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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우의 쇳밥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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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현우의 쇳밥일지](12)“이래 때아 놓으면 멋지다 아이가”
    (12)“이래 때아 놓으면 멋지다 아이가”

    방송 이후 신변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우선 칼럼을 쓰게 됐다. 한곳도 아니고 무려 세곳이었다. ‘피렌체의 식탁’과 ‘미디어 오늘’, 주간경향에서 제안이 왔다. 모두 받아들였다. 초라한 역량에 비하면 너무 큰 욕심이었지만, 현장노동자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자주, 넓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 사이 로템 하청업체를 나와 다른 용접 회사로 이직했다. 볼보 하청업체였다. 회사 내부는 완벽하게 남초라 여성 경리직원 한명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계 기업인 탓인지, 아니면 노조 활동을 하셨던 사장님 덕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임금은 원청과 비슷하게 받을 수 있었다.가려진 ‘진짜’ 현실내 업무는 포클레인의 팔 파츠(회사에선 붐, 암으로 불렀다) 용접이었다. 이제껏 해왔던 모든 용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일반 용접기보다 훨씬 무거운 손잡이를 들고 전장 5m에 달하는 길이를 메워야 했다. 어찌나 ...

    1455호2021.11.26 21:27

  • [천현우의 쇳밥일지](11)“쇳밥 먹는 청년공,  천현우입니다”
    (11)“쇳밥 먹는 청년공, 천현우입니다”

    “일기란 개인의 역사다!” 다이어리 맨 앞장에 거창하게 써놓은 문구였다. 저 글귀대로라면 내 역사 속엔 숱한 외세의 침략이 있었던 게 아닐까. 몇달 꾸준하게 쓰다가 2년 건너뛰고, 격주에 한 번씩 쓰다가 아무 복선 없이 월 단위로 넘어가는 등 구멍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반성하는 의미로 일일보고서처럼 현장을 써내려갔다.점차 일감이 줄어갔다. 원청인 SnT가 곡소리 할 때쯤에 하청인 우리 회사는 이미 사십구재 지낸 뒤였다. 재고 물품이 공장에 한가득 쌓여갔다. 인원 감축을 안 하고는 도저히 못 버틸 상황에 하필 그때 찍힌 게 나였다. 이사님은 하루하루 나를 못살게 굴었다. 쉬는 시간 외에 화장실도 못 가게 했다. 일하는 라인을 계속 바꾸고, 했던 청소를 다시 시키는 고전적인 수법이었다.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에선 어떤 강사가 용접공 비하 발언을 했다고 해서 시끌시끌했다. 그 강사 말인즉 ‘공부 못 하면 용접이나 하라&rsq...

    1453호2021.11.12 12:02

  • [천현우의 쇳밥일지](10)“나라 곳간만 꽉 차면 뭐하노, 일터 돌아가는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10)“나라 곳간만 꽉 차면 뭐하노, 일터 돌아가는 꼬라지가 이 모양인데”

    모니터 한가득 구직사이트 창을 띄워놓다 보면 머리엔 안개가 끼고 가슴엔 가뭄이 온다. 그대로 몇시간 지나면 억울함의 파도가 몰려온다. 내가 무슨 대기업만 노리는 것도 아닌데, 알짜배기 중견기업 찾느라 눈알 굴리는 것도 아닌데, 그저 다달이 200만원 월급에 8시간 일하면 충분한데, 그조차 왜 이리도 힘겨울까. 하루 취업농사를 말아먹고 침대에 누워보면 또 한 번 한숨이 나왔다. 남들이 꺼리는 직종의 경력직인 나조차 이리 악전고투하는 마당에 다른 친구들은 어떤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걸까.끝끝내 구원의 동아줄을 던져준 곳은 워크넷도, 사람인도 잡코리아도 아니었다. SnT 시절 날 좋게 봐줬던 파트장님의 문자였다. 원래 하던 일이라 적응 잘할 테니 면접 한번 보라고 했다. 경남 창원시 팔용동에 있는 직원 열여덟 남짓의 작은 정밀공업회사였다. 현장엔 중공업에서 퇴직한 40대 후반부터 60세까지의 ‘형님’들과 2030 외국인 노동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

    1451호2021.10.29 14:27

  • [천현우의 쇳밥일지](9)“우리 회사는 최저시급부터 시작합니다”
    (9)“우리 회사는 최저시급부터 시작합니다”

