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계를 흥분시킨 오보카타 ‘일본판 황우석 사건’ 가능성

줄기세포 연구논문 조작 논란 휩싸여 발표 40일 만에 철회…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의혹

올해 초 간단하게 줄기세포를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전 세계를 놀래킨 일본 이화학연구소의 오보카타 하루코(小保方晴子·30) 연구주임이 연일 구설수에 오르다 결국 논문을 철회하기로 했다.

소속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는 3월 14일 논문의 조작 여부에 대한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논문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논문을 철회하는 쪽으로 입장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오보카타를 포함해 논문의 저자 4명 가운데 3명이 철회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화학연구소는 지난 2월 초 논문 조작 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오보카타는 와세다대 박사학위 논문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홈페이지를 그대로 베꼈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다. 와세다대는 박사학위 취소를 검토 중이다.

논문 발표 직후 노벨상 후보 급부상
논문이 사실상 조작으로 판명나면서 오보카타가 개발한 줄기세포를 이용한 의학 연구에 10년간 1100억 엔(약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일본 아베 정권의 입장이 난처해질 전망이다.

논문 신뢰성 논란에 이어 연구자 윤리문제까지 불거지면서 과학계에서는 ‘일본판 황우석 사태’를 예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오보카타 하루코는 연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오보카타 하루코 연구주임. / 연합뉴스

논란이 된 논문은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가 제1저자로 미 하버드대학 연구팀과 함께 쓴 2편으로 1월 30일자 과학전문 저널 ‘네이처’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약산성 용액에다 갓 태어난 쥐의 체세포를 담가두었다가 일정한 배양 처리를 했더니 줄기세포 성질을 띠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줄기세포는 체내 모든 조직으로 분화하는 능력을 가진 세포다.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암이나 난치병 등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런 기법을 ‘자극이 촉발하는 다분화기능 획득’(STAP·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이라고 명명했으며, 그렇게 해서 생성된 세포를 ‘스탭(STAP) 세포’라고 이름지었다.

이 논문이 발표됐을 때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학계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노벨상을 받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 연구성과는 기존의 그 어떤 줄기세포 제작방법보다 쉽고 간편했다. 줄기세포가 분화해 체세포가 되는데, 간단한 자극만으로 체세포가 줄기세포로 되돌아간다는 건 세포생물학의 기존 상식을 뒤집는 것이었다.

학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것도 당연했다.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일본 교토대 야마가타 신야 교수가 개발한 체세포에 유전자 등을 삽입해 만드는 ‘유도만능(iPS) 줄기세포’보다 효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으니 노벨상을 예약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했다.

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시도한 인간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윤리문제도 없다. 오보카타 논문의 교신저자인 미국 하버드대 의대 찰스 버칸티 교수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간 세포에서도 쥐 세포 실험과 유사한 스탭 줄기세포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게 암이나 난치병 등을 치료하는 데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듯 보였다.

일본 이화학연구소 오보카타 하루코 박사 연구팀이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은 ‘만능세포’ 논문의 사진 자료. 오른쪽 사진과 왼쪽 사진의 빨간 점선 부분이 거의 일치해 조작됐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그러나 약 2주 뒤 네이처에 실린 논문의 사진이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13일 논문 검증 사이트 ‘펍피어’(Pubpeer)에 제기된 의혹에 따르면 DNA 시료에 전기를 걸어 DNA를 절편의 크기에 따라 분리하는 ‘전기영동’을 시도한 첫 번째 논문 1번 i 사진 세 번째 줄 배경이 나머지와 다르다.

국내 한 대학 교수는 “정상이라면 전기영동 사진에서 줄마다 배경이 다를 수 없다”며 “다른 전기영동 사진에서 잘라내 붙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논문에서도 1번 b 사진과 2번 g 사진이 중복 사용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쥐 배아세포 사진 2번 g 사진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1번 b 사진과 같아진다는 것이다.

펍피어에는 오보카타가 2011년 발표한 논문에서도 전기영동 사진을 뒤집어 오려 붙이는 방법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있다.

의혹 제기가 잇따르자 이화학연구소는 조사에 돌입했다. 이화학연구소는 “오보카타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대해 부자연스러운 이미지 데이터가 사용됐다는 지적이 일어 외부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꼬리 문 조작… 일본 과학계 당혹
이후 전 세계 연구진들은 오보카타가 논문에 제시한 줄기세포 제조방법을 재현하는 실험을 실시했지만 실패했다는 보고를 속속 내놓았다. 오보카타의 논문을 게재했던 ‘네이처’는 2월 17일 보도한 기사에서 “스탭 세포 재현 실험을 해본 실험실 10곳에 문의했지만 성공한 곳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적었다.

국내 생명과학분야 과학자들의 익명 커뮤니티이자 황우석 논문조작 여부를 밝히는 데 큰 공헌을 한 ‘브릭’(BRIC)에도 스탭 세포 재현에 실패했다는 보고가 속속 올라왔다.

재현 논란이 일자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네이처는 지난 5일 좀 더 상세한 스탭 세포의 실험기법(프로토콜)을 공개했다. 그럼에도 아직 재현에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한 연구실은 없다.

결국 논문 발표 40여일 만에 공동저자들이 철회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오보카타의 네이처 논문을 공동집필한 와카야마 테루히코 야마나시대 교수는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논문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믿었던 연구 데이터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해 스탭 세포가 정말 생기는지 확신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2월 중순까지만 해도 오보카타가 실수로 사진을 잘못 골라 사용했을 것이라며 두둔하던 데서 입장을 바꾼 것이다. 14일 결국 오보카타도 철회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보카타 하루코의 2011년 박사학위 논문도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박사학위 논문 108쪽 가운데 20쪽 상당이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웹사이트에 실린 줄기세포 관련 내용과 겹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논문에는 출처 표기도 돼 있지 않았다.

논문의 첫 부분과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터넷 사이트의 문장과 단어 배열, 구두점까지 거의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논문은 간세포를 다룬 것으로, 네이처에 게재한 스탭 세포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논문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연구 결과를 발표한 과학자가 학위논문에서 표절을 한 것이어서 논란이 더욱 커지고 있다. 와세다대는 논문 조사에 돌입했고 박사학위 취소도 검토 중이다.

일본은 과거 구석기 유물 조작사건으로 큰 홍역을 치렀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 도호쿠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70만년 전 구석기 유적이라며 발굴한 가미타카모리 유적이 후지무라가 날조한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진 것이다.

후지무라는 발굴에 관여한 유적지마다 구석기 유적임을 증명하는 석기 등을 건져내 일본 학계에서는 ‘신의 손’으로 불렸다. 후지무라의 발굴은 일본열도의 인류 역사를 기존의 7만~5만년 전에서 무려 7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해 일본은 물론 동북아 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2000년 11월 그가 유적지에 석기를 파묻는 모습이 마이니치신문에 포착되면서 날조 사실이 드러났다. 일본 고고학회는 유적 진위 조사를 통해 후지무라가 관여했던 구석기 유적 162개 모두가 날조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지무라 건으로 치른 홍역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다시 오보카타의 스탭 세포 연구 조작 사건이 불거지면서 일본 과학계의 연구윤리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목정민 경향신문 산업부 기자 mok@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