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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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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26) 코알라의 죽음이 남긴 질문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학회에 참석하고 인근 대학에서 한동안 연구하며 지낼 수 있는 기회였다. 호주 방문은 내게 오래 기다려온 여행지였다. 붉은 사막, 끝없이 펼쳐진 초원 그리고 남반구 호주에서만 살아가는 이국적인 야생동물들, 그중에서도 가장 보고 싶었던 동물은 단연 ‘코알라’였다. 주변 코알라 보호구역의 나무 위에서 졸고 있는 회색 털 뭉치들을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작고 귀여웠다. 두툼한 앞발로 나무를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세상 모든 걱정을 내려놓은 듯 평온했고,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에 코를 찡그리며 몸을 움츠리는 모습은 어린아이의 깜찍한 잠버릇 같았다. 하루 스무 시간을 자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시간은 나무 아래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호주를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졸고 있는 코알라의 모습은 지금까지 인상 깊게 남았다.최근 코알라와의 평온한 기억이 흩뜨려졌다. 호주 빅토리아주 정부가 야생 코알라 약 700마리를 헬기에서 총으로 사...

    1629호2025.05.16 14:25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25) 불타는 지구, 속 타는 세계
    (25) 불타는 지구, 속 타는 세계

    산에 봄이 찾아왔다. 얼었던 흙은 스며드는 햇볕에 녹아내리고, 바람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낮게 웅크렸던 나뭇가지들도 생기를 되찾아 연둣빛 새순을 틔우기 시작했다. 진달래와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산길을 따라 오르면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겨우내 잠잠했던 새들은 다시 지저귀며 숲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그러나 이번 3월의 산은 달랐다. 푸르러야 할 능선이 붉은 화염에 휩싸였고, 연기가 하늘을 검게 물들였다. 영남·충청·호남 지방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강풍을 타고 무섭게 번져나갔다. 주민들은 집을 등지고 대피소로 몰려들었고, 소방 헬기와 진화대원들이 연기 속에서 사투를 벌였다. 불길은 도로를 집어삼키고 마을을 향해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3월 29일 기준으로 산불은 30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2025년 3월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이자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산불이라고 분석된다.기후변화로 가뭄이...

    1623호2025.04.04 15:3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24) 땅이 보내는 경고, 노후 인프라와 싱크홀
    (24) 땅이 보내는 경고, 노후 인프라와 싱크홀

    일본 도쿄 도심에서 북쪽으로 약 20㎞ 떨어진 야시오시는 인구 9만명의 소도시다. 서민 주택과 중소기업 공장이 밀집한 수도권 위성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 1월 28일 야시오시 중심부의 한 교차로에서 갑자기 땅이 꺼지며 직경 5m, 깊이 10m의 싱크홀이 생겼다. 지나가던 트럭 한 대가 함께 추락했고, 트럭에 타고 있던 70대 남성 운전사는 실종됐다.사고 다음 날인 1월 29일, 구조 작업 도중 추가 붕괴가 발생했다. 새로운 싱크홀이 전날 발생한 싱크홀과 합쳐지면서 직경 40m, 깊이 15m까지 커졌다. 하마터면 복구 및 구조 인력이 사고에 휘말릴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다. 인근 음식점의 간판과 전봇대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되며, 이 사고는 전 세계 뉴스와 소셜 미디어에서 큰 화제가 됐다.애초 단순한 지반 침하 사고로 보였지만, 싱크홀이 점점 확장되면서 수습이 끝나지 않고 있다. 일본 당국은 도로 아래를 지나는 하...

    1619호2025.03.07 14:3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3) 이튼캐니언에서 타오르는 기후위기 불길
    (23) 이튼캐니언에서 타오르는 기후위기 불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북동쪽에 자리 잡은 패서디나(Pasadena)는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다. 웅장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뤄 독특한 풍경을 선사한다. 명문 공과대학인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세계적인 천문연구기관인 카네기천문대를 품고 있는 과학과 지성의 도시이자, 매년 새해를 맞아 열리는 로즈 퍼레이드(Rose Parade)와 로즈 볼(Rose Bowl)로도 잘 알려져 있다.내가 패서디나에 거주했을 당시 느꼈던 진정한 매력은 도시를 둘러싼 자연이었다. 앤젤레스 국유림(Angeles National Forest)의 초입에 있어 다양한 하이킹 코스와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튼캐니언(Eaton Canyon)은 지역 주민과 방문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곳이다. 패서디나에서 차로 15분 정도 이동하면 만날 수 있는 이튼캐니언은 완벽한 도피처다. 도심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태양 아래 펼쳐진 푸른 초목과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이곳은...

    1614호2025.01.24 15:0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2) 위기의 2024, 정치와 환경이 남긴 교훈
    (22) 위기의 2024, 정치와 환경이 남긴 교훈

    2024년이 막을 내리고 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며,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특히 한국의 정치적 격변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 정권의 취약한 부분이었던 여야 협치와 소통, 사법리스크 등은 임기 내내 삐걱거리다 계엄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국민의 단합된 목소리와 시민 단체들의 즉각적인 행동이 이를 막아냈다. 국회는 국민의 지지를 받아 민주주의의 원칙을 수호했고, 이를 통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남아 있지만, 힘에 의존한 권력 집중과 민주주의의 원칙 훼손을 한국 국민이 더 허용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졌다.2024년 정치적 변화와 함께, 지구도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의 관측 결과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62도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각국이 20...

