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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쇳밥이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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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현우의 쇳밥이웃](6)“다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6)“다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검은색 주물 불판에 놓였던 고기를 위장으로 떠나보내고 소주 한병이 거의 비어갈 무렵이었다. 아저씨가 남은 고깃덩어릴 싹 집어다가 내려놓는 동안 대화가 잠깐 끊겼다. 술자리에서 기자들에게 배운 인터뷰 기술을 활용해보기로 했다. 공백의 틈에 원하는 화두를 슬며시 밀어넣었다.사고 당일과 다음 날엔 부동산 뉴스만“듣자니께 건설 쪽 가셨담시롱? 그 판떼기는 사람 억수로 마이 다치지예?”두 눈 끔뻑대던 아저씨는 막잔을 치고선 비로소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다치면 차라리 다행이지.” 아저씨는 동료가 다치는 건 종종 봤어도 죽는 걸 직접 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1월 말쯤, 간만에 건설 쪽으로 복귀해 현장 분위기도 파악할 겸 까대기, 그러니까 지게를 멘 채로 위층에 자재 날라다 주는 일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오십 초반 중년이 감내하기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현장에서 쌓은 눈칫밥으로 아파트 한채는 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1469호2022.03.11 11:18

  • [천현우의 쇳밥이웃](5)“니 나이 땐 뭘 해도 안 하는 거보다 이득이야”
    (5)“니 나이 땐 뭘 해도 안 하는 거보다 이득이야”

    복병처럼 꼭꼭 숨어 있던 추위가 야습을 감행한 지난해 11월. 마침내 은인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경기도 고양시까지 막노동하러 갔던 ‘포터 아저씨’가 8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경남 창원으로 귀환했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어 인터뷰 좀 따겠다고 하니 제일 먼저 “국가의 충견께서 늙고 병든 노인네 취조해 무엇 하려 그러시오”라는 대답부터 돌아왔다. 변함없이 어마어마한 입담이었다.오미크론의 먹구름이 덮치기 직전, 전국 유흥주점 밀집도 1위에 빛나는 창원 상남동의 밤은 복닥복닥했다. 일관성 없는 조명들, 한 건물에 번잡스레 들러붙은 간판, 요란한 음악을 쿵작대며 배회하는 유흥주점 광고차 등 화려하되 알맹이 없는 풍경은 적당한 한산함에 익숙한 마산 사람들에겐 그다지 익숙지도 편안치도 않았다. 마음속 불편함은 반가운 모습과 마주하자 싹 사라졌다. 포터 아저씨는 7년 동안 변한 게 없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숱, 깎고 일주일쯤 방치한 너저분한 수...

    1467호2022.02.25 15:00

  • [천현우의 쇳밥이웃](4)“내 일로 내 돈 잘 벌면 그냥 세상이 재밌드라”
    (4)“내 일로 내 돈 잘 벌면 그냥 세상이 재밌드라”

    후배와 함께 과거를 되감는 동안 격자무늬 불판에 올려놓은 장어가 싹 사라졌다. 후속으로 조개와 까만 새우를 시키고선 건배 한 번 주고받았다. 안주의 공백기 동안 아주 짧게 내 상황을 요약했다. 페이스북이랑 신문에 글 좀 쓰다 보니 유명해졌다. 지금 너랑 얘기하는 것도 칼럼에 낼 거다. 어떤 쪽이든 반응 자체는 꽤 좋을 거다. 동생은 무릎을 치며 웃었다. “옛날부터 구라빨 좀 세운다 싶드만. 글빨로 뜬 줄은 또 몰랐네. 낸주 책 내면 사인 해주이소. 비싸게 팔그로.” 비었던 불판이 다시 한 번 가득 찰 무렵, 술기운을 빌려 솔직하게 물었다.“생각보다 건전하게 잘 살더라”“내는 니가 조만간 맛 갈 줄 알았데이. 도박하고 다단계랑 사채 놀음할 줄 알았드만. 억수로 건전하게 잘 살데. 우째 그리 균형 감각이 좋노?”동생은 공로를 아버지한테 돌렸다. 실업계고 출신인 동생은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따라 ...

