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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대승의 소수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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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7)민주화 이후의 역사
    (17)민주화 이후의 역사

    요즘 한국 어디를 봐도 무기력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지만, 공동체는 변화의 동력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됐나’라는 의문은 우리의 시선을 역사로 돌린다.집중과 흩어짐한국의 20세기를 ‘민주주의를 향한 전진의 역사’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일단락된 1987년 이후의 35년은 어떤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대략 노무현 정부 초기까지는 민주당의 집권이 곧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간주됐다. 군사 독재의 잔재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결구도는 20세기 역사의 연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지난 35년의 정당정치는 어떤 경향을 가진 역사적 흐름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을 주고받는 핑퐁게임에 가깝다.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지만, 약속한 개혁은 이뤄지지 않고, 결국 실패한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정권을 내준다. 이른바 &ls...

    1493호2022.08.26 15:17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6)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16)복수극에 열광하는 사회

    왜 한국사회는 처벌 강화에 이토록 집착하는가? 죄와 벌의 등가교환이라는 판타지를 현실에서 구현하고 싶은 것인가? 강력한 처벌이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죄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복수극은 대중문화의 주류 콘텐츠다. 권력 집단의 악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가 치밀하게 복수를 실행하는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로 많다. 법의 무력함에 절망한 피해자가 폭력적 방법으로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도 흔하다. 어느 경우든 복수극은 판타지다. 이는 복수의 현실적 불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죗값의 의미 인류학은 사회관계의 기본 형태를 탐구하기 위해 이른바 ‘원시’사회에 집중해왔다. 그곳의 관계는 무언가를 주고받는 행위로 유지된다. 물건, 상징, 언어 등 모든 것이 그 대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 사이에 사람을 주고받는 행위, 즉 혼인이다. 원시사회의 혼인제도는 인류학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핵심 문제는 주고받음이 교환관계와 부채관계 중 무...

    1489호2022.07.29 14:1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5)정치적 올바름은 쓸모없다
    (15)정치적 올바름은 쓸모없다

    한국에서는 정체불명의 언어가 수시로 튀어나와 정치적 대화를 방해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한국에 못지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라는 말이다.말의 기원PC는 어떤 학자가 이론적으로 정의한 개념이 아니라 정치 운동과 사회적 논쟁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말이다. PC는 두 단어의 기이한 조합으로 이뤄진다. 일단 ‘올바름’은 어떤 규칙이나 조건에 부합하는 상태(정확·교정·적절 등)이며, 윤리적 ‘옳음(right)’과 구별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정치적 규칙이나 지침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의미를 이해하려면 PC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봐야 한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20세기 초반 공산주의자들이 PC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누군가 공산당의 지...

    1486호2022.07.08 14:23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4)‘반지성주의’ 사용금지
    (14)‘반지성주의’ 사용금지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고 했다. 그 뒤에는 자유에 대한 장황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이 연설의 맥락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냥 ‘알 수 없는 소리’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최근 언론과 SNS를 보니 반지성주의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대통령 발언의 의미를 분석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미국의 역사학자인 리처드 호프스태터를 인용하며 학술적 논의를 하는 칼럼도 보인다.반지성주의라는 언어적 상품한걸음 떨어져 이 광경을 바라보면, 웬 소동인가 싶다. 취임사의 가장 정확한 평가는 ‘대통령이 알 수 없는 모호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도가 아닐까? 취임사에 등장한 반지성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고, ...

    1482호2022.06.10 14:0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3)이준석의 ‘문제적 세계관’에 관하여
    (13)이준석의 ‘문제적 세계관’에 관하여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대표와의 첫번째 토론에서 보여준 모습은 일종의 데자뷔 같다. 한편으로는 뻔하디뻔한 ‘통속적 합리성’을 재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주의 국가 권력의 태도를 전형적으로 반복했다.통속적 합리성다소 도식적으로 요약하자면, 논변의 합리성은 전제의 정당성, 개념의 정확성, 개별 주장 사이의 논리적 일관성 등으로 구성된다. 수학적 증명 과정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자신을 합리적이라 평가하는 사람 중 다수가 세 번째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로부터 ‘통속적 합리성’이 태어난다. 예컨대 ‘시험을 통해 채용하는 것이 공정하다’라는 전제에서 ‘시험을 보지 않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결론 내리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전제와 결론 사이의 논리적 관계만 신경 쓸 뿐, ‘시험’과 &l...