    1610호2024.12.27 15:4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 (21) 기후위기, 숲이 주는 해답
    (21) 기후위기, 숲이 주는 해답

    지난 11월 1일, 태풍 ‘콩레이’의 영향으로 제주는 폭우에 휩싸였다. 200년에 한 번 올 법한 양의 비가 쏟아진 뒤, 다음 날 아침 그동안 찾아가고 싶었던 비자림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밑의 땅은 비에 촉촉하게 젖어 푹신했고, 공기는 상쾌하고 차분했다. 아침 공기 속에는 빗방울이 남긴 고요함이 스며 있었고, 숲 곳곳은 비의 흔적을 반짝이며 빛내고 있었다. 비자나무 잎마다 맺힌 물방울이 아침 햇살에 작은 빛으로 반짝이고, 빗물에 씻긴 나무들은 더욱더 녹음이 짙어진 숲의 중심으로 나를 초대하는 듯했다.비자림은 흔히 ‘천년의 숲’으로 불린다. 수령 800년이 넘은 비자나무 2800여 그루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이 나무들은 한국에서 특별히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종이다. 주변에 떨어진 비자나무 열매를 살짝 누르면 향긋한 숲속의 냄새가 퍼진다. 그 안의 씨앗은 옛날부터 구충제로 요긴하게 쓰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비자를 하루 7개씩 7일간 먹으면 촌충이 없어진다...

    1604호2024.11.15 15:3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20) 사라지는 가을, 흔들리는 사계절
    (20) 사라지는 가을, 흔들리는 사계절

    내가 어릴 적 추석 아침은 이른 새벽부터 분주했다. 가을 아침의 싸늘한 공기와 더불어 설레는 기운이 함께 감돌았다. 집안 곳곳에선 음식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은 차례 음식을 같이 먹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허물없이 웃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밤이 됐다. 온 가족이 함께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다.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내 삶에서 이루고 싶은 꿈을 빌었다.20년 넘은 해외 생활에서 추석은 낯선 문화, 그저 지나가는 또 다른 하루였다. 출근길의 바쁜 도시와 번화한 거리는 한국처럼 명절의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가끔 주위 한인, 중국인들에게 “오늘이 추석, 중추절”이라고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는 정도다. 그 짧은 순간, 마음속 따뜻함이 느껴지지만, 곧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추석날 저녁에는 문을 열고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먼 타국에서도 달은 여전히 둥글게 떠 있고, 그 빛은 어릴 적 한국에서 보았던 달과 다르지...

    1600호2024.10.18 16:0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9)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댐?
    (19)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은 사막이다. 햇빛과 모래만 무한히 반복되는 이곳은 태양의 열기로 모든 것이 녹아 없어지는 진공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을 무한히 달리다 보면 홀연히 나타나는 초현대적인 도시 라스베이거스가 있다. 지치고 힘든 여정을 끝내고 거짓말처럼 나타난 네온사인의 열기는 여행자를 환락과 도박으로 유혹한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도시의 야경을 보면 이곳이 왜 ‘죄악의 도시’(Sin City)로 불리는지 알게 된다. 공항에서부터 편의점, 차를 주유하기 위해 들른 주유소에도 슬롯머신이 있어 도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매년 40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며 여가활동, 쇼핑, 컨벤션 센터를 결합한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도 성장 중이다.비가 거의 오지 않는 사막에 우뚝 솟은 라스베이거스 빌딩 숲을 보면 의문이 든다. 어떻게 물과 전기를 큰 도시에 공급할 수 있을까. 답은 도시 동쪽에 있는 후버댐에 있다. 후버댐은 1930년대 대공황으로 무너졌던 미국 경제를 일으킨...

    1595호2024.09.06 16:0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8) 기후위기는 공평하지 않다
    (18) 기후위기는 공평하지 않다

    넷플릭스의 드라마 <수리남>이 나오기 전까지 남미대륙 북동쪽, 브라질 위에 수리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국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또한 수리남 양옆에 가이아나와 프랑스령 기아나가 3형제처럼 쪼르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세계지도에서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스페인어를 주로 쓰는 중남미에서 특이하게 가이아나는 영어를, 수리남은 네덜란드어를, 프랑스령 기아나는 프랑스어를 쓴다. 각기 다른 언어만큼이나 이들 세 나라는 15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가이아나의 석유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조용하고 알려지지 않은 가이아나를 주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탕수수와 쌀농사, 광업이 전부인 가이아나 해안에서 유전이 발견됐다. 2019년부터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올해 초 원유 생산량이 65만4000배럴로 카타르와 맞먹는 수준이고, 2027년 말이면 130만배럴로 남미에서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원유생산국...

    1591호2024.08.09 16:00

  • [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7) PFAS 누구냐, 너는
    (17) PFAS 누구냐, 너는

    아마라 스트랜디(Amara Strande)는 미국 미네소타주 오크데일시에서 프로 뮤지션의 꿈을 키우던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2017년 15세 때 그의 삶이 바뀌었다. 두통, 메스꺼움, 코피 및 복통으로 고통받았고, 500만명에 한 명꼴로 걸리는 희소간암 판정을 받았다. 5년 동안 20번 이상의 수술을 받았지만, 암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아마라는 주변에서 암으로 고통받는 것이 자신만이 아님을 알았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같은 고등학교 학생 5명이 암으로 숨졌고, 다른 많은 사람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또 지역 어린이의 암 사망률은 다른 지역에 비해 171%나 높았다. 아마라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친구들이 왜 비슷한 고통을 겪는지 의아했다. 그리고 원인을 알았다. 미네소타에 있는 제조회사 ‘3M’이 과불화화합물(PFAS: Per- and polyfluoroalkyl substances)가 포함된 폐기물을 주변 지역에 묻었고, 이것이 지역 지하수를 오염시켰다.아마...

    1585호2024.06.28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