    수도사처럼 지낸 겨울이 끝나갈 무렵, 홀쭉해진 몸에 잔근육이 오돌토돌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머릿속은 시냇물 흘러가듯 고요하고 차분했다. 그 시절 생활은 반 자연인에 가까웠다. 회사에서 돌아오면 차가운 방에서 운동으로 몸을 데우며 책이나 팟캐스트로 하루하루를 넘겼다.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차곡차곡 알아갔다. 대학 졸업을 앞둔 친구들이 스팩을 쌓으려 전쟁 치를 때, 나는 이력 한줄 남지 않는 혼자만의 전투에 골몰했다.경남 양산에서의 생활은 뜬금없이 끝이 났다. 어머니가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가난도 모자라 가족의 우환이라니, 너무 인간극장 같아 화낼 여력도 없었다. 가까스로 생명줄만 붙여놨던 정신의 바이털 사인(vital sign)이 톡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와중에도 병원비를 대기 위해선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밤샌 몸으로 회사에 출근해 실장님이 지시한 일을 처리하는데, 기밀 테스트 부서의 왕고 영감님이 탱크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실...

    1449호2021.10.15 13:51

  • [천현우의 쇳밥일지](8)“짬밥 무면 누구나 다 합니더. 조급해 마이소”
    (8)“짬밥 무면 누구나 다 합니더. 조급해 마이소”

    양산에 온 지 일주일. 엄마가 보지 말았으면 하는 이야기.내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대우를 제시받고 타지로 왔다. 아직도 내가 집을 떠났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일요일 밤을 지내고 나면, 그나마 제일 행복했던 시기로 다시 돌아갈 것만 같다. 이런 유치한 바람에서 깨어나질 못한다는 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일까. 낯선 사람들이 있는 직장. 낯선 사람들이 머무르는 숙소. 익숙한 게 없는 장소에서 살아간다는 건 두렵다. 이럴 때면 군대를 가보지 않은 스스로를 다그쳐 본다. 너 빼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다들 겪어본 일 아니냐. 그동안 넌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면서 살아오지 않았느냐.더 나은 삶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걸 당연하다고 받아들이진 못하겠다. 아직 나는 어른의 처세를 모른다. 혼잣말과 한숨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인 걸 알면서도 내뱉고, 독한 술 한 잔에 하루를 씻어내지 못해 퇴근길에 홀로 속을 삭인다.이런...

    1447호2021.10.01 15:22

  • [천현우의 쇳밥일지](7)“원래 용접사라는기 떠돌이 신센기라”
    (7)“원래 용접사라는기 떠돌이 신센기라”

    격동의 시기였다. 2016년 총선, 영원할 듯했던 권력의 가슴팍에 몰락의 신호탄이 꽂혔다. 단독 개헌선 운운하며 머릿속에서 별나라를 구상하던 새누리당은 패닉에 빠졌다. 그 순간에도 나는 용접을 하고 있었다.적응의 힘인지, 젊음의 힘인지 어느새 불량 감소와 생산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어느덧 정직원 아저씨들과 같은 개수를 칠 수 있게 됐다. 품질 또한 꿀리지 않았다. 변치 않는 건 오로지 월급뿐. 7000원이란 시급은 내 상황을 타개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빚으로 한달 180만원이 빠져나갔다. 부업을 관둘 수 없어 퇴근해선 웹소설로 푼돈을 벌었다. 낙이라곤 없던 시절, 팍팍한 삶에 작은 볕뉘가 든 사건이 있었다. 입사 일년이 조금 지날 때쯤이었다. 1000만원을 빌려주었던 분이 절반만 받고 더 안 받기로 했다. 젊은 나이에 빚으로 고통받는 게 너무 마음 아프셨다고 했다. 그날 하루종일 울었다. 채무를 덜었다는 생각보다 세상에 온기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1445호2021.09.10 15:02

  • [천현우의 쇳밥일지](6)“내일도 사부지기 때아 보자이”
    (6)“내일도 사부지기 때아 보자이”

    “저녁 8시 30분, 오늘도 힘겹게 잔업을 마쳤다. 퇴근 카드를 찍고 후문을 나서면 불 꺼진 한국재료연구소가 보인다. 길을 건너 마산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린다. 가장 빠르게 가는 108번 버스마저 12분 후에 도착. 뭔 놈의 버스가 이리 느긋한지, 한숨 쉴 기력조차 없어 조용히 벤치에 앉아 휴대폰만 들여다본다.이 회사는 잔업 근무자를 위한 통근버스 따윈 없다. 휴게실도, 샤워실도 열어주지 않는다. 땀에 찌든 옷을 입은 채 걸레짝이 된 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오늘따라 유달리 커플이 많다. 그러고 보니 연애를 못 해본 지 몇년이나 지났더라?연인들의 어깨를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수그러든다. 열심히 일했다는 자부심 따윈 느낄 새도 없다. 버스 안 모든 승객이 기름내와 용접 흄 냄새 풍기는 나를 불쾌하게 여길 것 같아 불안하다. 2인 좌석 구석에 쪼그려 앉아 목을 기대는 동안, 만원버스임에도 옆에 누구도 앉지 않는 현실에서 예감은 확신이 돼간다....

