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30년 전 보이저호, 지금은 어디에?

30년 전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와 2호의 현재 위치. 1호는 이미 ‘태양계 황야(heliosheath)’에 진입한 상태인 반면, 2호는 진입하기 전이다. ※참고로 heliosphere → 태양권, heliopause → 태양권계면, termination shock → 말단 충격파 영역, bow shock → 선두 충격파 영역

현재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인공물체는? 8월 20일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1977년에 발사한 NASA
의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다.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155억㎞나 떨어져 있다. 이 정도라면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보다 100배 이상 멀어 그곳 하늘에서는 태양이 밝은 별처럼 보일 뿐이다.

NASA는 또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와 2호가 지구를 떠난 지 30주년이 됐다고 밝혔다. 보이저 2호는 1977년 8월 20일에, 1호는 9월 5일에 각각 지구를 출발해 무려 30년간 우주 공간을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보이저 2호는 지구에서 125억㎞ 떨어져 있다. 1호보다 일찍 출발한 2호가 1호보다 30억㎞ 더 가까이 있는 셈이다. 발사 30주년을 맞이한 보이저 1호와 2호를 만나보자.

그랜드투어, 한 번에 여러 행성을

“보이저 미션은 우주탐사 역사에서 하나의 전설이다. 보이저 탐사선은 우리에게 태양계 외행성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가져다주었으며 지금까지 가장 먼 우주 공간을 탐험하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NASA의 과학미션이사회 앨런 스턴 부회장의 말이다.

원래 보이저 탐사선은 목성과 토성을 비롯한 여러 외행성을 동시에 탐사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천문학자들은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사이에 화성 바깥쪽에 있는 5개의 외행성(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명왕성)이 비스듬한 일직선상에 놓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외행성의 이런 배열은 175년 만에 한 번씩 드물게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 시기는 하나의 탐사선으로 여러 외행성을 한꺼번에 탐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보이저 우주탐사선은 현재 인류가 만든 물체 가운데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특히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155억㎞나 떨어져 있다.

하지만 해왕성까지 탐사선을 보내는 데 문제가 있었다. 탐사선을 빠르게 가속시키지 못한다면 천왕성이나 해왕성까지 가는 데 엄청난 시간이 걸려 이들을 탐사할 시기를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NASA는 비행 중간에 목성의 큰 중력을 이용해 탐사선을 빠르게 가속시키면서 동시에 비행 방향도 바꾸는 방식인 ‘스윙바이’(swing-by)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이 스윙바이 기술 덕분에 보이저가 목성에서 해왕성까지 탐사하는 일명 ‘그랜드투어’(Grand Tour)를 할 수 있었다. 1977년 8월 20일 발사한 보이저 2호는 690일 만인 1979년 7월 9일 목성을 탐사하고 목성 중력의 도움을 받아 1981년 8월 22일 토성을 지나가며 탐사했다. 그리고 1986년 1월 24일 천왕성을 방문했고, 지구를 떠난 지 12년 뒤인 1989년 8월 25일 해왕성까지 탐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뒤 명왕성 밖으로 벗어났다. 또 2호보다 보름 정도 늦게 1977년 9월 5일 발사한 보이저 1호는 546일 만인 1979년 3월 5일 목성을 탐사하고 1163일 만인 1980년 11월 12일 토성을 탐사한 뒤 명왕성 밖으로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보이저는 목성과 토성, 그리고 그 위성들을 자세히 탐사했고 해왕성과 천왕성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이전에 볼 수 없던 영상과 과학적 자료를 얻어 외행성과 그 위성들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성 대기에서 대적반(大赤斑)을 비롯해 지구의 허리케인 같지만 규모가 훨씬 큰 폭풍 수십 개의 영상을 촬영하고 이들 중 일부는 서로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목성의 위성 이오에서는 태양계 최대 규모로 화산활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도 포착했다. 또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가 수많은 얼음 알갱이로 이뤄져 있고 근처에 있는 위성들이 이 알갱이들을 밀고 당겨 고리에 파동이나 세부구조가 생긴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외계인에게 보내는 ‘병 속 메시지’

보이저호에 실려 있는 황금 레코드는 외계인에게 보내는 ‘병 속 메시지’에 해당한다. 지구의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이 들어 있다.

그랜드 투어를 마친 보이저는 미션을 연장해 태양계 가장자리에 해당하는 태양권(heliosphere)을 탐사하는 임무를 시작했다. 태양권은 태양에서 나오는 고속 입자의 흐름인 태양풍이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지난 18년 동안 보이저 1호와 2호는 태양권 외곽, 그리고 성간(별과 별 사이의 우주공간)과의 경계를 탐사해왔다. 2004년 12월에는 보이저 1호가 태양계의 마지막 경계, 일명 ‘태양계 황야’(heliosheath)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 영역은 태양에서 약 140㎞ 떨어져 있는데, 여기서는 태양풍이 느려져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희박한 가스와 충돌한다. 보이저 2호는 올해 말쯤 이곳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보이저 탐사선은 이렇게 먼 미지의 우주공간을 항해할 때 태양풍, 고에너지 입자, 자기장, 전파를 조사하는 과학장비 5개를 갖추고 있다. 보통 우주탐사선은 태양전지판을 갖춰 태양에서 전력을 공급받지만, 보이저 1호처럼 화성보다 더 멀리 가면 태양열이 너무 약해 태양전지판이 소용없다. 이렇게 먼 곳에서 전력을 얻을 수 있는 장치가 바로 ‘방사성 동위원소를 활용한 열전기 발전기’(RTG, Radioisotope Thermoelectric Generator)다. RTG는 플루토늄이나 스트론튬 같은 방사성 동위원소가 자연 붕괴할 때 발생하는 열을 전력으로 바꾸는 장비다. 보이저가 이렇게 멀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도 RTG 덕분이다. 장거리 탐사선에 RTG는 필수장비인 셈이다.

보이저는 전 세계에 있는 안테나 시스템인 NASA의 ‘딥스페이스 네트워크’(Deep Space Network)를 통해 지구에 연락하고 있다. 탐사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지구에서 내린 명령이 빛의 속도로 전달되더라도 보이저 1호까지 14시간, 보이저 2호까지 12시간이 각각 걸린다.

과학이야기

두 탐사선에는 지구의 다양한 삶과 문화를 나타내는 영상과 소리를 담은 지름 30㎝의 황금 레코드가 실려 있다. 특히 우리말을 포함해 세계 55개 언어의 인사말, 지구의 위치를 보여주는 그림이 들어 있다. 황금 레코드는 망망한 우주를 떠다니다 혹시 만날지 모르는 외계인에게 보내는 ‘병 속에 든 메시지’인 셈이다.

이충환〈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