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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쇳밥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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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현우의 쇳밥일지](2)“현우야, 기능요원 해볼래? 자리 생겼다”
    (2)“현우야, 기능요원 해볼래? 자리 생겼다”

    김광석의 명곡, ‘이등병의 편지’는 참 묘한 노래다. 몇줄 안 되는 가사의 주인공이 생판 남이었다가 어느 순간 내 얘기가 된다. ‘어느 순간’이란 바로 입영통지서가 날아온 시점, 전문대를 졸업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삶의 우선순위란 기나긴 줄에 갑자기 나타난 병역의무가 새치기를 했다.그날부터 가슴과 머리가 따로 놀았다. 본능에 가까운 거부감과 각오를 가장한 체념. 심장은 복학생들의 ‘군대 썰’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두려움에 떨었고, 이성은 어차피 거쳐 가야 할 길 걷는 동안 진로 결정을 유예할 수 있다며 위로했다. 입대 날짜가 일주일 앞까지 다가왔을 때였다. 집에서 주호민의 군대 이야기 만화 <짬>을 읽으며 시간 죽치고 있을 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지도교수였다.“현우야, 기능요원 해볼래? 자리 생겼다.” 산업기능요원. 산업체에서 일하며 병역을 대체하는 제도...

    1435호2021.07.02 13:58

  • [천현우의 쇳밥일지](1)“1㎝ 더 녹았음 발목 짜를 뻔했구마”
    (1)“1㎝ 더 녹았음 발목 짜를 뻔했구마”

    ‘돈 많이 버는 대기업이니 하청도 대우가 괜찮겠지.’ 그 순진한 생각은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박살 났다.고향의 풍경은 풀보다 쇠가 더 많았다. 마산항 바다 맞은 바라기엔 언제나 커다란 배와 드높은 철골 크레인이 눌러앉아 있었고, 해안대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면 수출자유지역이 보였다. 퍼런 지붕과 빛바랜 외벽의 공장들을 한참 지나면, 창원과 마산의 경계인 봉암교가 나타났다. 그 너머엔 마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공장의 숲이 도사렸다. ‘언젠간 나도 여기서 일하면서, 이곳에서 쭉 살아가다가, 이 어딘가에서 삶을 마감하겠지.’ 조숙했던 꼬마의 단상은 스무 살이 되자 현실로 다가왔다.전문대 입학 후 첫 여름방학, 생애 첫 공장 알바를 마산 공단의 노키아에서 했다. 돌이켜보면 참 괜찮은 회사였다. 깨끗한 내부 환경, 적당히 시원한 실내온도, 썩 괜찮은 회삿밥, 친절한 종업원 누나들까지. 하지만 좋은 점보다는 불만을 더 많...

    1433호2021.06.18 1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