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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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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9)새해엔 어른이 되자
    (9)새해엔 어른이 되자

    “전두환 개새끼!” 친구(40대 후반인)가 평일 이른 시간에 <서울의 봄>을 봤는데,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뒤에서 누군가 외쳤다. 돌아보니 스무 살 남짓의 남자 청년이었다. 친구는 순간 마음이 뭉클했단다. 청년(과 그의 세대)이 이런 역사를 몰랐구나, 이제라도 알게 돼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며칠 후 그 이야기를 전하는 친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그 후 40여 년 때문에요. 특히 그 개새끼들에 저항하던 세력이 새로운 기득권 세력이 돼 많은 걸 망가트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역사를 제대로 아는 걸 텐데, 미안하기도 하고 왠지 창피스럽기도 하고 그러네요.”, “86세대도 아닌데 창피할 것까지야 있나.” 둘은 한참 말을 멈추었다.현재 한국 정치와 사회 기득권의 절반은 극장에서 청년이 개새끼들이라 욕한 놈들을 잇는 세력이, 나머지 절반은 그 개새끼들에 저항했던 세력이 점한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두 세력이 옛 모습을 벗고 제도권에 들어오고 기...

    1559호2023.12.25 07:00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8)경제 안목과 아이의 미래
    (8)경제 안목과 아이의 미래

    지난 글에서 주식 투자도 시세 차익을 얻는 측면에선 투기라는 말은 확실히 지나친 데가 있다. 다만 기준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달라질 순 있다. 오늘 일반적 경제 의식이나 정서를 기준으로 지나친 말이지만, 경제 교육이 기준이라면 그렇지 않다. 아이는 제대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투자는 투자라 투기는 투기라 가르쳐야 한다.아이에게 주식 투자에 관한 부정적 의식을 심어주자는 말은 아니다. 그의 경제 의식은 그의 것이며, 주식 투자도 그가 판단하고 선택할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가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주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제 판단과 선택에 책임지는 성숙한 인간이 되고, 우리는 그의 판단과 선택이 무엇이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걸 ‘교육’이라고 부른다.모든 일이 그렇듯, 경제적 안목은 ‘경제란 무엇인가’라는 첫 질문으로 시작한다. 사전은 ‘경제’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분배·소비하는 활동...

    1556호2023.12.07 07:00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7)경제교육, 어떻게 할까
    (7)경제교육, 어떻게 할까

    ‘경제교육’이라고 하면 우선 아이가 일상에서 용돈을 계획성 있게 관리하고 조금씩 저축도 하는 습성을 기르는 일을 생각할 수 있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제 살림을 꾸리는 연습과 함께 경제교육의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은 경제공동체의 성원이자 주인으로서 안목과 힘을 기르는 일이다.이 지점에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교육에서 갖는 특별한 면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비슷한데 어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나는 비록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고, 아이도 커서 살아가다 보면 세파에 쪼그라들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더 제대로 가르치는 걸 ‘어른의 도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타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 제 아이에게 양보와 협동의 미덕을 말하는 일은 결코 놀라운 사건은 아니다.근래 한국의 어른들, 즉 우리는 거의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현실이 이러니 내 새끼도 일찌감치 이렇게 가르쳐야 한다, 괜스레 올바른 관념이라도 ...

    1553호2023.11.13 07:00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6)교양은 위험하다
    (6)교양은 위험하다

    “집 안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됐어요.” 까마득한 옛일이다 싶기도 하지만,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아빠(남성 가장)들은 집 안에서 예사롭게 담배 피우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항의한다. ‘아빠는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왜 스스로는 그렇게 하지 않아?’ 꼼짝없이 밖으로 쫓겨난 그들은 “아이가 ‘고래가그랬어’ 보고 변했다”며 웃곤 했다. 그들은 고마워하고 있었다.우리는 지식이 내 상품 가치와 스펙을 높여 좀더 편하게 살게 해주는 도구라 믿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본디 지식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다. 못 보고 모르고 지나갈 일들을 보고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고 알게 된 것과 내 삶과 연관성, 즉 지식과 현실에서 실천 사이의 갈등으로 끝없이 고통받게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이야말로 지적 인간만이 누리는 환희이며 세상을 바꾸는 힘의 원천이기...

    1550호2023.10.20 10:44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5)‘고래가그랬어’의 경우
    (5)‘고래가그랬어’의 경우

    두 번에 걸쳐 교양 교육의 개념적 측면을 살폈으니, 현실에서 실천을 이야기해보자. 필자가 발행인을 맡은 ‘고래가그랬어’를 한 사례로 놓을 수 있겠다. 2003년 이 잡지가 ‘어린이 교양지’를 표방하며 창간하자 질문이 이어졌다. 하나씩 답을 하다가 정리된 답변을 마련하기로 했다. 다음 내용을 ‘고래가그랬어’ 맨 앞에 싣고 있다.“고그(독자들이 붙인 ‘고래가그랬어’의 애칭)가 생각하는 교양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 ‘동무와 함께하는 마음’이에요. 교양은 나를 삶의 주인으로 만들고 내가 살아갈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죠.”교양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일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일 때 성립하지만, 어린이는 아직 더 나은 세상 만들기의 온전한 책임이 ...