    1464호2022.02.04 15:48

  • [천현우의 쇳밥이웃](3)“차가 좋으면 나머진 짜가라도 믿어주거등”
    (3)“차가 좋으면 나머진 짜가라도 믿어주거등”

    월 250만원을 벌면서 리스한 포르쉐를 타고 다니는 청년 남성을 어찌 생각하는가? ‘젊을 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듯하다. 유튜브나 황색지에선 이들을 초빙한다는 명목으로 데려와 조롱거리로 전시해놓는다. 결혼과 가정을 중요시하는 어른들은 혼인 적령기 전 자본 축적을 이유 삼아 혀를 찰 터이고. 인생에서 최고로 중요한 시기를 경쟁으로 보내는 대다수 동갑내기 청년들도 한심하다며 고개 저을 터이다. 나 역시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동생을 만나기 전까진….전기학원에서 시작한 만남용접을 잠깐 관두기로 했다. 그 말인즉, 퇴사하기로 했다. 당시 주 50시간 현장 노동에 칼럼 2건과 연재 원고 최소 1건, 여기에 출판까지. 도저히 다 감내할 수가 없었다. 노조 출신 사장님은 내가 출연한 방송과 칼럼을 모두 챙겨보는 분이다. 사직서를 들고 가자 사장님은 되레 기뻐하며 “더 잘하는 일, 의미 있는 일을 하...

    1461호2022.01.07 15:26

  • [천현우의 쇳밥이웃](2)“막상 나와보이 뭐할지 감도 안 오데”
    (2)“막상 나와보이 뭐할지 감도 안 오데”

    2010년엔 대기업 고졸 생산직 채용 붐이 일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라 복학생 형님들이 너도나도 졸업을 유예하고 삼성에 취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명 중 절반 넘게 1년 이내로 관뒀다. 연봉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고 업무는 고됐다. 그나마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마저 하루 11시간 주야교대 단순 라인 작업만 하다 보면 반년 내로 동난다. 구미 삼성공장에서 일했던 한 형님의 입에 착착 감기는 후기가 잊히지 않는다. “그 돈 받고는 그 짓 못 한다.”갑작스레 찾아온 악재 ‘대량 정리해고’은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기업 정규직이 됐지만 삶은 변하지 않았다. 상여금이 많아지긴 했지만 최저 언저리의 시급은 그대로. 오히려 골치 아픈 일만 늘었다. 직영의 생산관리 부장은 그야말로 이상적인 ‘개저씨’였다. “여자들이”로 시작하는 성차별 발언, “오늘은”으로 시작...

    1460호2022.01.03 13:34

  • [천현우의 쇳밥이웃](1)“스무 살이었다 아이가. 지금 그리 하라면 몬 하겠다”
    (1)“스무 살이었다 아이가. 지금 그리 하라면 몬 하겠다”

    그때는 세상에서 나만 각다분하고 주변 사람들은 편하게 앉아 공부만 하는 듯 보였다. 우리는 당시 감정을 ‘직장인 사춘기’라 부르기로 했다. 직장인 사춘기는 꽤 오랜 기간, 꽤 최근까지 초등학교 동창인 은주를 괴롭혔다.그때도 여름이었다. 꿈보다 현실이 좀더 가까웠던 스무 살. 친구들 모두가 방학을 맞아 각자 나름의 자유를 누릴 무렵,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마산공단에 발을 디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그저 별난 풍경이었던 공장은 그때부터 삶의 일부가 됐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렵던 노키아 공장 앞에서 하얀색 방진복 입은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날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 쭈뼛대며 사방을 두리번대던 내게 초등학교 동창인 이은주가 말을 걸어왔다. 덕분에 첫 직장생활은 제법 청춘의 맛이 깃든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2021년 7월 말, 청년의 막바지에서 재회한 은주는 겉으로 보기에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깡마른 몸에 날카로웠던 인상은 둥글둥글해졌고 드셌던 미소에...

    1457호2021.12.10 1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