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보수에도 고급인력 몰려 경쟁 치열… 대사관 등 취업에 경력으로 십분 활용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외대 1기 재외공관 인턴십에 선발된 16명의 학생. 이들은 지난 4월 16개국의 재외공간에 배치돼 6개월간의 현장실무를 배우고 있다. <남호진 기자>
8월 초, 한 경제일간지와 외교통상부 간에 작은 공방이 있었다. 이 경제일간지는 ‘외교부 인턴 有노동 無임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업들의 최근 인턴 채용 소식과 함께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의 ‘무급 인턴 모집’에 대해 지적하고 나섰다. “2~3개월 동안 사람을 쓰면서 어떻게 무급으로 채용할 수 있는가”가 핵심 내용으로, 일반 기업이 6~8주 인턴십을 실시하면서 80만 원 상당을 지급하는 데 비해 정작 청년실업에 대해 좀 더 책임져야 할 정부 부처가 국민의 어려움에는 나 몰라라 한다는 비판이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로 “외교통상부의 무급 인턴십은 채용과는 무관하며, 외교 사안에 관심 있는 대학원생 및 학부생을 대상으로 순수하게 배움과 실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제도”라는 반론문을 발표했다. 외교부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가 아닌, 외교·통상 업무에 대한 지식 습득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 또는 자원봉사자라는 것. 또 최소한의 식비와 교통비도 주지 않는다는 지적과는 달리, 자체 과예산 범위 내에서 식비와 교통비 등 실비 차원의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인턴십 종료 후에는 인턴십 수료증을 수여하여 학교에 따라 학점
취득에 활용하거나, 경력증명 자료로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공방은 한 번으로 그쳤지만 이를 접한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그 파장이 컸다. 최근 국제화시대를 맞아 외교부 근무는 물론, 주한공관이나 유엔 등 국제기구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외교부 인턴십‘의 적절성과 효용성, 선발 기준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취업 보장 없어도 1% 실력파 몰려
외교부의 무급인턴 채용은 하계와 동계방학을 이용한 집단채용과 결원 발생 시의 상시채용으로 나뉜다. 집단채용은 재학 중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기간을 근무기간으로 하며, 상시채용은 휴학생이나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근무기간을 잡고 있다. 근무시간은 공무원 근무시간과 동일하고 물론 무급직이다.
채용기준은 영어 등 언어사용능력과 파워포인트나 엑셀 등 컴퓨터 활용능력. 서류 심사와 면접을 거쳐 과별로 1~2명 정도를 선발한다. 담당업무를 보면 업무보조, 리서치 및 보도자료 수집, 영문자료 조사, 기타 행정업무 지원 등이다.
선발된 인력을 보면 해당 과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영어 실력은 기본이고, 상당수가 외국 유수 대학 출신이거나 동시통역사 자격증 보유자 또는 조기 유학파거나 못해도 한두 해씩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외국을 체험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동북아2과 무급인턴사원 1명 모집에 70명이 지원한 것에서 보듯 뛰어난 인재들 중에서도 가려 뽑은 만큼 이들에게는 ‘대한민국 1% 실력파’라는 극찬이 붙기도 한다.
무급직임에도 외교부 인턴에 젊은 인재들이 몰리는 까닭은 한마디로 ‘정식직원으로 채용되지 않더라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경력’ 때문이다. 외교부 인턴십을 거쳐 현재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정치·공보담당관을 맡고 있는 서주희씨(28)는 “현재 정치파트에선 북한관계 이슈 보고, 세미나 참석, 리포트 작성, 인권 캠페인 기획 분야를, 공보파트에선 영국외무성장학금 홍보, 동창회 활동 등을 맡고 있다”며 “외교부 인턴시절 익힌 외교의 개념, 인맥관계가 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서씨는 올해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에 선발되어 연말에 유엔으로 파견될 예정이라고 한다. 외교부에서 지원하는 JPO 프로그램은 유엔 진출을 위한 일종의 수습직원 선발 제도로, 일은 국제기구에서 하고 임금은 우리 정부에서 지급하는 일종의 인턴제도. 선발되면 1∼2년 근무한 후 인사고과에 따라 해당기구에 정식직원으로 채용된다. 서씨는 “고등학생 때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나온 것이 외교부 인턴 선발이나 주한영국대사관 채용에 높은 점수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2년 전 중남미국 남미과에 인턴으로 근무했던 박지영씨(28)도 외교부 인턴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인턴 생활을 한 지 1년 만에 주 코스타리카 대사관에 통·번역, 행정 업무를 맡는 직원으로 채용된 것. 현재 그는 코스타리카 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며 평소 바라던 대로 중남미미술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 재외공관 인턴제’는 외대가 맡았다. 지난해 7월 외교부와 관학협정을 체결해 올해 3월 재외공관 인턴으로 16명의 학생이 세계 16개 주요 공관으로 나간 것. 선발시험에서 7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이들은 하나같이 영어와 파견국가 언어에 능통한 재원들이다.
“외교부 공짜로 부린다” 비판 시각도
하지만 외교부 인턴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가능성 있는 일자리’를 구실로 젊은 인력을 착취하고 있다는 평가가 그것으로, 대기업 인턴을 준비하는 한 사이트에는 “외교부 인턴은 주 5일제 9시 출근 18시 퇴근 등 자격요건과 근무시간은 거의 공무원과 동일한 수준임에도 보수는 무급인 착취집단” “정부부처마저 인턴십을 ‘공짜인력’으로 보고 있다”는 글들이 올라와 있다. 한 네티즌은 “그래도 몰리고 있으니 문제점이 있어도 고치라는 말도 못 하고 지냈다”고 밝혔다.
해외 거주자에게 유리한 선발 규정도 도마에 올랐다. 외교부 인턴으로 채용한 상당수가 미국이나 중남미 등 해외 거주 경험이 있었다. 외교부 입장에서야 물론 언어능력과 해외 경험이 필요하겠지만 결국 순수 국내파에겐 기회가 줄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 겨울에 외교부 인턴을 했다는 김모씨(25)는 “영어 등 외국어 실력을 특별히 원하기는 하지만 정작 사용할 기회는 사실 주어지지 않았다”며 “출신학교를 보면 외국 대학과 서울에서 손가락에 꼽는 대학 정도가 많았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인턴마저도 학벌과 유학파를 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주희씨는 외교부 인턴제에 대해 체계적인 제도가 없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밝혔다. “인턴은 거의 보조역할을 하는 셈인데 일이 많을 때는 리서치나 번역 등 비중 있는 일을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복사를 하거나 전화를 받을 뿐”이라는 그는 “인턴은 과마다 배치하기 때문에 다른 과 인턴들과의 교류가 부족해 폭넓은 배움이 되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외교통상부의 인턴십 프로그램은 채용의 전 단계로 근로자를 모집하는 기업의 인턴 채용과는 성격이 다른 제도”라며 “유급화할 경우 비정규직 사안에 적용될 염려가 있다”는 반응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