든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는 올 하반기 우정청 승격 전망이 나온다. 우정사업은 도시서민과 낙후지역 주민들의 기본통신 및 금융이용 편익을 위한 공공서비스이므로 정부사업 형태 유지가 바람직하다는 것이 중론. 우정청 설립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 요구를 2월 행자부에 제출해놓은 상태로, 올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우정청 설립이 가능하지만 워낙 알 수 없는 것이 국회 업무 아닌가.

“고객산업만족도 등에서 연속 1위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 서운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 우정사업본부는 업무특성상 평가시스템 자체가 책상 위에서 매뉴얼대로 체크하는 것으로 판단할 때는 너무 과소 평가받기 때문이죠. 이 삼복더위에도 묵묵히 산길을 걸어 혼자 사는 할아버지에게 생활용품까지 전달해주는 집배원의 일이 전자상거래 영업실적 향상 등과 똑같이 평가를 받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래도 전국 곳곳에서 긍지와 보람을 갖고 일해주는 직원들 덕분에 제가 힘을 얻습니다.”

유인경이만난사람

때론 아주 냉철한 CEO처럼 보이고, 때론 로맨틱한 시인처럼 보이는 황중연 본부장. 확실한 것은 그가 우정사업본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 또 식스시그마 운동부터 음담패설 수집까지 너무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글/유인경 편집위원 alice@kyunghyang.com>
<사진/김세구 기자 k3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