    1443호2021.08.30 11:04

  • [천현우의 쇳밥일지](5)“합격입니더!” “합격이라꼬?”
    (5)“합격입니더!” “합격이라꼬?”

    대학교 멘토링 시간에 김규환 명장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대우중공업에서 ‘시다’로 시작해 노력과 기술만으로 인정받은 사나이의 인생 이야기였다. 교수는 이 사례를 들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다. 1970년대 중후반의 허술하고 거친 시대상을 현재에 갖다 붙이는 건 옳지 않다. 바뀐 시대는 읽지 않고 산업화의 로망만을 강조하는 ‘꼰대 소리’일 뿐. ‘도전’으로 포장하는 수많은 사례가 현대에 들어선 위법이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시간을 뛰어넘어 전달받은 가치는 있었다. 바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간절함이었다.빚을 진 상태에서 기술 공부를 한다는 건 도박이었다. 요즘 시대에 ‘아무 회사 들어가 몇년 고생하다 기술 전수하고 정년까지’의 서사는 공상에 불과했다. 제대로 배우려면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밖에 없었다. 알음알음 알아본 결과, 정부에서 ‘취업 성공 패키지’를 운...

    1441호2021.08.13 14:57

  • [천현우의 쇳밥일지](4)“만사 관심 끄고 살 생각 아니면 정치를 알아야 해”
    (4)“만사 관심 끄고 살 생각 아니면 정치를 알아야 해”

    내 삶의 도로에서 시간은 늘 상습 과속을 저질렀다. 간신히 시간을 붙들었을 땐 이미 소집해제일이 임박해 있었다. 어느새 모든 선배가 회사를 나가고 후배만 3명인 ‘왕고’가 됐다. 그러자 슬슬 입사 시절이 떠올랐다. 이렇다 할 수리 매뉴얼이 없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선임자에게 꼬치꼬치 캐물어야 했다. 말은 머릿속에 오래 남지 않았고 선배는 금방 회사를 나갔다. 결국 무수한 야단과 시행착오를 거쳐 스스로 해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때마다 ‘제대로 만든 인수인계서 하나만 있었더라면’ 하고 씁쓸히 입맛을 다셨다.퇴사 1개월 전, 회사생활을 회고하듯 인수인계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퇴근 후 일과는 자발적 잔업으로 보냈다. 고치느라 애먹었던 고장 사례까지 샅샅이 뒤져 실업계 고교 1학년도 알아들을 수 있을 언어로 꼼꼼하게 써내려갔다. 겸사겸사 불량 통계도 만들어 연구실에 갖다 주었다. 후배들과는 회식에서 덕담을 주고받았고, 현장 냉...

    1439호2021.08.02 11:26

  • [천현우의 쇳밥일지](3)“전문대 나와가 대기업 갈 수 있나”
    (3)“전문대 나와가 대기업 갈 수 있나”

    중소기업은 이직률이 높다. 나 역시 그 통계 표본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2년 이상 꾸준히 다닌 곳보다 몇달 다니다가 때려치운 회사가 훨씬 많았다. 사람들이랑 안 맞는다거나, 주당 노동시간이 길다거나, 출퇴근에 문제가 많다거나, 단순 노동 강도가 빡세다거나 등. 온갖 일이 겹치다 보면 금방 일하기 싫어지곤 했다. 몸에도 이상반응이 왔다. 근육통이나 불면증에 시달렸고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이 상태가 오래가겠다 싶으면 알아서 사직서 던지고 회사를 바꿔왔다. 뭐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각자 나름의 원칙을 세우게 마련. 방랑군처럼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나는 ‘입사 6개월의 원칙’에 충실하기로 했다. 어느 회사건 6개월만 다닐 수 있으면 장기근속이 가능하리란 마음가짐이었다.이 원칙을 처음 세운 시절이 바로 산업기능요원 복무 때였다. 반년을 기점으로 병역특례 생활은 적응에서 안정의 단계로 돌입했다. 이는 비로소 노동을 일상에 초대하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

    1437호2021.07.19 1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