    1548호2023.10.06 11:06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4)‘더 나은 나’와 ‘더 나은 세상’
    (4)‘더 나은 나’와 ‘더 나은 세상’

    교양이 “아이들이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 교양의 힘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3) )인 이유는 무엇인가. 싱겁게 들릴 수 있겠지만, 교양이 애초부터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교양은 사회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시민(부르주아)이 이전 주인인 귀족을 극복하는 문화 투쟁으로 출발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단지 물려받은 신분으로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귀족에게, 지적 예술적 소양이란 그저 지배계급으로서 품위 유지와 피지배계급과 분리에 사용되는 장식물이다.그에 반해 시민은 인격적으로 문화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감으로써 세상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자격과 정당성을 증명해내려 노력했고, 그게 바로 교양이다. 교양은 본디 ‘더 나은 나 만들기’와 ‘더 나은 세상 만들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교양은 더 나은 ...

    1546호2023.09.15 10:58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3)교양의 힘
    (3)교양의 힘

    ‘교양’은 본디 수입된 말로 일본 학자들이 독일어 ‘빌둥’을 번역했다. 빌둥은 인간 만들기(혹은 형성하기)를 뜻하는 ‘멘셴빌둥(menschenbildung)’의 줄임말이다. 영어로 교양은 ‘컬처’인데 역시 ‘경작하다’는 어원을 가진다. 교양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인격적이며 문화적으로 자신을 가꾸어가는 노력’이라 말할 수 있다.한국 교육에서 교양은 또 다른 연원을 가진다. 해방 후 한국은 미국 학제를 도입해 교육 체계를 꾸리면서 ‘리버럴 에듀케이션’을 ‘교양 교육’이라고 옮겼다. 서구에서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역사는 장구하지만, 그 현재적 의미는 2007년 하버드대학이 발표한 ‘교육과정 개편 보고서’가 잘 대변한다. 보고서는 대학교육의 목적이 리버럴 에듀케이션임을 명시하며,...

    1544호2023.09.01 10:56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2)반공 노인과 반페미 소년
    (2)반공 노인과 반페미 소년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차이를 서로 존중함으로써 작동한다. 모든 성원이 그에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령 한국의 노년 남성 중엔 노동운동이라면 다짜고짜 ‘빨갱이’라 반응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노동운동에는 여러 갈래와 현실적 상황들이 있다. 그에 따라 누구든 제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을 싸잡아 혐오하는 일은 노동자의 권리와 인권의 부정이며, 무지다.비슷한 상황이 이 사회의 가장 젊은 세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청년 남성의 페미니즘 혐오 현상이다. 몇 년 사이 급속히 확산해 초등학생이 주 독자인 ‘고래가 그랬어’와 나에게도 “아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모가 많아졌다. 나 또한 처음 이 현상을 알았을 때 일었던 거부감이 이젠 깊은 미안함으로 바뀌었다.청년 남성의 페미니즘 혐오 이유로 이른바 ‘한남 무시’가 등장...

    1543호2023.08.25 10:55

  •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1)부모 자본가의 출현
    (1)부모 자본가의 출현

    초등학교 교사의 연이은 죽음이 사회에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켰다. 학생 권리의 지나친 확대에 따른 교사 권리의 축소가 원인이라고도 한다. 오래전 학교에선 교사 권리가 지나쳐 학생 권리를 억눌렀다는 이야기와 대구를 이룬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라면 교사 권리와 학생 권리는 각각 고유하다. 만일 대립관계에 있다면, 권리를 가장한 폭력 상황을 의미한다.교사 권리를 가장한 교사의 폭력은 국가 파시즘의 한 얼굴이었다. 젊은 교사를 죽음으로 몰아간, 학생 권리를 가장한 부모의 폭력은 시장 파시즘의 한 얼굴일 것이다. 국가 파시즘과 시장 파시즘이 역할을 교대한 건 1997년 즈음이었다. IMF 구제 금융의 대가로 한국은 대대적인 신자유주의 구조 조정에 들어간다. 경제 부문을 시작으로 한국 사회 모든 부문이, 사회 성원의 생활과 문화 전반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몇 해 후 노무현 대통령은 이 변화를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표현한 바 있다.자본주의 ...

    1542호2023.08.18 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