    1478호2022.05.13 14:18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2)강자가 지배하는 이상한 사회
    (12)강자가 지배하는 이상한 사회

    한국에서는 모든 게 강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강자란 정확히 누구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부조리한 사회를 고발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부패한 재벌과 정치인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불평등, 차별, 배제의 직접적 원인이 모두 그들에게 있는 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강자와 약자의 분리에 주의를 기울이면 여러 흥미로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일상의 다양한 권력자들강자와 약자의 구별은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가장 익숙한 건 사회 계급이다. 자본주의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누고, 사회적 권력의 차이를 재생산한다. 이런 불평등의 해소가 현대 민주주의 국가의 존재 이유지만, 한국은 오히려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해왔다.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의 생산지가 한국인 건 우연이 아니다. 다수자와 소수자의 구별도 있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 보편과 특수...

    1474호2022.04.18 13:32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1)전쟁을 생각하며
    (11)전쟁을 생각하며

    전쟁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무엇보다 전쟁과 정치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가장 표준적인 답은 ‘전쟁의 철학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18세기 초에 제안한 정식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전쟁이란 국가가 사용하는 여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며, 정치적 수단과 전쟁은 연속적이라는 것이다. 근대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는 인간성의 보호와 실현에 있지만, 역설적으로 국가 주권은 전쟁을 사용 가능한 수단으로 인정한다. 여기서 전쟁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나온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구 국가들의 반응을 비교해보라.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을 환대하는 유럽 국가들이 그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 떠올려보자. 전쟁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반인간적 행위지만, 국가는 전쟁이 자신에게 어떤 피해와 이익을 가져올지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마자 주식시장부터 확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1471호2022.03.28 11:38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10)그 어떤 투표도 조롱의 대상 될 수 없다
    (10)그 어떤 투표도 조롱의 대상 될 수 없다

    대통령선거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유권자의 고민도 깊어진다. 특히 기호 1번과 2번 둘 모두를 마뜩잖게 생각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이번 역시 ‘뽑을 사람이 없는 선거’, ‘차악을 뽑는 선거’로 느껴질 것이다. 단지 차악과 최악의 구별이 문제라면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가장 나쁜 후보와 덜 나쁜 후보를 구별하고 그냥 후자를 선택하면 된다. 사실 선택의 어려움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한다’는 원칙과 ‘최악의 당선을 막아야만 한다’는 현실의 요구가 충돌할 때 발생한다. 한국의 정치 환경은 후자의 요구가 더 큰 힘을 발휘하도록 만들어져 있다.부정적 정체성의 정치개인이든 정치 집단이든, 좋은 것을 추구할 때와 나쁜 것을 막아야 할 때는 전혀 다른 논리가 작동한다. 중요한 것은 후자가 전자의 수단이라는 점이다. 즉 나쁜 것을 없애려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좋은 것을 얻...

    1468호2022.03.04 14:54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9)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9)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촛불시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만큼 자주 언급된 문장은 없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이 문장을 말하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참 역설적인 현상이다. 민주주의는 부정한 정권에 맞서기 위한 언어일 뿐이고, 민주주의의 적이 패배하자 그 언어도 함께 잊고 말았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과연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가.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모델여기서 잠깐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을 상기해보자. 민주주의(데모크라시)란 ‘인민이 인민 자신을 통치하는 정치 체제’이고, 이는 곧 평등한 시민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 공동체는 두가지 차원의 구별을 전제한다. 하나는 정치적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차원이다. 몇몇 철학자는 이 둘을 ‘정치적 국가’와 ‘시민사회’라고 불렀다.정치적 차원에서 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완전히 평등하다. 즉 그들은 시민이라는 동일한 지위, ...

    1465호2022.02.11 17:56

  • [박이대승의 소수관점](8)대선 이후 어떤 국가체계 만들 것인가?
    (8)대선 이후 어떤 국가체계 만들 것인가?

    누군가 “선거란 서로 다른 이념을 대표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 제도”라고 말한다면,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나올 것 같다. 모두가 더러운 과거를 폭로하거나 은폐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 ‘비전’을 얘기하는 건 우스운 일이 돼버렸다. 돌아보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꿈꾸기에는 더 좋은 시절이었다. 많은 이들이 ‘암울한 현재’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다른 미래를 위한 참신한 기획을 내놓았다. 실제로 혁신적이라 평가받는 사회정책의 상당수를 그 당시 지방정부에서 시도했다. 암울한 현재가 끝나고 나니, 미래를 말하는 것이 부질없는 세상이 오고 말았다.한국과 서구의 제도그래도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갈 길을 가야 한다. 경제 규모는 이미 선진국 수준일지 몰라도, 한국은 여전히 지속가능한 사회관계와 국가체계를 형성하지 못했...

    1461호2022.01.07 15:26